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선 주치의

불안과 우울, 중독의
상관관계

많은 정신건강 문제는 진단명은 달라도 서로 연결되어 있다. 한 가지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이 다른 정신질환을 함께 앓는 경우도 많다. 다른 분야처럼 딱 떨어지게 질환을 나눌 수 없기도 하다. 즉, 누군가는 불안과 우울의 경계선, 또는 강박과 정상의 경계선에 있다. 이유는 무엇일까?

하주원 연세숲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우리 뇌에는 많은 신경전달물질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도파민, 세로토닌, 노르에프네프린, GABA, 글루타메이트 등이다. 이런 신경전달물질들의 생애주기를 보면 탄생 과정을 공유하기도 하고, 하나의 불균형이 다른 쪽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정신질환도 뇌의 미토콘드리아 문제를 공유하는 대사성 질환이기 때문에 어느 한쪽이 약해지면 다른 쪽이 함께 무너지기도 한다. 원인이야 어떻든 정신질환의 많은 증상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중독은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도 가장 어렵게 생각하고, 치료하기도 어려운 문제이다. 그 이면에는 다른 문제들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중독의 종류와 특징

중독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물질 중독이고, 다른 하나는 행위 중독이다. 물질 중독은 알코올, 마약, 니코틴, 카페인 등 특정 물질에 의존하는 경우를 말한다. 물질 중독은 화학물질이 몸에 주입되어야 성립된다. 마약을 흡입하든, 커피를 마시든 직접적으로 물질의 영향을 받는 과정이 있다. 반면, 행위 중독은 특정 행위자체에 의존성과 금단증상이 생기는 것으로, 물질 없이도 발생할 수 있다. 대표적인 예로는 도박, SNS, 게임 중독이 있다. 도박중독은 전통적인 카지노, 경마만 생각하기 쉬운데 최근 온라인 도박이 증가하면서 주식이나 코인 중독으로 병원을 방문하는 사람들도 늘었다.

물질 중독인지 행위 중독인지 애매한 것은 음식 중독이다. 마음의 허기를 실제 음식으로 채우면서 시작되는 음식 중독은 학계에서도 의견이 갈린다. 음식을 먹는 행위에 의존한다는 점에서 행위 중독으로 보기도 하고, 탄수화물 등 특정 물질에 끌린다는 점에서 물질 중독으로 분류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사실 ‘중독’이라는 번역 자체가 모호한 면이 있다. 독성학에서 말하는 중독(poisoning)은 급성으로 과다 섭취 또는 노출된 경우를 뜻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해로운 것을 한꺼번에 너무 많이 먹거나 중금속에 노출된 상황을 말한다. 하지만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중요시하는 중독(addiction)은 물질이나 행위에 지속적으로 의존하는 상태이고 그런 만성적인 상황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니 오해가 없었으면 한다.

중독의 특징을 살펴보면 몇 가지 요소가 두드러진다. 첫째, 남용이다. 물질이나 행위를 과도하게 사용하고 양을 조절하지 못하게 된다. 둘째, 의존이다. 그것 없이는 살 수 없다고 느끼는 상태가 된다. 끊으려 하면 불안이나 금단증상이 나타나기 때문에 중단하기가 매우 어렵다. 얼마나 좋아하느냐가 중독을 진단하는 기준은 아니다. 술을 마실 때 얼마나 행복한지로 알코올 의존을 진단하는 경우는 없다. 그것이 없을 때 얼마나 문제가 되느냐가 중독에서 가장 중요한 기준이다.

중독의 경계는 어디일까?

중독이라는 말을 너무 쉽게 쓰는 것도 곤란하다. 나도 아침에는 꼭 커피 한 잔으로 하루를 시작해야 하고 주변의 많은 사람이 술자리를 즐긴다. 어디까지가 중독이고 어디까지가 괜찮은지 헷갈릴 때가 있다. 중독 여부를 판단할 때는 단순히 사용량만 중요한 게 아니다. 그로 인해 문제가 생기느냐가 핵심이다. 예를 들어, 매일 반주를 즐기지만 가족들과 갈등도 없고, 별다른 건강 문제가 없는 사람도 있다. 반면, 1년에 한 번 술을 마셔도 그때마다 행인과 시비가 붙거나, 음주운전을 하는 사람도 있다. 음주량은 훨씬 적어도 후자가 더 심각한 경우일 수 있다. 누구에게나 허용되는 적정 주량이라는 것은 없다. 자기를 통제하지 못할 정도로 조절을 못 하는 게 문제다.

또 하나, 중독이 질병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신호는 거짓말이 동반된다는 점이다. 게임 중독으로 학교나 학원 등을 결석하면서 거짓말을 하는 경우는 흔하다. 술에 취해 반복적으로 사고를 치다 보면 전두엽 손상으로 술과 무관한 거짓말까지 늘어난다. 남들에게만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주식이나 코인 중독 환자들은 자기가 잃었던 때는 잊고, 수익을 봤던 때만 기억하고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왜곡을 통해 스스로에게도 거짓말을 한다. 결국 중독의 심각성을 판별하려면 두 가지만 기억하면 된다. 첫째, 조절 불가능한 상태인지 둘째, 그로 인한 거짓말을 하는지가 중요하다. 이 두 가지가 있다면 중독이 심각하다는 신호일 가능성이 크다.

