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선 주치의

드물기에 더 귀한 삶,
희귀질환 환자와 가족을 위한
진료와 연구

희귀질환은 관련 정보가 거의 없기에 끝을 알 수 없어 환자와 가족에게 더 큰 고통을 안긴다. 현재 치료제가 있는 질환은 5~10%에 불과해 대부분의 희귀질환은 치료보다 관리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 이런 희귀질환자들에게는 진료와 연구만큼 사회적 관심도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채종희 서울대병원 임상유전체의학과,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소아청소년과 교수

희귀질환은 환자 수가 적고, 그만큼 사회적 관심과 자원도 부족한 영역이지만, 환자와 가족에게는 삶 전체를 뒤흔드는 무게로 다가오는 병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유병 인구 2만 명 이하인 질환을 희귀질환으로 분류하고, 그중에서도 더 희귀해서 유병 인구가 200명이 안 되는 질환은 극희귀질환이라고 정의한다. 전 세계적으로는 8,000여 종 이상이 보고되었으며, 국내에서는 지금까지 약 1,300여 종이 등록되어 있다. 또한 유전체 연구를 비롯한 생명과학 연구의 결과로 매년 수백 종이 새롭게 규명되고 있어 여전히 ‘미지의 영역’이 많은 분야이다.

희귀질환의 원인은 유전자 이상인 경우가 약 80%로 많은 부분을 차지하지만 비유전자 질환도 약 20%에 이른다. 어린 연령부터 증상이 시작되는 경우가 50%를 넘어 일생 동안 고통받는 질환이지만, 안타깝게도 치료가 가능한 경우는 5~10%에 불과해 많은 연구 노력이 필요한 분야이다. 환자 개인에게는 매우 중대한 일이지만, 전체 유병 인구가 적다는 이유로 진단과 치료에서 소외되기 쉬운 것이 현실이다. 특히 많은 희귀질환은 소아기부터 증상이 나타나고, 생애 전반에 걸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환자뿐 아니라 가족 모두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

다행히 최근에는 유전체 의학 기술이 발달해 희귀질환 진단의 정확도와 속도는 크게 향상되고 있다. 유전자 패널검사, 전장유전체분석(WGS), RNA 분석, 단일세포 전사체 분석 등 고도화된 기술을 통해 미진단 상태였던 환자들에게 명확한 원인을 밝혀주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으며, 진단율 향상은 조기 치료와 관리의 가능성도 함께 높여준다. 따라서 희귀질환 환자와 가족들이 진료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덜 지치고, 더 빠르고 정확한 진단과 관리를 받을 수 있도록 다음과 같은 정보가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진단이 어려울 경우 유전자 검사 고려

희귀질환은 증상이 모호하거나 애매한 경우가 많고, 또 시간이 경과하면서 증상이 달라지거나 심해지기도 하며, 한두 개의 장기가 아닌 다양한 장기에 영향을 미친다면 진단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또 희귀질환을 진료하는 의료진이 많지 않고, 희귀질환의 진단에는 경험 있는 의료진 및 연구진의 오랜 노력과 연구가 필요한 경우도 많아 진단이 어려울 수 있다. 따라서 증상이 모호하거나 다양한 장기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에는 희귀질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진단 경험이 풍부한 의료진이 있는 희귀질환 전문기관을 찾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진단이 어려울 경우 유전자 검사를 적극적으로 고려할 수 있다. 최근에는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유전자 패널검사를 비롯해 다양한 유전체 검사를 통해 진단 정확도를 높일 수 있다. 이때 해석에는 반드시 전문적인 유전체 분석팀과 협업 경험이 많은 임상유전학 전문가 및 협력 진료, 전문적인 유전상담이 병행되어야 한다. 검사결과는 진단의 출발점일 뿐, 유전체 검사 결과와 연결 지어야 하는 임상 증상과 영상 소견, 가족력 등을 다면적으로 해석해야 정확한 결론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확진 이후에는 경험 있는 전문가와 상담해 치료·관리 방향을 정하고 신뢰를 바탕으로 진료를 받아야 한다. 그리고 유전상담, 향후 출산 계획과 관련한 정보도 함께 제공받는 것이 바람직하다.

