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질환은 다른 신체질환과 마찬가지로 다치고 고장 나 회복이 필요할 뿐, 개인이 잘못했거나 무능력해서 생기는 병이 아니다. 불안장애 중 하나인 공황장애는, 지난 몇 년간 우리나라에서 유명인이 방송에 출연해 공황장애를 앓고 있다고 직접 이야기하는 사례가 늘어나며 많이 알려졌다. 불안장애는 다양한 형태의 불안과 공포로 인해 일상생활에 장애를 일으키는 질환인 만큼, 곁에 있는 사람들이 환자를 이해하고 지지해주어야 한다.
글 강지인 연세대학교 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자연스러운 생물학적 반응 ‘불안’
불안과 공포는 위협을 느낄 때 일어나는 생물학적 반응이다. 공포는 대상을 특정할 수 있는 반면, 불안은 그 대상이 모호하고 확실치 않다. 불안이나 공포를 경험할 때는 초조하고 긴장감을 느끼는 등 불쾌한 심리 현상과 함께, 두근거림, 답답함, 떨림, 소화불량, 두통, 식은땀, 어지럼 등 자율신경계 신체 반응을 동반한다. 이 같은 반응은 생존과 감정을 관할하는 뇌가 위협을 감지하여 생존을 위한 준비 태세를 갖추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위험한 자극으로부터 우리를 안전하게 지키고 생존을 돕는 꼭 필요한 감정이다.
일상생활에 장애를 주는 병적 불안
그러나 지나친 불안과 두려움, 공포는 과도한 각성으로 몸에 이상반응을 일으키기도 하며, 주의력을 훼손하고 삶의 질을 떨어뜨린다. 실제 위협이 없거나 심하지 않은 위협 상황에서도 불안 증상이 발생하곤 한다. ‘병적 불안’이란, 실제 위협 수준에 비추어 지나친 불안이나 일상생활 기능에 장애를 주는 수준의 불안을 말한다. 병적 불안과 이와 관련된 신체 반응들은 삶의 질을 매우 떨어뜨린다. 자신감 저하, 우울로 이어지기도 하며 대인관계와 생활 관리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병적 불안을 가진 대표적 질환에는 공황장애, 범불안장애, 특정공포증, 광장공포증, 사회불안장애, 분리불안장애 등이 있다. 불안이나 걱정, 공포가 심하여 일상생활이 어렵고 두려운 상황을 회피하려는 행동을 하며, 과도한 각성, 근육긴장 등 신체 증상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다.
신체 증상과 공포가
느닷없이 나타나는 공황발작
27세 회사원 A 씨는 버스 안에서 갑자기 어지럽고 가슴이 답답해 당장 버스를 세워야 할 것 같았다. 울렁거리며 숨을 쉴 수가 없었고 쓰러질 것 같아 목적지가 아닌 곳에 일단 내렸다. 응급실에서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의사의 설명을 듣고 다행이라고 생각했지만, 뭔가 큰 병이 있을 것만 같았다. 또다시 그런 증상이 발생할 것 같아 혼자 외출하기가 무서웠다. 어느 날 혼자 집에서 TV를 보다가 갑자기 숨이 막혀 죽을 듯한 느낌이 들어 다시 응급실을 방문했다. ‘이렇게 힘든데 아무런 이상이 없다니… 이런 일이 계속 생기면어쩌나….’ A 씨는 이게 무슨 일인지 혼란스러웠다.
