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청소년기의 신경질환은 단순한 의학적 문제를 넘어, 환아와 가족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으며 심리적·사회적 도전에 직면하게 한다. 예방접종과 공중위생의 발전으로 과거에는 치명적이었던 감염성질환에서 벗어나 소아청소년의 전체적인 생존율은 높아졌지만, 이는 소아 신경질환의 유병률이 상대적으로 증가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러한 변화는 질병의 관리와 연구 방향을 재설정할 필요성이 있음을 보여준다.
글 나지훈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강남세브란스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신경질환, 소아청소년에 더 가까이 다가오다
신경질환은 대부분 성인에게 나타나는 질환으로 인식된다. 알츠하이머병, 치매, 뇌졸중 등이 대표적이다. 그렇기에 소아청소년기에도 다양한 신경질환이 존재한다는 점은 간과되기 쉽다. 최근 유전자 진단 기술의 급속한 발전에 따라, 소아청소년 신경질환의 진단 정확도가 획기적으로 높아졌다. 유전자 분석으로 병의 원인을 밝히고, 이를 표적으로 하는 치료법 개발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질병을 억제하는 것이 아니라, 질병의 원인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다. 특히 난치성 신경질환을 앓고 있는 소아청소년 환아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는 이러한 접근법은 의학적 진보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소아청소년 신경질환으로는 난치성 뇌전증(레녹스-가스토 증후군, 드라베 증후군), 척수성 근육위축증(Spinal Muscular Atrophy, SMA), 결절성경화증(Tuberous Sclerosis Complex, TSC), 신경섬유종증(Neurofibromatosis)과 같은 질환이 대표적이다. 또한 미토콘드리아 질환, 폼페병과 같은 유전·대사질환은 극히 드물지만, 심각한 임상적 도전을 동반한다. 이들 질환의 특징은 대부분 환아의 일상적인 기능을 저해하며, 장기적인 치료와 관리가 필수적이라는 점이다. 이는 의학뿐만 아니라 국가적·사회적·경제적 지원이 병행되어야 하는 복합적인 문제이다.
난치성 뇌전증:
지속 가능한 관리 전략의 필요성
난치성 뇌전증은 뇌전증 환아 중 약 20~30%에서 나타나며, 발작이 기존 항경련제로 조절되지 않는 상태를 뜻한다. 이 질환은 단순한 발작의 문제가 아닌 뇌 발달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쳐, 인지발달의 지연과 정서적 문제를 초래한다. 난치성 뇌전증은 다양한 유전적 변이로 인한 광범위한 표현형으로 나타나지만, 그중에서도 레녹스-가스토 증후군, 웨스트 증후군, 드라베 증후군이 잘 알려져 있으며, 난치성 뇌전증을 치료하는 소아청소년 뇌전증 학자들에게는 특별한 관심의 대상이라고 볼 수 있다.
레녹스-가스토 증후군은 주로 어린 시기에 발병하며, 여러 형태의 발작과 발달 지연이 특징이다. 많은 환자가 레녹스-가스토 증후군 진단 이전에 웨스트 증후군으로 진단되기도 한다. 이 질환은 신경과적 치료와 관리를 복잡하게 만들며, 환아와 가족에게 지속적으로 부담을 준다. 드라베 증후군은 유전적 원인, 특히 SCN1A 유전자 돌연변이에 의해 발생한다. 드라베 증후군 환아들 또한 빈번한 발작과 발달 지연을 겪으며, 이는 삶의 질을 크게 떨어뜨린다.
이들 질환을 치료하는 방법은 다양하고 복잡하지만, 최근 칸나비디올(Cannabidiol, CBD)이 혁신적인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CBD는 기존 항경련제로 치료에 실패한 경우에도 투여시 발작 빈도를 효과적으로 줄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필자의 임상 경험에 따르면, CBD는 이들 난치성 뇌전증 환아에게 기존 약물 치료법 중 가장 강력한 효과를 보였다. CBD는 환아가 최소한의 인지기능을 유지하며 일상생활로 복귀하도록 지원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한다. 하지만 CBD는 향정신성 작용을 유발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마약류로 분류되어, 아직까지 접근이 까다롭고 처방이 제한적이다.