도파민 중독의 본질

최근 ‘도파민 중독’이라는 말이 유행인데, 실은 도파민 중독이라는게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도파민 중독이란, 중독 전체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모든 중독은 도파민 경로의 이상과 연결된다. 즉, 모든 중독이 도파민 중독이라고 볼 수 있다. 도파민은 우리가 살다보면 좋은 보상을 얻었을 때 나오는 신경전달물질이며, 보상 회로를 활성화한다. 예를 들어, 열심히 공부해서 시험을 잘 보거나, 오랫동안 돈을 모아서 원하는 물건을 사게 되었거나, 좋아하는 사람과 관계를 맺을 때 도파민이 분비된다. 건강한 도파민은 노력과 일상 속 지속적인 보상에서 비롯된다.

이와 달리 물질 중독이나 행위 중독은 도파민을 빠르게, 강렬하게 뿜어내게 한다. 중독에서 속도는 굉장히 중요하다. 공부에 중독되지 않는 이유는 오랜 시간 노력해야 성과가 나오기 때문이다. 반면 도박 중 바카라는 1분 안에 결과가 나와 중독성이 높다. 도박 중에서도 로또는 결과가 나오기까지 며칠을 기다려야 해서 상대적으로 중독성이 낮다. 문제는 도파민 자체가 아니라, 그 빠르고 값싼 도파민에 중독되는 것이다.

‘값싸다’는 표현이 좀 아이러니한데, 사실 중독 대상은 엄청난 대가를 치르게 한다. 커피 값만 해도 한 달에 얼마인지 생각해보라. 약한 카페인 의존에서부터 도박으로 아파트를 날리는 사람, 알코올이나 마약으로 건강을 해치고 사회적 비용을 감당하는 경우까지. 오히려 너무 비싸기 때문에 지속하기 어렵다. 중독 치료의 핵심은 결국 건강한 도파민을 얻는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중독과 불안, 우울의 연결고리

불안장애나 우울증은 중독과 깊이 얽혀 있다. 먼저, 이 둘이 중독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예를들어, 사회불안장애가 있는 사람은 사람들 앞에서의 긴장을 술로 푸는 경우가 많다. 알코올은 일시적으로 불안을 덜어주지만, 깨고 나면 불안이 더 심해지고 공황발작으로 이어질 수 있다. 불안해서 술을 마셨는데, 술이 불안을 키우는 악순환에 빠지는 셈이다. 우울증도 마찬가지다. 여성이 우울증에 더 취약하지만, 남성은 우울감을 중독으로 푸는 경향이 강하다. 무기력과 우울을 방치하다 결국 중독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중독 치료는 다른 정신질환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비극적인 현실이나 관계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술만 끊어, 담배 피우지 마, 게임하지 마”라고만 하면 근본적인 치료가 안 된다.

대한민국에서 허용된 중독 치료제는 날트렉손과 아캄프로세이트 두 가지뿐이지만, 이러한 항갈망제만으로 중독을 치료하지는 않는다. 중독은 빙산의 일각이고, 그 밑에 깊은 감정 문제가 뿌리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갈망을 억제해도 삶이 나아지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그래서 오히려 중독 치료를 위해서 병원에 온 환자에게 항우울제나 항불안제를 처방하는 경우가 많다. 도박 중독 환자의 가족은 도박을 끊지 못해 고통받지만, 도박을 끊는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중독만 해결하면 모든 게 괜찮아질 거라는 기대는 비현실적이다.

중독 치료 과정에서의 우울

중독 치료 중에도 우울이 생길 수 있다. 특히 행위 중독인 게임이나 도박을 끊으면 가장 재미있던 게 사라져 무기력해진다. 도파민 분비가 일시적으로 줄어드니 당연한 결과다. 그러다 보니 다시 그 대상을 찾고, 재발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무엇인가를 끊으면 힘들 수밖에 없겠지만 그로 인한 무기력의 터널을 통과해야만 진짜 치유가 이루어진다.

그렇다고 무조건 참고 견디라는 게 아니다. 그 터널을 안전하게 지나도록 돕는 게 중요하다. 중독 대상을 끊었을 때의 무기력을 다스리기 위해 약물치료나 심리상담을 하는 것은 어두운 터널을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과 손전등을 쥐여주는 것이다. 그냥 ‘끊었냐, 안끊었냐’에만 초점을 맞추면 치료는 실패하기 쉽다. 중독에서 벗어난 저 너머의 삶이 지금보다 더 별로라면 굳이 중독 대상을 힘들게 끊어낼 이유가 없다. 건강한 도파민을 되찾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어두운 터널을 걸어갈 의지는 본인에게 달렸지만, 의지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강요하는 것은 치료를 늦출 뿐이다.

금단증상과 불안 관리

물질 중독의 경우, 끊었을 때 불안이 쉽게 생길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 약물치료나 심리상담으로 다뤄야 하는데, 특히 처음 일주일에서 한 달이 중요하다. 마약 중에는 금단 시 공황장애가 필연적인 경우도 있고, 술도 금단증상이 심하다. 금단증상을 줄일 수 있도록 도와야 다시 찾지 않는다.

중독 치료는 단순히 끊는 게 아니라, 더 나은 삶으로 가려는 동기가 있어야 유지된다. 결국 회복자 본인과 가족 모두 중독과 불안, 우울의 연결성을 이해하고 중독과 싸워야 한다. 왜 중독될 수밖에 없었는지, 무엇 때문에 불안하고 우울한지에 대해서 이해하고 싸운다면 희망은 있다.

하주원

연세숲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으로, 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 홍보이사, 정신건강정책 혁신위원회의료재활위원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어른이 처음이라서 그래』, 『불안한 마음을 잠재우는 법』, 『어쩌다 도박』 등이 있다. 1차 의원이지만 학술대회에서 불안장애와 도박중독을 주제로 꾸준히 발표를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