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속노화를 막으려면 가장 먼저 무엇을 해야 하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수면이다. 기대수명과 관련된 올바른 생활습관으로 과학자들이 꼽는 것은 적정 체중, 신체활동, 양질의 식사, 절주, 금연, 스트레스 관리, 적절한 수면이다. 그런데 수면이 부족하면 이 7가지 인자의 균형이 무너져버린다. 왜 그럴까? 수면 부족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자.
글 정희원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교수
건강에 백해무익한 ‘수면 부족’
하루 밤을 새면 혈중알코올농도 0.08%일 때와 비슷한 정도의 집중력 장애를 일으킨다. 면허취소에 해당하는 수치다. 수면이 부족하면 스트레스 호르몬 분비가 증가하고, 뇌에서 자제력을 담당하는 전두엽 기능은 저하된다. 스트레스 호르몬이 평소보다 더 분비된 상태에서는 단순당, 정제 곡물, 술·커피·담배와 같은 해로운 자극의 유혹에 더 취약해진다. 또 심혈관계의 긴장도를 높여 심근경색과 같은 질환으로 사망할 가능성을 높이고, 면역력도 떨어진다. 불면증이나 수면무호흡증 등 수면장애가 있는 남성은 전립선암 발병률이 2배 이상 높아진다.
밤새우지 않으면 괜찮을까? 약간의 수면 결핍이 일정 기간에 걸쳐 쌓여도 비슷한 결과를 초래한다. 열흘 동안 하루에 6시간만 잠을 자면 밤새운 것과 비슷한 수준의 집중력을 보인다. 권장 수면시간은 나이에 따라 다른데, 미국 국립수면연구재단의 자료에 따르면 1~2세는 11~14시간, 6~13세는 9~11시간, 18~25세는 7~9시간, 26세 이상은 7~8시간은 자야 한다고 한다. 한국은 수면 부채(sleep debt), 즉 밀린 잠에 시달리는 국가다. 수면 부채가 늘어날수록 판단력과 인지기능 저하는 물론, 치매 위험도 높아진다. 그렇지만 적정 수면시간보다 너무 오래 자도(1~2시간 이상) 비만과 심뇌혈관질환 등의 위험이 커지므로, 잠을 무작정 많이 자는 것보다는 적정 수면시간을 균형 있게 유지하는 것이 좋다.
나누어 보충하는 잠, 그러나 지나치지는 않게
잠을 보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조건부 낮잠을 잔다. 밤잠에 악영향을 주지 않기 위해서다. 밤잠에 드는 시간 8시간 전까지의 낮잠 30분은 좋은 피로 개선제다. 일주일에 한두 번 낮잠을 자면 심근경색·심장마비·뇌졸중 같은 질환의 발생 위험성이 낮아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다만 낮잠을 너무 길게 자면 불면증이 생길 수 있다. 30분 이상 자면 깊은 잠을 자는 단계로 들어가면서 뇌가 억제돼 쉽게 깨어나지 못하고, 깨더라도 뇌가 억제된 상태인데다 기운도 빠져서 곧바로 다시 일하기 어렵다.
둘째, 주말이나 휴일에 적정 수면시간을 보충하는 방법이 있다. 그렇다고 한꺼번에 몰아 자는 것은 좋지 않다. 미국 콜로라도대학교의 케네스 라이트 연구팀에 따르면, 주말에 잠을 몰아서 자면 수면패턴이 바뀌고 생체리듬이 깨어져 오히려 악영향을 끼친다고 한다. 체중이 늘거나 간을 포함한 근육에서 인슐린 저항성(혈당 조절을 위한 인슐린이 정상치보다 더 필요한 상태, 높을수록 해롭다)이 높아지기도 했는데, 높은 인슐린 저항성은 가속노화의 첫걸음이다.
그렇다면 몇 시간을 자야 할까? 하루에 2시간씩 보충하는 게 가장 좋다. 충남대학교 약학대학, 서울대학교병원, 분당서울대학교병원 공동 연구팀이 한국인 1만 7,66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연구 결과, 수면을 보충하면 체내 염증 지표인 C-반응성 단백질(CRP) 수치가 낮아짐을 확인했다. 단, 보충시간이 2시간을 넘어가면 오히려 염증 수치가 올라간다. 필자는 주말 이틀간 기상 시간을 2시간씩 늦추는 것을 추천한다.
잠 못 드는 밤에서 벗어나려면
시간이 넉넉해도 잠을 못 자는 사람들이 있다. 수면장애가 있는 경우다. 불면, 수면 관련 호흡장애, 과다수면증, 일주기 리듬 수면장애, 수면 관련 운동장애 등이 수면장애에 속한다. 2023년 국민건강보험공단이 건강보험 진료 데이터를 활용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2년에 수면장애로 건강보험 진료를 받은 사람은 약 110만 명이었다. 이는 보험 진료를 받은 사람의 숫자이니, 실제로는 훨씬 더 많은 사람이 잠 못 드는 밤을 보낸다는 의미다. 수면장애가 있다면 수면 전문의가 진료하는 병원을 찾는 게 좋다. 대한수면의학회 홈페이지에서 ‘수면클리닉 찾기’를 클릭하면 지역별 수면 전문 병의원을 찾을 수 있다. ‘○○ 수면 이비인후과’ 등 병원 이름에 ‘수면’이 포함된 병원에 찾아가도 좋다.
병원에 가기 전에 시도해볼 만한 방법도 함께 소개한다. 첫째, 수면위생 지키기다. 수면위생은 잘 자기 위해 지켜야 하는 습관이다. ‘위생’이라는 용어를 쓴 것은 비위생적으로 지내면 병에 걸리기 쉽듯이, 이 습관을 지키지 않으면 수면장애가 생길 수 있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지켜야 할 수면위생에는 일주기 리듬(Circadian rhythms)조절이 있다. 수면에 영향을 주는 생체 리듬인 일주기 리듬은 햇빛으로 적절히 조절할 수 있다. 기상 후 30분 안에 밖으로 나가 햇빛을 보자. 햇빛을 본 15~16시간 후에 저절로 잠이 올 것이다.
둘째, 수면을 방해하는 물질을 멀리한다. 우선 카페인이 포함된 커피, 녹차, 콜라 등을 피하고, 마셔야 한다면 카페인 함유량을 확인해 되도록 적게 섭취하는 것이 좋다. 멀리해야 하는 물질에는 알코올도 포함된다. 알코올은 수면제처럼 신경전달물질인 가바(GABA)를 활성화하여 수면을 유도하기도 하는데, 문제는 수면의 질을 떨어뜨린다는 점이다. 수면무호흡증과 하지불안장애, 주기성 사지운동증 등 수면 중 운동장애도 술을 자주 마시는 사람에게서 더 흔하다.
잠은 건강 유지에 꼭 필요한 행위이며, 효과가 가장 뛰어난 공짜 보약이다. 잠을 줄이고 일하면 푹 자고 나서 일할 때보다 훨씬 능률이 떨어지므로 금물이다. 독자 여러분의 숙면을 기원한다.
정희원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임상조교수. 《당신도 느리게 나이 들 수 있습니다》, 《느리게 나이 드는 습관》등의 저자이며, 사람들을 건강하게 만들어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