A 씨는 ‘공황발작(panic attack)’의 두려운 순간을 경험하고 예기 불안을 느끼는 상황이다. 공황발작은 느닷없이 두근거림, 호흡곤란 등 신체 증상이 나타나면서 죽을 것 같은 두려움에 휩싸이는 불안의 한 형태다. 갑작스러운 신체 증상과 당장 쓰러질 것 같다는 재앙화(catastrophizing)의 인지 증상을 동반한다. 아래와 같은 증상이 갑자기 나타나 수분 내에 최고에 이르고, 10~30분 정도 후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
<공황발작 자가진단 체크리스트>
□ 가슴 두근거림, 심계항진
□ 발한, 식은땀
□ 손발이나 몸이 떨리거나 후들거림
□ 숨이 가빠지거나 답답한 느낌
□ 질식할 것 같은 느낌
□ 가슴통증, 가슴 불편감
□ 메스껍고 속이 불편함 또는 복부 불편감
□ 화끈거리거나 오한이 드는 느낌
□ 감각이 둔해지거나 따끔거리는 느낌
□ 죽을 것 같은 공포
□ 아찔하거나 현기증이 나고 쓰러질 것
같은 느낌
□ 비현실적인 느낌 또는 나 자신이
내가 아닌 것 같은 느낌
□ 자제력을 잃을 것 같거나 미칠 것 같은 두려움
위 증상 중 4개 이상이 갑자기 나타나 두려움에 휩싸인 적이 있다면, 공황발작을 경험했을 가능성이 높다. 공황발작의 다양한 신체 증상으로 고생한 이후에는 신체감각이 아주 예민해지거나 건강을 지나치게 염려하는 문제로 이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공황발작을 경험했다고 해서 모두 공황장애로 진단되는 것은 아니다. 공황발작은 감정적으로 격앙된 상황 또는 극도의 스트레스 상황에서도 나타날 수 있으며 우울증, 공포증, 불면증 등 다른 질환에서도 나타날 수 있다.
공포 대상에 따라 나뉘는 불안장애
공황장애는 ‘예기치 않은’ 공황발작을 반복적으로 경험하는 것이 특징인 대표적 불안장애이다. 예기치 않은 상황에서 증상이 반복되고, ‘또 그러면 어쩌나’ 하는 예기불안, 공황발작이 일어날 것 같은 상황을 피하는 행동이 1개월 이상 지속되어 생활에 현저한 지장을 초래할 때 공황장애로 진단된다. 광장공포증이나 특정공포증에서는 ‘예기치 않은’ 공황발작이 아닌, ‘특정 상황과 관련된’ 공황발작이 특징적으로 나타난다. 광장공포증은 복잡하거나 벗어나기 어렵다고 느끼는 장소, 도움을 받기 어렵거나 혼자 남겨지는 상황을 두려워하고 그런 상황을 피하는 것이 주증상이다. 백화점, 지하철, 장거리 여행, 터널 등을 꺼리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범불안장애는 특정 대상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일상에서의 다양한 근심에 만성적으로 시달린다. 범불안장애 환자들은 과도한 불안과 걱정을 통제하기 어려워 걱정을 사서 한다는 소리를 듣기도 한다. 근심 걱정이 많아 쉽게 피로하고 집중력이 떨어지며, 두통, 어깨통증 등 근육긴장과 관련된 불편감, 불면증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다.
신체 문제나 약물, 음주와 관련되어 공황발작이나 불안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이때는 공황발작과 유사한 증상을 보일 수 있는 신체질환과 물질 사용을 우선 감별하는 것이 중요하다. 감별해야 할 의학적 상태로는 호흡기 문제, 심혈관질환, 내분비 이상 등이 있다. 따라서 공황발작과 유사한 신체 증상을 보일 때는 부정맥 등 심폐기능에 영향을 주는 신체 문제가 있는지, 특정 약물이나 물질과 연관되는지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한다. 이 외에도 우울증, 적응장애, 외상후스트레스장애 등의 질환에서도 불안이 흔히 동반된다.
검사에서 이상을 발견하지 못한 두근거림이나 가슴 불편감, 소화불량, 울렁거림, 근육통 등에 시달린다면 공황장애나 불안장애일 수 있으니 진료를 받아보는 것이 좋다. 설명하기 어려운 신체 증상에 몰두하게 되거나 안절부절못하는 증상이 나타나고, 너무 불안해서 충동적이고 극단적인 마음이 든다면 정신건강의학과 치료가 필요하다.