또한 난치성 뇌전증 환아 중 일부는 뇌전증 수술이 필요할 수 있다. 이는 뇌파 검사, 영상 진단, 신경외과적 수술 등 다학제적 접근을 요구하는 고난도 치료법이다. 한편 지속적 비디오 뇌파 검사, 다양한 유전자 검사 등 정밀 진단이 치료 과정에서 필수적임에도 불구하고, 고비용과 급여기준의 한계로 인해 활용이 제한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검사와 수술이 필요한 환아들이 적절한 시기에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의료 체계와 보험 급여 체계를 개선해야 한다. 난치성 뇌전증의 치료와 관리는 단순히 생명을 연장하는 것을 넘어, 환아가 사회에서 독립적인 삶을 영위하고 공동체에 기여할 수 있도록 돕는 데 목표를 두어야 한다.
척수성 근육위축증:
혁신적 치료제의 효과와 과제
척수성 근육위축증은 운동 신경세포가 점진적으로 퇴행함으로써 근육이 약화되고 기능을 상실하는 희귀 질환이다. 이 질환은 유전자 결핍으로 인해 SMN 단백질 생산이 부족하여 발병하며, 이에 따라 환아의 운동 기능과 생존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 SMA는 임상적 양상에 따라 1형부터 4형까지 나뉘며, 이 중 2·3·4형은 지능이 정상이기에 학교생활과 사회 활동이 가능하다. 그러나 근육이 약화해 이동성이 떨어지고 일상생활에 제약을 받는다.
최근 SMA 치료를 위한 유전자 치료제들이 개발되면서 새로운 가능 성이 열리고 있다. 스핀라자 (Nusinersen), 졸겐스마(Onasemnogene abeparvovec), 에브리스디(Risdiplam)는 각각 독특한 작용 기전을 통해 환아의 운동 능력과 생존을 획기적으로 개선했다. 스핀라자는 척수액 내에 주사시 SMN 단백질을 보완하며, 졸겐스마는 바이러스를 매개로 SMN1 유전자를 보충한다. 에브리스디는 경구 투여가 가능해 환아와 가족들의 치료 편의성을 높였다. 그러나 이러한 치료제들의 가격은 수억~수십억 원에 이르러 환아와 가족들에게 엄청난 경제적 부담을 안긴다. 건강보험급여 체계가 적용되지 않을 경우, 많은 환아가 혁신적 치료제에 접근할 수 없는 실정이다. 필자는 SMA 치료제에 대한 급여 확대가 시급하다고 판단하며, 이는 환아의 삶의 질 향상뿐만 아니라, 관련 연구와 생산을 활성화함으로써 장기적으로는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결절성경화증과 신경섬유종증:
새로운 치료 패러다임의 등장
결절성경화증은 세포에서 신호를 전달하는 단백질의 하나인 엠토르(mammalian Target Of Rapamycin, mTOR) 신호 경로의 이상으로 인해 발생하며, 경련, 발달 지연, 다양한 양성종양을 동반한다. 엠토르 억제제인 에베로리무스(Everolimus)는 결절의 생성을 제한하고, 결절성경화증과 관련된 발작을 효과적으로 줄이는 치료제로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아직 적응증 확대와 보험 적용이 더딘 실정이다. 반면, 미국에서는 CBD가 결절성경화증 연관 발작 치료제로 승인되어 환아들에게 더욱 다양한 치료 옵션을 제공하고 있다.
