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종 이상의 약물을 복용하는 경우를 다제약물 복용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는 전 세계적으로도 약물을 많이 복용하는 나라로 손꼽힌다. 특히 75세 이상 노인이 5종 이상의 약물을 복용하는 비율이 64.2%로, OECD 국가 중 3위이다(OECD 국가 평균 50.1%). 나이가 들수록 동반 질환이 늘어나고, 이에 따라 처방받는 약물도 증가할 수밖에 없다. 고령층에 흔한 다제약물 복용, 안전하고 효과적인 방법을 알아보자.
글 정희진 울산대학교병원 무균조제실 약사
부작용 위험을 높이는 다제약물 복용
다제약물 기준은 전 세계적으로 5개 이상, 우리나라는 10개 이상이다. 2023년에 10개 이상의 약을 2개월 이상 복용한 환자는 약 130만 명으로, 이 중 103만 명은 65세 이상이다. 이는 2019년 84만 명에서 50% 이상 증가한 수치이며, 심지어 20개 이상 약물을 복용하는 환자도 3만 명이 넘는다.
복용 약물이 많으면 약물 부작용이 증가할 뿐 아니라 응급실 방문, 입원, 사망률이 높아지고 병원 방문 횟수와 의료비도 증가한다. 복용하는 약끼리 상호작용을 일으켜 효과를 반감하거나 부작용이 생기기도 한다. 여러 병원에서 동일한 성분의 약을 중복 처방받는 사례도 종종 있다. 특히 신체 또는 인지기능이 저하된 사람은 많은 개수의 약을 용법에 따라 정확히 복용하기 어려워 잘못된 복용으로 이어질 위험이 크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나라에서는 2018년부터 다제약물관리사업을 하고 있다. 전문가들이 개인 특성에 맞춰 사용 중인 약물을 점검하여 처방을 조정하며, 환자 상담과 약물 교육을 제공하는 사업이다. 처방약뿐만 아니라 개인이 구매한 일반약, 건강기능식품까지 모두 검토하여 불필요한 약을 줄이고, 환자가 자신이 복용하는 약물을 정확히 인지하고 올바르게 사용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목표다.
유의미한 성과가 보이는 다제약물관리사업
미국, 캐나다, 호주, 일본 등도 이와 유사한 사업을 진행 중이다. 약사는 환자가 사용하는 모든 처방약, 일반약, 온라인에서 구매한 건강기능식품 등의 현황을 검토하여 상담하고, 필요시 주치의와 협의하여 처방을 조정한다. 환자 정보 공유를 위한 네트워크 시스템을 활용하며, 약국이나 병원은 물론 가정을 방문해 상담과 교육을 진행하기도 한다.
몇 년 전 다제약물관리사업이 시작된 초기에는 반응이 좋지만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신뢰가 형성되고 상담일이 아닌데도 약사를 찾아오는 환자가 늘어났다. 특히 고령 환자나 1인가구에서 상담 호응도가 높았고, 질환과 사용 의약품 수가 많을수록 다제약물관리에 대한 만족도가 높았다. 교육을 통해 잘못된 약 사용법과 보관방법, 동일 성분 중복 복용, 약물 상호작용 문제 등이 개선되었고, 처방약, 일반약, 건강기능식품 개수가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감소했다. 약물 관련 문제와 개선 방향을 적은 상담기록지를 주치의에게 전달하자 다제약물관리사업에 참여하는 의료진도 늘어나는 추세다.
다제약물 복용자는 주로 고령층이다. 나이가 들면 신체 기능이 저하되면서 약물의 흡수와 배설 능력도 감소하기 때문에 약물 사용에 주의해야 한다. 특히 ‘노인 주의 약물’은 약 선택과 사용에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아미트립틸린(amitriptyline), 클로미프라민(clomipramine), 알프라졸람(alprazolam), 클로나제팜(clonazepam) 등이 이에 해당한다. 어지러움이 나타날 수 있어 낙상과 골절 위험을 높이거나 인지력을 떨어뜨리는 등 부작용 위험이 있다.
노인 주의 약물은 대부분 특정 증상 조절에 필수적인 처방의약품이라 무작정 피할 수는 없다. 약물 부작용은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는 것은 아니므로 부작용 위험이 있더라도 주치의의 판단 아래 약물을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개인이 피할 수 있는 약도 있다. 처방 없이 약국에서 구입할 수 있는 일부 소염진통제나 해열진통제, 일부 소염진통제나 해열진통제 중 아세트아미노펜을 제외한 대부분의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진통제(NSAIDs)는 부작용 가능성이 높아 주의가 필요하다. 부작용 위험이 낮은 약이라 해도 여러 개를 함께 복용하면 그 위험은 눈에 띄게 커지므로, 자신이 복용 중인 모든 약을 의사나 약사에게 수시로 공유하고 상담하는 것이 중요하다. 각종 영양제, 한약, 건강기능식품도 약처럼 몸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반드시 함께 알려야 한다.
자신에게 맞는 약물 관리 방법 찾기
다제약물과 노인 주의 약물을 관리하는 데는 개인이나 가족의 역할도 중요하다. 만성질환 약은 꾸준히 복용하는 것이 원칙이므로 약 복용량을 조절하거나 복용을 중단했다면 주치의에게 알려야 한다. 부작용이 생겼을 때도 마찬가지다. 여러 병원에서 약을 처방받은 경우, 다니던 병원이나 약국에 기존 약과 함께 복용해도 괜찮은지 확인해야 한다. 좌약을 먹거나, 코에 뿌리는 스프레이를 입에 사용하는 등 외용제를 잘못 쓰는 경우가 종종 있으니 사용법을 잘 알아두어야 한다. 또 약 복용 시간이 식전 1시간, 식간, 식후 30분, 취침 전처럼 복잡하면 약을 빠뜨릴 수도 있으므로 전문가와 상담해 복용 시간대를 조정하는 등 방법을 찾아야 한다.
정희진
울산대학교병원에서 무균조제실을 담당하고 있는 약사. 병원 약사의 생활을 담은 블로그를 운영하고 병원약사회 홍보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