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수록 건강검진을 꼭 받아야 한다는 말에 익숙해진 지 오래됐다. 하지만 정작 많은 어르신이 이렇게 되묻는다. “아픈 데도 없는데 굳이 고생스럽게 건강검진을 해야 하나요?” 병을 발견하면 불안만 커질까 봐 망설이는 분도 있다. 그 마음은 충분히 이해하는데, 이런 고민이 있다면 질문을 조금 바꿔볼 필요가 있다. 노인의 건강검진은 과연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걸까?
글 오범조 서울특별시보라매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수명 연장에서 독립성 유지로
젊은 시기에 받는 건강검진의 목표가 ‘수명 연장’이었다면, 고령자의 검진 목표는 분명히 달라야 한다. 병을 빨리 찾아 수술하고 항암치료를 하는 것이 오히려 삶을 더 힘들게 할 때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노년기 건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바로 독립성이다. 이는 혼자 씻고, 식사하고, 걷고, 대중교통을 이용해 이동하는 등 스스로 삶을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이 능력이 유지될 때 비로소 우리는 ‘자율적으로 내 삶을 살고 있다’고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이 독립성을 가장 갑작스럽게 무너뜨리는 원인은 의외로 암이 아니다. 뇌졸중이나 심근경색 같은 심뇌혈관질환, 낙상과 골절, 인지기능 저하로 나타나는 혼란과 불안이 더 큰 위협이다. 한번 크게 다치거나 기억력이 급격히 떨어지면 혼자 생활하기 어려워지고, 내 삶을 타인에게 의존하게 된다.
질병을 찾는 검진에서
기능을 지키는 검진으로
이런 이유로 고령자의 건강검진은 질병을 찾는 것보다 기능을 지키는 데 초점을 두어야 한다. 모든 검사를 다 받는 것이 좋은 검진은 아니다. 오히려 불필요한 내시경이나 CT는 검사 자체의 위험과 스트레스 때문에 남아 있던 기능마저 떨어질 수 있다.
반면 꼭 고려해야 하는 검사도 있다. 선택 가능한 항목 중 경동맥 초음파는 대표적인 예다. 이 검사는 동맥경화를 파악해 뇌졸중과 심근경색의 위험을 미리 확인할 수 있게 해준다. 증상이 나타나기전에 위험을 발견하고 예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독립성 유지에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이 밖에도 낙상으로 인한 골절 위험을 조기에 발견하기 위한 골다공증 검사(골밀도 검사), 근력과 걸음 속도를 확인하는 근감소증 평가, 기억을 살피는 인지기능 선별검사 역시 중요하다. 이러한 검사들은 치료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내가 원래 영위하던 삶의 패턴을 오래도록 이어가기 위한 검사다.
내재적 역량: 새로운 건강 기준
최근 세계보건기구(WHO)도 이와 같은 방향을 제시했다. WHO는 노인의 건강을 측정할 때 몇 개의 병을 가지고 있는지가 아니라, ‘내재적 역량(Intrinsic Capacity)’을 기준으로 보자고 제안한다. 내재적 역량이란 이동성, 인지, 심리, 감각, 활력(영양·근력) 등 다섯 가지 능력을 말한다. 이 능력들이 유지될 때, 우리는 비로소 스스로 일상을 지킬 수 있다.
그렇다면 나에게는 어떤 검진 전략이 필요할까? 중요한 것은 나이가 아니라 현재의 기능 상태다. 아래 표를 참고해 자신의 상태에 맞는 검진 전략을 생각해보아야 한다.
<내재적 역량 평가>
<건강상태 기반 맞춤 검진 전략>
| 나의 상태 | 검진 전략 |
|---|---|
| 활동적이고 건강한 노인 (생활 독립, 만성질환 최소) |
선택적 암 검진 유지혈관검사 (경동맥 초음파) |
| 질환은 있지만 일상생활 가능 (당뇨·고혈압 약물 치료 중) |
골다공증·근감소증 ·인지검사 확대 암 검진은 의사와 상의해 선택적 실시 |
| 노쇠·거동제한 (최근 낙상·보행 저하) |
암 검진은 중단 고려 돌봄 계획 ·기능 보존 중심 |
※ 나이보다 기능 상태가 기준입니다
나답게 살기 위한 검진
결국 고령자 검진의 핵심 목표는 ‘얼마나 오래 사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오래 나답게 살 수 있느냐’이다. 건강검진은 때로는 두렵고 번거로울 수 있다. 하지만 조금만 관점을 바꿔보면, 검진은 남은 생을 튼튼하게 지키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된다. 노인의 건강검진은 달라져야 한다. 내가 지키고 싶은 삶을 지키기 위해, 내 두 발로 걸어나갈 수 있는 미래를 위해. 우리에게는 필요한 검진만 정확하게 선택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오범조
서울특별시보라매병원 가정의학과장과 노인전문진료센터장으로 재직하며 대한임상노인의학회 교육이사, 대한비만학회 학술위원, 대한갱년기학회 학술이사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저서로는 『근거중심의 암생존자 관리』, 『암 치료 후 건강관리 가이드』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