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상비약

임신했는데
약 먹어도 될까?

임신 기간 중에는 많은 것이 조심스럽고 약에 대해서는 특히나 더 그렇습니다. 태아에게 해롭지 않을까 걱정되어 약이 필요한 상황인데도 참거나, 복용하던 약을 임의로 중단하거나, 복용량을 줄이는 임부가 많습니다. 그러나 임부가 꼭 치료받아야 할 상황이라면 태아에게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주의 깊게 관찰하면서 임부에게 상대적으로 안전한 의약품을 사용해야 합니다.

정희진 울산대학교병원 약제팀 약사

‘임부 금기 의약품 목록’ 참고하여
의료진과 상의

임부에게 사용하는 약물이 태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판단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임부를 대상으로 임상실험을 해볼 수 없어 자료가 부족한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는 의료진의 결정을 돕기 위해 의약품안전사용서비스(DUR)에서 임부에게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는 약 정보를 제공합니다. 한국의약품안전관리원 사이트에 공개된 ‘임부 금기 의약품’ 목록이 바로 그것이며, 최신 연구 결과를 반영하여 계속 수정됩니다. ‘임부 금기 성분’이란 태아에게 해로울 가능성이 높아서 임부에게 권장하지 않는 약 성분을 말합니다. 하지만 다른 약처럼 많은 임상실험 결과를 모은 게 아니고, 동물실험 결과만 있는 경우도 있어 정확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동물실험에서 대량 투여에 의해 기형 발생 보고’라는 문구가 있는 약이라도 ‘사람에게’ ‘적은 양을 투여’하면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임부 금기’로 공고된 약이라도, 임부를 치료하는 데 반드시 필요하고 대신할 다른 약이 없다면 의료진의 판단과 환자의 결정에 따라 투여할 수도 있습니다.

치료 중단하면 더 위험한 만성질환
안전하게 관리하기

치료가 필요한 만성질환이 잘 관리되지 않으면 임부뿐 아니라 태아의 건강에도 해로울 수 있으니 치료를 중단하지 말고, 임신 단계 부터 의료진에게 알려 임부와 태아 모두에게 안전한 치료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고혈압 약 중 안지오텐신 수용체 차단제, 안지오텐신 전환효소 억제제 성분은 주의가 필요합니다. 이름이 ‘-탄’, ‘-프릴’로 끝나는 성분들인데, 고혈압 약에는 이 외에 다른 성분도 많습니다. 그러니 전문가와 상담 후 다른 약으로 변경하는 등 대안을 마련해볼 수 있습니다. 갑상선 질환에 항갑상샘제, 갑상샘호르몬제를 사용하는 것은 비교적 안전합니다. 오히려 갑상선 질환이 잘 관리되지 않으면 태아에게 더 위험할 수 있으니 약을 더욱 잘 복용해야 합니다. 철분제와 갑상샘호르몬제를 함께 복용하면 철분과 달라붙으면서 갑상샘호르몬제의 효과가 떨어집니다. 그러니 2시간 정도 간격을 두고 복용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어떤 약이든 혼자 판단하기보다
전문가에게 문의

우울장애가 있는 임부들 중에서도 태아를 걱정하여 약물 복용을 중단할까 고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우울장애에 많이 쓰는 약들이 태아에게 해를 끼친다는 것은 근거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갑자기 약 복용을 중단하면 증상이 재발하여 치료를 더 많이 받아야 하는 상황이 생기거나 금단증상의 위험도 있습니다. 그러니 혼자 판단하지 말고 의료진과 논의하여 치료를 결정해야 합니다.

그러나 명백하게 임부와 태아보다 덜 중한 증상에 사용하는 약인데 태아에게 부작용 가능성이 높다면 중단하기도 합니다. 흔한 예가 여드름 치료제로 많이 쓰이는 이소트레티노인, 탈모 치료제인 피나스테리드입니다. 특히 탈모 치료제는 배우자가 사용해도 태아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으니 꼭 의료진에게 알려야 합니다.

입덧에는 독시라민과 피리독신이 함께 들어 있는 복합제를 사용합니다. 졸음을 유발하는 항히스타민제 성분이 있어 하루에 한 번 복용할 땐 자기 전에, 여러 알을 복용할 땐 낮에 1알을 복용하고 밤에 2알을 복용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약 이름 뒤에 ‘장용정’이 붙어 있는 건 장에서 녹는다는 뜻인데, 이 약을 깨거나 부숴 먹으면 장 전에 있는 위에서 다 녹아버려 효과를 보기 어렵습니다. 그러니 통째로 삼키면 됩니다. 미열이 난다면 수분을 충분히 섭취하며 경과를 지켜볼 수도 있으나, 38℃ 이상의 열이 난다면 해열제를 복용하고 진료를 받아야 합니다. 이때 해열제에는 아세트아미노펜 성분 하나만 있어야 합니다. 해열 및 진통제는 아세트아미노펜뿐 아니라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진통제’ 성분도 있는데, 임부에게는 제한된 상황에서 불가피한 경우에 아주 조심스럽게 사용해야 합니다. 집에서 열이 날 때 그냥 쓸 수 있을 만한 약은 아닙니다. 이에 해당하는 성분은 이부프로펜, 디클로페낙, 덱시부프로펜 등 너무 많아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들 정도이며, 이 성분들이 포함된 일반 약은 더더욱 많습니다. 심지어 파스나 구강 스프레이에도 들어 있습니다.

그러니 종합감기약, 생리통 약 등 아프거나 열날 때 사용하는 약에 아세트아미노펜 외의 성분이 들어 있다면 전문가에게 문의해 복용해도 되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아세트아미노펜만 들어 있는 약은 타이레놀, 세토펜, 써스펜 등 많은 종류가 있는데, 이 약들은 단기간 복용 가능합니다. 하지만 약을 먹었는데도 열이 떨어지지 않거나, 고열이 난다면 바로 병원으로 가야 합니다. 변비에는 수산화마그네슘 성분이 들어 있는 마그밀을 복용할 수 있고, 소화가 안 되거나 속이 쓰릴 때는 위장약을 복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미소프로스톨이 든 위장약은 피해야 합니다.

모든 임부에게 일괄적으로 같은 내용을 안내하기엔 어려움이 많습니다. 그래서 약을 쓰지 않으면 더 위험할 때, 환자 개인의 특성을 고려해서, 비교적 임부에게 문제없이 많이 사용한 약을, 최소한의 양으로 가능한 짧은 기간에, 조심스럽게 사용합니다. 그러니 전문가가 내린 판단을 믿고, 임의로 약을 중단하거나 줄여서 사용하지 말고 스스로와 태아의 건강을 지키길 바랍니다.

정희진

울산대학교병원에서 무균조제실을 담당하고 있는 약사. 병원 약사의 생활을 담은 블로그를 운영하고 병원약사회 홍보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