점점 더 중요해지는 다학제 진료

희귀질환 중에는 ‘치료’보다는 ‘관리’가 중심이 되는 질환이 많기 때문에 다학제 진료의 중요성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 다양한 진료과가 유기적으로 협력해 환자의 건강상태를 정기적으로 점검하고, 질환의 악화를 예방하는 통합적인 관리 모델이 필요하다. 실제로 한 명의 환자가 뇌신경, 심장, 콩팥, 호흡기 등 여러 분야의 전문가 진료를 동시에 받는 경우가 많고, 재활의학과, 정신건강의학과, 사회복지팀의 협력을 받아 진료받는 사례도 점차 늘고 있다.

치료제의 연구와 발전도 희망적인 소식이다. 예를 들어 과거에는 ‘불치’로 여겼던 척수성 근위축증(SMA)은 유전자 치료제의 등장으로 치료 가능성이 생겼다. 하지만 이 약들이 최상의 효과를 발휘하려면 증상 발생 전에 투여되어야 하므로, 신생아 선별검사 제도 도입 등 관련 제도의 개선도 고려해야 한다.

미진단 희귀질환에 대한 관심 증가

한편, 여전히 진단을 받지 못한 채 여러 의료기관을 방문하는 '미진단 희귀질환' 환자의 수도 적지 않다. 이들은 기존 검사로는 원인을 밝히기 어렵고, 확진할 수 있는 검사가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경험 있는 의료진조차 질환을 명명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러한 환자들을 위한 미진단 연구가 시작돼 경험 있는 의사 과학자들과 협력, 임상 유전체 데이터와 생명과학 기술, 국제적 연구 협력네트워크가 결합된 ‘탐색 기반 진단’이 이뤄지고 있다.

국내에서도 최근 몇 년 사이 미진단 희귀질환 연구에 관심이 높아졌고, 정부 지원을 받아 기반이 마련된 후 연구자 네트워크를 형성해 세계 유전자 데이터베이스와 연계한 공동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극소수 희귀한 증상을 가진 환자의 임상 정보를 바탕으로 유전체를 비롯한 다양한 생명과학자와 협력연구로 새로운 유전적 질환을 규명하는 사례도 점점 늘고 있다. 이런 연구는 결국 치료제 개발로 이어질 수 있는 단초가 되므로, 진단 불가능한 질환에 이름을 부여함으로써 희망의 출발선을 만들어준다고 할 수 있다.

드물지만 귀한 질환

희귀질환은 ‘드물지만 귀한 질환’이다. 환자 개개인의 생명을 지키는 일은 곧 사회 전체의 건강 시스템을 단단하게 만드는 일일 것이다. 치료제 개발, 임상시험, 희귀질환 등록 시스템, 산정특례 확대, 환자 가족의 상담과 교육, 과학기술과 연결된 기초연구까지 이 모든 요소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야 희귀질환 환자들이 비로소 안정된 삶과 존엄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가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연대해 이 드물고 귀한 질환을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는 힘’을 기른다면, 그 희망의 결실은 단지 몇 명의 생명을 구하는 것을 넘어 모든 사람의 삶에 가치를 더하는 건강한 미래로 이어질 것이다.

권역별 희귀질환 전문기관

질병관리청은 희귀질환 진료지원체계를 강화하고 국가등록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권역별 희귀질환 전문기관을 지정·운영한다. 희귀질환 전문기관은 희귀질환관리법 제14조에 따라 희귀질환자 진료, 희귀질환 관리에 관한 연구, 희귀질환 등록통계 사업 등의 업무를 수행하는 의료기관이다. 질병관리청은 희귀질환 전문기관을 운영함으로써 환자 접근성 제고 등 희귀질환 진료 인프라를 강화하고, 전문기관 기반의 희귀질환자 등록사업을 추진하며 국가통계를 고도화하고 있다.

채종희

서울대학교병원 희귀질환센터장을 맡고 있으며 임상유전체학과와 소아청소년과 교수로 재직하며 어린이병원에서도 진료한다. 소아근육병 전문가로서 희귀질환 극복을 위해 지치지 않고 연구와 진료에 매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