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종 이상의 약물을 복용하는 경우를 다제약물 복용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는 전 세계적으로도 약물을 많이 복용하는 나라로 손꼽힌다. 특히 75세 이상 노인이 5종 이상의 약물을 복용하는 비율이 64.2%로, OECD 국가 중 3위이다(OECD 국가 평균 50.1%). 나이가 들수록 동반 질환이 늘어나고, 이에 따라 처방받는 약물도 증가할 수밖에 없다. 고령층에 흔한 다제약물 복용, 안전하고 효과적인 방법을 알아보자.
글 정희진 울산대학교병원 무균조제실 약사
한국의약품안전관리원은 2025년 7월 기준으로, 치료 효과의 변화나 심각한 부작용 발생 우려가 있어 동시에 사용하지 않아야 하는 병용금기 의약품 조합 1,500여 개를 제시했다. 처방이 필요한 전문의약품은 그 의약품을 사용하지 않으면 질환이 조절되지 않아 더 큰 위험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여러 방법으로 보완하며 조심스럽게 병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처방전 없이 구입할 수 있는 일반의약품이나 건강기능식품, 음식 간 상호작용은 관리가 어렵다.
일반의약품도 약물 상호작용에 주의
많은 사람이 간과하지만, 일반의약품도 처방약만큼이나 복잡한 상호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특히 약물 중복은 심각한 문제다. 다양한 증상을 치료하기 위해 사용되는 일반의약품에는 동일한 활성 성분이 함유될 수 있어서, 사용 중인 모든 약물에 붙어 있는 라벨을 읽지 않으면 실수로 과다 사용할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감기약, 소염진통제들 간의 상호작용이다. 시중에 판매되는 감기약 대부분은 비슷한 성분의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고, 소염진통제 성분도 포함된다. 디펜히드라민(diphenhydramine)은 항히스타민 작용으로 콧물을 억제하는 성분인데, 이 성분이 종합감기약에도 들어 있고 수면유도제에도 들어 있다. 감기에 걸린 사람이 낮에는 종합감기약을 먹고 밤에는 수면제를 추가로 복용하면, 디펜히드라민을 이중으로 복용하게 되어 과도한 졸림이나 어지러움이 나타날 수 있다. 아세트아미노펜(acetaminophen)도 여러 약에 포함되는 단골 성분 중 하나다. 해열진통제, 감기약, 두통약에 모두 들어 있어서 자칫 과량 복용할 위험이 있다.
제산제는 대부분의 약물 흡수에 영향
처방 없이 살 수 있는 진통제 중 아세트아미노펜과 쌍벽을 이루는 성분이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진통제(NSAIDs)이다. 이에 해당하는 이부프로펜(ibuprofen), 덱시부프로펜(dexibuprofen), 나프록센(Naproxen) 등은 몸에서 작용하는 방식이 비슷해 함께 복용하면 위장관출혈이나 신장 관련 부작용 위험이 증가한다. 아스피린(aspirin)은 진통제로 사용하는 경우가 적지만,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진통제에 해당한다. 아스피린을 혈전 예방 목적으로 복용하는 사람이 두통 때문에 이부프로펜을 복용하면 아스피린의 혈전 예방 효과가 떨어질 수 있다.
제산제는 위산을 중화하기 때문에 거의 모든 약물의 흡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특수 코팅되어 장까지 버티게 만든 장용정이 아니라면 많은 약은 위에서 녹아 흡수되는 경우가 많다. 이때 제산제가 위 속을 코팅했거나 위 속 환경을 바꾸면 약이 제대로 흡수될 수 없다. 알루미늄이나 마그네슘, 칼슘 성분의 제산제는 일부 항생제와 결합해 항생제 효과를 떨어뜨릴 수 있다. 또 철분은 위산이 있는 공복에 복용해야 효과가 좋기 때문에 제산제와 함께 복용하면 철분이 제대로 흡수되지 않는다.
전문의약품과 일반의약품 간의 상호작용
처방받은 전문의약품과 일반의약품 간의 상호작용도 있다. 가장 흔한 예가 감기약과 혈압약의 상호작용이다. 감기약에 들어 있는 슈도에페드린이나 페닐에프린 같은 코막힘 완화 성분은 혈관을 수축해서 혈압을 올리는 작용을 한다. 고혈압환자가 혈압약을 복용하면서 감기약을 함께 먹으면 혈압 조절이 어려워질 수 있다.
항우울제 중 세로토닌재흡수억제제(SSRI) 계열 약물을 복용 중인 사람이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진통제를 복용하면 위장관출혈 위험이 증가한다. 항응고제인 와파린을 복용하는 환자가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진통제를 함께 복용하면 출혈 위험이 증가한다. 경구피임약을 복용하는 중에 리팜피신 같은 일부 항생제를 함께 복용하면 피임약이 몸 안에서 빨리 사라지게 해 피임 효과를 떨어뜨릴 수 있다.
건강기능식품도 주의
건강기능식품과 약물의 상호작용도 무시할 수 없다. 밀크시슬은 혈당강하제와 함께 복용하면 저혈당이 생길 수 있다. 자몽주스는 간에서 약물을 대사하는 효소를 억제해서 약이 몸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게 만든다. 하지만 평상시에는 약을 먹은 후 몸 밖으로 빠져나갈 것까지 계산해서 복용하는 양이나 간격이 정해지기 때문에, 자몽이나 자몽주스를 먹으며 약을 평상시처럼 먹으면 몸에 약이 몇 배나 많이 쌓여 위험해질 수 있다.
이처럼 약물 상호작용은 생각보다 다양한 경로와 방식으로 나타난다. 하루에 한 알씩 먹는 혈압약 한 가지만 복용한다고 하더라도, 여기에 감기약이나 진통제가 더해지고, 건강을 위해 챙겨 먹는 비타민이나 건강기능식품, 간혹 마시는 자몽주스 한 잔까지 포함되면, 이미 여러 상호작용이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다.
약물을 처방할 때 DUR(Drug Utilization Review·의약품안전사용서비스) 시스템을 활용하면 주의해야 하는 약물 조합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환자가 처방 없이 산 일반의약품이나 건강기능식품을 함께 복용하는 경우는 시스템상에서 확인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자신이 먹는 약의 이름과 용량, 복용 시간, 복용 이유 등을 정확히 알고 새로운 약이 추가될 때마다 확인해야 한다. 복용 중인 약이 많다면 약 목록을 정리해두었다가 새로운 약을 처방받을 때 기존 약 목록을 확인받는 것이 좋겠다. 또 단골 약국을 정해두고, 그곳에서 자신이 먹는 모든 약을 관리받는 것도 방법이다. 상호작용이 있다고 해서 무조건 약을 사용하면 안 되는 것은 아니고, 복용간격을 떨어뜨리거나 병용하는 약 중 중요도를 따져 덜 중요한 약을 조절하는 등 여러 방법이 있다. 스스로 확인하는 습관이 약물상호작용으로 인한 사고를 막을 수 있다.
정희진
울산대학교병원에서 무균조제실을 담당하고 있는 약사. 병원 약사의 생활을 담은 블로그를 운영하고 병원약사회 홍보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