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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맞는 약과 용량을 찾아가며

안전하게 항우울제 복용하기

우울증과 우울장애를 흔히 ‘마음의 감기’라고 표현하지만, 감기와 달리 일주일 정도면 저절로 낫는 질환이 아니다. 생각, 관심, 행동, 신체 활동 등 전반적인 전신 기능이 지속적으로 저하되어 일상에 악영향을 미치는 상태이므로, 적극적으로 치료해야 한다.

정희진 울산대학교병원 약제팀 약사

우울장애와 관련된 뇌 신경전달물질의 불균형을 맞추어 치료하는 약물이 항우울제이다. 우울장애와 관련된 뇌 신경전달물질로 알려진 세로토닌, 노르에피네프린, 도파민에 작용하는 방법에 따라 약물을 분류한다.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
(Selective Serotonin Reuptake
Inhibitors, SSRI)

약물 치료 시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로 치료를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이 약은 뇌에서 세로토닌 재흡수를 막아 활동하는 세로토닌이 늘어나도록 하여 우울 증상을 완화한다. 에스시탈로프람(escitalopram), 플루옥세틴(fluoxetine), 파록세틴(paroxetine)등의 성분이 있고, 강박장애 등을 치료할 때도 쓰인다. 다른 항우울제에 비해 부작용이 적고, 실수로 과량 복용했을 때도 비교적 안전하다고 알려져 있다. 부작용으로는 식욕부진, 긴장감, 불면증, 구역감, 구토, 설사, 두통, 졸림이 있는데, 대개 그 정도가 심하지 않고 몇 주 안에 사라진다. 하지만 투여 시작 시 또는 용량을 높인 첫 1주 동안 불안이나 우울 증상이 더 심해지는 경우가 간혹 있고, 오래 사용하면 체중이 증가하거나 성기능장애 등이 나타날 수 있다.

세로토닌 노르에피네프린 재흡수 억제제
(Serotonin Norepinephrine
Reuptake Inhibitors, SNRI)

세로토닌 노르에피네프린 재흡수 억제제’는 세로토닌과 노르에피네프린의 재흡수를 막는다. 둘록세틴(duloxetine), 벤라팍신(venlafaxine), 데스벤라팍신(desvenlafaxine) 등의 성분이 있고, 당뇨병성 말초 신경병증 치료나 범불안장애 등을 치료할 때도 쓰인다. 부작용으로는 구역감, 구토, 두통, 현기증, 식욕부진, 불면증, 발한, 변비, 성기능장애 등이 있다. 벤라팍신을 복용하면 혈압이 높아질 수 있으므로, 고혈압이 있다면 혈압 관리에 신경 써야 한다.

삼환계 항우울제
(tricyclic antidepressants, TCA)

‘삼환계 항우울제’는 세로토닌, 노르에피네프린, 도파민의 재흡수를 막는다. 아미트리프틸린(amitriptyline), 이미프라민(imipramine), 클로미프라민(clomipramine) 등의 성분이 있고, 야뇨증이나 강박 치료에 쓰이기도 한다. 부작용으로는 입마름, 시야흐림, 현기증, 변비, 인지능력 저하, 실신, 부정맥, 체중증가, 성기능장애 등이 있다. 특히 전립선비대증 환자의 소변 배출을 힘들게 하고, 녹내장 환자의 안압을 올릴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 또 기립성저혈압을 유발해 넘어질 위험을 높이므로, 고령 환자가 복용하는 경우 눕거나 앉은 상태에서 일어설 때 천천히 움직여야 한다.

모노아민 산화효소 저해제
(monoamine oxidase inhibitors, MAOI)

‘모노아민 산화효소 저해제’는 세로토닌과 노르에피네프린을 분해하는 효소의 작용을 막는다. 모클로베미드(moclobemide)가 있고, 사회공포증 치료에도 쓰인다. 다른 항우울제에 비해 부작용이 심한 편이어서 우울장애 치료에 처음부터 쓰는 경우는 거의 없다. 심한 부작용으로는 갑작스럽게 심각한 수준으로 혈압이 오르는 고혈압성 위기 등이 있다. 투약하는 동안 치즈나 버터 등 발효유 가공식품을 함께 먹으면 위기 발생 위험이 커지니, 관련 식품군을 피해야 한다. 섬망이나 근육강직 등을 일으킬 수 있는 세로토닌증후군도 나타날 수 있다. 이는 세로토닌 활성을 높이는 약물 여러 개를 동시 복용하면 발생 위험이 더 커진다. 그러므로 세로토닌을 높이는 다른 항우울제와 동시에 복용하지 않도록 하고, 다른 항우울제를 중단한 지 얼마 안 됐을 때도 복용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임의로 복용을 중단하지 말고,
반드시 전문가와 상담

정신질환에 사용하는 약물은 하나의 증상이 아닌 여러 증상의 치료를 위해 쓰이는 경우가 많으므로, 약 봉투나 약품설명서에 적힌 대표적인 증상 하나만 보고 스스로 해당 증상이 좋아졌다고 판단하여 임의로 복용을 중단하면 안 된다. 또 항우울제는 투여 후 효과가 나타나기까지 몇 주 정도 시간이 걸리는데, 바로 증상이 나아지지 않았다고 해서 전문가와 상의하지 않고 갑자기 복용을 중단하면 어지러움, 이상감각, 수면장애, 무력증, 초조 등 금단증상이 나타날 수 있고, 개선 중이던 우울 증상이 다시 심해지거나 재발할 수 있다. 항우울제는 투여 2~3주 후에 효과를 보이기 시작하며, 대개 4~6주 정도 지나면 충분한 효과가 나타난다. 우울 증상이 나아졌다고 해도 임의로 중단해서는 안 된다. 재발을 막기 위해 전문가와 상의하여 점차 감량해야 한다.

부작용이 나타나더라도 복용 여부를 임의로 판단하지 말고, 바로 전문가와 상담해 약을 조절하면서 본인에게 맞는 약과 용량을 찾아가야 한다. 항우울제 부작용 중 대부분은 저용량을 사용하거나 서서히 용량을 조절하면 최소화할 수 있다. 뇌의 신경전달물질을 조절하는 약 중 오용 또는 남용의 위험이 높은 ‘항정신성의약품’인 항우울제에 대해 중독이나 부작용을 많이 걱정하는데, 전문가의 처방대로 올바르게 사용한다면 우울장애 개선에 필요한 정도로만 신경전달물질을 조절해 중독 등 위험을 충분히 낮출 수 있다.

정희진

울산대학교병원에서 무균조제실을 담당하고 있는 약사. 병원 약사의 생활을 담은 블로그를 운영하고 병원약사회 홍보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