신경섬유종증은 신경계와 피부에 영향을 미치는 유전 질환으로, 특히 어린 시기에 진단되는 경우가 많다. 이 질환은 종양의 성장과 기능 장애를 동반하며, 삶의 질을 현저히 떨어뜨린다. 최근 신경섬유종증 치료를 위해 개발된 코셀루고(Selumetinib)는 미토겐 활성화 단백질 키나아제 억제제로, 종양의 성장을 억제하며 새로운 치료의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이 약물은 수술이 어려운 환아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고 있으며, 국내에서도 2024년 1월 1일부터 총상신경섬유종(Plexiform neurofibroma)을 동반한 제1형 신경섬유종증 환자 중 만 3세 이상~18세 이하 소아청소년 환자에게 건강보험 급여가 결정됐다.
희귀 유전성 대사질환:
치료의 다양성과 사회적 지원
희귀 유전성 대사질환은 신체의 특정물질 대사가 정상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아 다양한 증상과 합병증을 유발하는 질환군을 말한다. 탄수화물 대사 장애, 아미노산 대사 장애, 지질 대사 장애, 미토콘드리아 에너지 대사 장애, 요소회로 대사 장애, 유기산뇨증 등이 포함된다. 이러한 질환들은 병태생리가 독특해 환아의 증상을 표준화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특정효소의 결핍이나 기능 이상으로 발생하며, 대개 어린 시기에 심각한 증상이 나타난다.
이들 희귀 대사질환의 치료는 대개 특화된 약물이나 식사 요법에 의존한다. 특정 치료제는 비용이 수억 원에 이르기도 해, 국가적 지원이 없으면 많은 환아가 치료를 포기해야 하는 실정이다. 필자는 이러한 현실이 환아의 삶의 질을 심각하게 떨어뜨릴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 사회 전체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본다. 희귀질환 환아들이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국가가 사회적 지원을 강화하고, 식사 요법과 같은 치료 전략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관련 기업과 연구기관에서도 체계적 지원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판단한다.
세계적으로 희귀 대사질환 관련 임상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유전·대사적 이론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치료제도 지속적으로 개발되고 있다. 필자는 우리나라에서도 이러한 글로벌 동향에 맞추어 임상 연구와 신약 개발을 위한 투자가 확대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이 과정에서 환아와 가족의 목소리를 반영하고, 환아들이 치료의 사각지대에 놓이지 않도록 보건의료 정책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
소아청소년 신경질환 극복을 위한
사회적 책무
난치성 신경질환은 환아의 삶의 질을 심각하게 훼손할 뿐만 아니라, 그 가족들에게도 끝없는 희생을 요구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과학적 진보와 사회적 연대를 바탕으로 이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을 찾아가고 있다. 이제는 우리가 가진 자원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새로운 치료법을 적합하게 적용하느냐에 따라 환아들의 미래가 바뀔 수 있다. 소아청소년 신경질환은 단순한 의학적 도전 과제가 아니다. 이는 어린 생명과 그 가족이 짊어져야 할 심리적·사회적·경제적 무게를 동반하며, 우리 사회가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공동의 책무다.
난치성 신경질환의 주요 원인 중 하나는 유전자 이상이며, 최근 유전자 치료제의 개발은 치료의 패러다임을 혁신적으로 바꾸고 있다. 이 치료제들은 더는 질환을 단순히 억제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질환의 근본 원인을 해결할 가능성을 제공한다. 이는 환아들에게 생존 이상의 삶, 즉 성장과 자립을 가능하게 하는 열쇠다. 그러나 이러한 치료제들이 ‘고가’라는 장벽에 막혀 실질적으로 환아들에게 닿지 못한다면, 그 어떤 의학적 진보도 진정한 의미를 가질 수 없다. 필자는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국가와 사회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다시 한 번 주장한다. 건강보험 체계의 확대와 정책적 지원이 뒷받침될 때, 난치성 신경질환을 앓는 아이들에게 더 밝은 미래를 약속할 수 있다.
나지훈
강남세브란스병원 소아청소년 신경과 교수로, 소아청소년 두통, 난치성 뇌전증, 미토콘드리아 질환 등 희귀 난치성신경질환, 신경발달지연을 치료하고 연구한다. 주된 관심 분야는 신경영양학이다. 최근 저서로는 《우리 아이 두통은 꾀병이 아니에요》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