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건강

‘미래 자기’와의 만남으로
  건강하게 나이 들기

젊은 시절에 경박단소(가볍고 얇으며, 짧고 작음)하게 살지 않으면 ‘가속노화’를 겪고, 그 결과로 노년에 갖은 질병에 시달리며 간병비 등 경제적 부담을 지게 된다. 그러니 경박단소하게, 즉 가속노화를 피할 수 있도록 생활 습관을 바꾸자. 그런데 왜 실천하기가 그토록 어려울까?

정희원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교수

내일의 나, 모든 미래의 나

‘미래 자기(future self)’란 미래 시점의 나 자신을 뜻하는 말이다. 흔히 오늘 할 일을 내일의 나 자신이 해줄 것이라 합리화하며 미루곤 하는데, 이때 내일의 나가 바로 미래 자기에 속한다. 비단 내일뿐 아니라 모레, 한 달 후, 일 년 후 등 현재보다 늦은 시점의 자신은 모두 미래 자기라고 할 수 있다. 미래 자기라는 개념은 조지프 버틀러 등 18세기 철학자들의 저술에서 영감을 받았다. 버틀러는 1736년에 “만약 오늘의 자아가 내일의 자아와 동일하지 않다면, 오늘 당신은 자신에게 내일 닥칠 일보다 다른 사람에게 닥칠 일에 더 관심을 갖게 될 것”이라고 썼다.

내가 아닌 타인으로 인식하기 쉬운 ‘미래 자기’

내일의 내가 오늘의 나와 다르지 않다는 사실은 받아들이기 쉽다. 하지만 사람들은 마치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하곤 한다. 앞서 말한, 하기 싫은 일을 내일의 나에게 미루는 것이 좋은 예시이다.

이와 같은 경향성은 연구 결과로도 뒷받침되었다. 미국 다트머스대학의 메건 마이어(Meghan L. Meyer) 교수가 실행한 실험 결과에 따르면 우리는 미래 자기를 현재의 자신과 거의 관계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한다. 실험 참가자들은 다양한 시점의 미래 자기와 함께 전혀 모르는 타인, 예를 들어 정치인 앙겔라 메르켈에 대해 생각해보라는 요청을 받았다. 놀랍게도 고작 약 6개월 후의 자신을 생각할 때와 타인을 생각할 때의 두뇌 활동이 유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모든 사람이 이러한 경향성을 보이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불교에서는 부처가 인간이 늙고, 병이 들며,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 인생무상을 느끼고 자신에게도 이러한 일이 생기게 될 것을 깨달아 출가했다고 설명한다. 이때 그의 나이 불과 스물아홉이었다. 부처는 노쇠하여 죽음에 이를 미래 자기와 현재 젊고 건강하며 권세가 있는 자신을 별개로 보지 않았고, 그 결과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미래 자기를 나로 인지하면 더 아끼고 돌본다

깨달음까지는 아니더라도, 미래 자기와 현재 자기를 긴밀히 연결 지을 수 있다면 긍정적인 결과가 나올 법하다. 여기에 대해서는 UCLA에서 마케팅, 행동 의사결정, 심리학 등을 가르치는 할 허시필드(Hal Hershfield)의 연구를 참조할 만하다. 허시필드는 먼저 미래 자기와 현재 자기의 연결도를 측정하는 지표를 만들었다. ‘미래자기-연속성’이 그것이다.

위의 그림에서 보듯 현재 자기(current self)와 미래 자기는 두 원으로 표현된다. 두 원이 많이 겹쳐 있을수록 현재 자기와 미래 자기가 긴밀히 연결되어 있음을 뜻한다. 허시필드의 실험에서 참가자들은 현재 자기와 10년 후 자기의 연결 정도를 가장 잘 나타낸 그림을 고르도록 요청받았다. 실험 결과, 현재 자기와 미래 자기를 더 많이 동일시할수록 운동 빈도와 전반적인 건강 상태가 좋았으며, 저축도 더 열심히 했다.

마이어와 허시필드의 실험은 앞서 말한 어떤 생활 습관이 가속(감속)노화를 일으킨다는 것을 아는 것과 실천 사이의 괴리에 대한 해답이 될 수 있다. 즉, 미래 자기-연속성이 약한 사람은 어떤 행동(이를테면 단순당과 정제 곡물을 먹는 것)이 수십 년 뒤의 자신에게 부정적으로 작용할 것임을 알지만, 미래 자기를 마치 타인처럼 인지하기 때문에 계속해서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상상하여 점차 가까워지기

미래 자기-연속성을 강화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허시필드는 몇 가지 대안을 제시했다.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은 자신이 70세처럼 보이도록 만들어진 아바타가 있는 가상현실 환경에 들어갔다. 실험 참가자들은 이후의 의사결정에서 은퇴를 위해 돈을 저축하겠다고 답하는 등 재정적으로 더 책임감 있게 바뀌었다. 자신의 사진을 나이 든 모습으로 수정하여 보여주는 사진 앱들을 활용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또 다른 대안은 20년 후의 자신에게 편지를 쓰는 것이다. 편지에는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고 향후 계획을 설명하는 내용이 들어간다. 허시필드의 연구에서는 이러한 활동이 사람들의 운동량을 늘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필즈상을 수상한 허준이 교수는 모교인 서울대 졸업식에서 축사를 하며 이런 말을 남겼다. “그 끝에서 오래 기다리고 있는 낯선 나를 아무 아쉬움 없이 맞이하길 바랍니다.” 이처럼 나를 오래 기다리고 있는 미래 자기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한번 가져보면 어떨까?

정희원

아산병원 노년내과 임상조교수. 《당신도 느리게 나이 들 수 있습니다》, 《느리게 나이 드는 습관》등의 저자이기도 하다. 사람들을 건강하게 만들어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