약물치료와 인지행동치료 병행 시 높은 효과
병적 불안과 불안장애는 치료할 수 있으며, 약물치료와 인지행동치료가 대표적인 치료법이다. 신경전달물질을 조절하고 자율신경계를 안정화하는 약물을 흔히 사용한다.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차단제(Selective Serotonin Reuptake Inhibitors, SSRI)가 대표적 약제이다. SSRI를 2주 이상 사용하면 불안이나 공황발작의 강도가 낮아지고 예민함이 줄어든다. 신경안정제로 불리는 벤조디아제핀(Benzodiazepine)계 항불안제는 불안을 빠르게 진정하는 효과가 있어 단기적으로 사용한다. 인지행동치료를 함께 받으면 치료 효과는 더욱 좋다. 불안과 관련된 잘못된 신념이나 자동적인 생각들을 교정하고 건강하게 대처해나가는 것이 치료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인지행동치료를 받으면서 자신이 경험하는 불안 증상의 특성, 빈도, 동반된 생각과 감정 등을 관찰하고 기록해 불안 현상의 전후 맥락을 살펴보고 이해한다. 내 마음을 ‘바라보는 시각’과 마음에 대한 ‘이해’는 뇌의 작동과 신체상태를 조절한다. 또 피하고 싶은 상황에 단계적으로 직면해 건강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돕는다. 자신의 대처 반응을 교정했을 때 나타나는 변화도 잘 살펴본다. 더불어 호흡조절과 근육이완훈련을 실시해 긴장과 각성을 낮추고 자율신경계 반응을 안정화한다. 이러한 전략을 꾸준히 실천하면 자신의 몸과 마음에 대한 조절감을 회복할 수 있다.
불안이라는 현상의 이면 들여다보기
누구나 불안을 경험하지만 무엇에 대한 불안인지 잘 알아차리지 못할 수 있다. 그렇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내가 어떤 것을 불안해 하는지 알아차릴 수 있다. 불안이라는 현상의 이면에는 내가 고통받고 있다는 감정이 억눌려 있을 수 있고, 매우 두렵고 피하고 싶은 대상이 감춰져 있을 수도 있다. 또 지친 마음에 울고 있는 현상일 수도 있다. 불안을 없애려고 하지 말고, 불안해하는 마음과 몸의 반응을 살펴보며 있는 그대로 알아차려보자.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여러 마음과 부드럽게 대화하여 제대로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조절하는 데 도움이 된다.
생각에 휩싸이고 불안정해서 마음을 살펴보기 어려운 순간이라면, 내 감정과 생각을 글로 표현해 보는 것도 현명한 전략이다. 믿을 만한 사람에게 말로 꺼내 놓아도 도움이 된다. 글로 쓰고 말로 표현하는 과정에서, 한 걸음 떨어져 상황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한 템포 천천히 반응하고 당장의 결정은 보류하는 것이 좋다.
불안은 앞으로 일어날 미래의 상황을 미리 걱정하거나 과거의 일을 곱씹는 것과 관련이 많다. 불확실한 미래의 일이나 지나간 일을 자꾸 떠올리고 걱정하며 불안해하다 보면, 소중한 현재를 영원히 잃어버릴 수 있다. 불안에 휩싸여 있다면 마음을 현재 이 순간으로 돌아오게 해보자. 현재에 집중하기 어려울 정도로 불안의 늪속에 빠져 있다면, 일단 자세를 바르게 하고 호흡이라는 현재의 감각에 집중해보자. 들어오는 숨을 느끼면서 깊게 들이마시고 최대한 길게 내쉬면서 숨이 들고 나가는 감각에 주의를 기울여보자. 이때 특정 생각이 떠오른다면, 없애려 애쓰지 말고 있는 그대로 두고 부드럽게 살펴본다. 꼭 호흡 감각이 아니더라도 현재 몸에서 일어나고 있는 감각에 집중하는 것도 좋다. 생각의 실타래 속에서 불안할 때는 오늘 밤 잘 자고 나서, 일단 식사하고 나서 다시 고민해도 괜찮다. 힘들 때 잘 자고 식사를 잘 챙기는 것은 생체리듬과 마음 관리에 필수다. 오늘 하루도 수고한 나에게 따뜻한 위로와 이해의 선물을 건네자.
강지인
연세대학교 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정신신체장애, 신경성신체증상, 불안장애, 공황장애, 스트레스를 전문 분야로 진료한다. 대한불안의학회 홍보이사, 대한생물정신의학회 교육이사, 한국정신종양학회 연구이사, 대한신경정신의학회 학술위원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