우울증과 불안장애
정확한 이해가 치료의 시작
우울증과 불안장애는 개인의 의지 부족이 아닌, 타고난 취약성과 지속적인 스트레스가 맞물려 발생해 뇌의 기능적 변성을 초래하는 의학적 질환이다. 반복되는 스트레스로 인해 만성화되기 쉬운 이 질환들을 당뇨나 고혈압 같은 만성 신체 질환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다각적인 통합 치료법을 살펴본다.
글 송후림 지혜의숲
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정상 감정과 정신질환의 경계
우울과 불안은 대표적인 정서적 고통이며 일상생활에서 누구나 흔히 경험하는 감정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서 반응이 개인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 지속되고, 고착화되어 사회적·직업적 기능 손상을 초래하는 수준에 이르면 의학적 치료의 대상이 된다.
국립정신건강센터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조사에 따르면, 2021년 기준 2주 이상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의 우울감을 경험했다고 응답한 비율은 전체 성인 인구의 11.3%에 달했다. 또한 임상적으로 우울증 진단을 받은 환자는 2021년 약 93만 명에서 2024년 약 110만명으로 증가해 3년 사이 약 18.5%의 증가율을 보였다.
현재 서구에서는 여성의 평생 유병률이 10~25%, 남성은 5~12%로 보고되며, 이러한 증가 추세를 고려할 때 국내에서도 유병률이 유사한 수준에 도달하거나 이를 상회할 가능성이 있다.
우울증과 불안장애의 진단은 2022년 미국정신의학회가 발간한 《정신장애의 진단 및 통계 편람》 제5판 개정판(DSM-5-TR)을 기준으로 한다. DSM 기준에 따르면, 정동장애와 불안장애는 단순한 정서 반응이 아니라 일정 기간 이상 지속되고, 기능 손상을 동반하는 경우에 진단된다. 이로 인해 우울증과 불안장애는 스트레스에 대한 자연스러운 반응이 아니라, 치료가 필요한 정신질환으로 분류된다.
하나로 설명되지 않는 원인
우울증과 불안장애의 병인은 단일 요인으로 설명할 수 없으며, 생물학적 소인과 환경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다요인적 병태생리라고 할 수 있다.
임상적으로는 발병 양상에 따라 반응성(reactive)과 내인성(endogenous)으로 구분한다. 반응성 질환은 사별, 이혼, 대인 갈등, 신체 질환, 과로 등 명확한 스트레스 사건 이후에 발생하는 특징을 보인다. 최근에는 실직이나 경제적 어려움과 같은 사회경제적 스트레스가 주요 유발 요인으로 작용하는 사례도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동일한 스트레스 상황에서도 개인마다 반응이 다르게 나타나는 점을 고려할 때, 내제된 취약성(내인성)이 중요하게 작용한다. 이러한 내인성에는 무의식적 갈등, 아동기 경험, 성격 특성과 같은 심리사회적 요인뿐 아니라, 신경생물학적 요인도 포함된다.
최근 연구에서는 세로토닌, 노르에피네프린, 도파민 등 신경전달물질 감소,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증가, 염증성 사이토카인 증가, 멜라토닌과 에스트로겐 등 호르몬 불균형, 신경가소성 저하, 뇌혈류 변화, 유전적 취약성 등 다양한 생물학적 기전이 밝혀지고 있다.
이러한 관점은 ‘스트레스-체질 이론(stress-diathesis model)’으로 설명된다. 즉, 취약한 체질을 가진 개인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의 스트레스에 노출될 경우 질환이 발현된다는 개념이다.
반복되는 스트레스와 만성화의 메커니즘
문제는 초기의 반응성 증상이 반복되면서 뇌 기능에 구조적·기능적 변화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이다. 지속적인 스트레스는 신경전달물질 체계와 신경세포 기능에 영향을 미치고, 이로 인해 질환이 점차 만성화되고 재발 경향이 강화된다. 이 단계에 이르면 더는 외부 스트레스가 뚜렷하지 않더라도 증상이 재발하는 양상을 보이게 된다.
이를 종합하면, 우울증과 불안장애는 ‘취약한 체질을 지닌 개인이 반복적인 스트레스에 노출되면서 뇌 기능의 탈진과 변성을 겪고, 그 결과 만성적이고 재발성이 높은 질환으로 고착되는 과정’으로 정의할 수 있다. 따라서 일정 수준 이상으로 진행된 정신질환은 고혈압이나 당뇨병과 유사하게 장기적으로 관리해야 하는 만성질환의 특성을 보인다.
약물 치료와 비약물 치료의 병행
우울증과 불안장애의 치료는 크게 심리치료와 생물학적 치료로 나뉜다. 임상에서 가장 먼저 선택하는 치료는 항우울제이다. 전체 환자의 약 3분의 2는 약물 치료를 통해 증상 호전을 기대할 수 있으며, 효과·비용·접근성 측면에서 여전히 가장 중요한 치료 수단이다. 항우울제는 신경세포 말단의 수용체에 작용해 신경전달물질의 농도를 증가시키며, 일반적으로 2주에서 4주 정도 복용하면 치료 효과가 나타난다. 증상이 호전된 이후에도 재발 방지를 위해 최소 6개월 이상 유지 치료가 권장된다.
항불안제는 빠른 증상 완화를 위해 보조적으로 사용되며, 의존성 발생 위험을 고려하여 단기간, 제한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원칙이다. 일반적으로 항우울제의 효과가충분히 발현되면 항불안제는 점진적으로 감량하거나 중단한다. 약물의 종류와 부작용은 개인의 특성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나므로, 임상에서는 환자의 증상, 병력, 약물 반응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맞춤형 치료 전략을 수립한다.
통합적 치료와 회복을 위한 조건
약물 치료와 함께 다양한 비약물적 치료를 병행할 수 있다. 효과가 입증된 치료법으로는 전기경련요법, 경두개자기자극치료, 정신역동치료, 인지행동치료, 대인관계치료, 마음챙김 기반 치료 등이 있다.
또한 신체 활동 증가는 치료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에너지와 의욕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회복된 경우에는 하루 30분 이상 유산소운동을 권장한다. 규칙적인 운동은 신경전달물질 조절과 스트레스 완화에 기여하며, 전반적인 회복 과정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치료 과정에서 의사와 환자의 협력이다. 의사는 치료 계획을 수립하고 전문적인 판단을 제공하지만, 치료 효과는 환자의 치료 순응도에 크게 좌우된다.
우울증과 불안장애는 적절한 치료를 지속적으로 시행할 경우 비교적 예후가 양호한 질환이다. 따라서 치료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권장된 치료를 꾸준히 유지하는 것이 회복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송후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명지병원 정신과 과장, 강서구정신보건센터장, 경기도광역치매센터장을 역임했다. 현재 고양시에 자리한 지혜의숲 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 학술이사이다. 저서로 《우울증을 부탁해》(황소걸음), 《핵심정신의학》(군자출판사), 《오픈다이얼로그》(북앤에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