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만남

어린 환자들 곁을 지키는
친구 같은 의사

드림분당예치과병원
전승준 원장

경제적 상황이 여의치 않아 치과 진료를 받기 어려운 이들에게 치과의사들의 재능 기부는 현실적으로 많은 도움이 된다. 오랜 기간 꾸준히 봉사 진료를 하며 장애아동들의 치아 건강을 위해 애쓰고 있는 전승준 원장. 대학 시절 참여한 무의촌 의료봉사에서 느꼈던 짜릿한 희열감에 이 일을 ‘끊지 못해’ 지금까지 지속하고 있다는 전 원장은 봉사는 취미 활동과도 같아 당연히 재미있고 즐거우니 더 많은 사람과 이 기쁨을 함께 나누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편집실 사진 윤선우

30년간 아이들과 같이 성장해온
소아치과 전문의

병원에 들어서자마자 마주한 한 아이의 울음소리. 어른들도 무서워하는 곳이 치과병원인지라 어린이는 오죽하랴 싶은데, 기구가 닿기도 전에 몸을 비틀고 비명 지르는 꼬마 환자를 어르고 달래는 의사 선생님의 스킬이 보통이 아니다. 비명에 가까운 울음을 터뜨리던 아이가 차분하게 진정되는 모습에서 소아치과 전문의 30년의 내공이 하루아침에 생긴 것이 아니다 싶다.

“소아치과 의사의 스킬은 손보다는 심리전이 좌우한다고 봐야 합니다. 아이들이 지금 어떤 마음으로 저런 행동을 하는지 읽어내는 것이 우선이거든요. 소아청소년 치과 진료는 성인과 상당히 다릅니다. 성인은 치아 성장이 다 끝났지만, 성장기 아이들은 구강구조가 변하는 과정이어서 치아가 건강하게 자리 잡을 수 있도록 각별한 관리가 필요해요. 치아 성장을 저해하지 않고, 현재 상태를 힘들지 않게 지낼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중요하고, 성장기에 나타날 수 있는 이상을 조기에 발견하는 것이 소아치과 의사의 역할입니다.”

고작 생후 2일밖에 되지 않은 갓난아이의 선천치를 치료하는 일,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다 펑펑 우는 보호자를 달래는 일, 이 모두가 소아치과 의사가 해내야 할 몫이다. 여기에 더해 전승준 원장은 다른 병원에서 꺼리는 장애아동의 치과 진료까지 담당하고 있어서 녹록지만은 않을 법한데 그래서 더 인간적이라 보람도 크다고 말한다.

“처음부터 치과의사를 목표로 한 건 아니었습니다. 공부를 곧잘했고, 이과여서 그냥 막연하게 의사가 되나 보다 싶었어요. 재수는 절대 하지 않을 요량으로 안전지원해서 치과대학을 선택했는데 지금까지 제가 알고 있던 것과 다른 세계가 펼쳐지는 느낌이라고 할까? 모든 것이 흥미로웠습니다.”

특히 수련의 과정에서 소아치과를 돌면서 인간적인 분위기가 좋아 진로를 결정했다는 전승준 원장은 지금도 이 일이 여전히 흥미진진하고 재미있다고 말한다. 1996년 개원한 이후 많은 소아청소년을 만났고, 그 어린 환자들이 어른이 되어 다시 자기 아이들을 데리고 병원을 찾아오니 이보다 더 큰 보람이 어디 있겠냐는 전승준 원장. 아이들이 성장하는 만큼 자신도 같이 성장하니 이보다 더 흥미로운 직업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봉사는 누구에게도 뺏기고 싶지 않은
나만의 즐거움

성남시 한마음복지관은 장애인들의 치아 건강을 위한 구강보건실을 운영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신체적·경제적 어려움으로 적정한 시기에 치과 진료를 받지 못하는 장애인을 대상으로 정기적인 구강검진과 치과 치료를 무료로 제공한다. 진료를 위해 지역 내 치과 의사와 치위생사들이 자원봉사자로 참여하는데, 전승준 원장은 구강보건실의 창단 멤버이기도 하다.

“한마음복지관에 구강보건실을 만들려고 하는데 장애인 분야가 생소하니 조언을 해달라는 의미로 부탁을 받았는데 이게 인연으로 이어져서 지금까지 왔습니다. 10년 넘게 매주 이곳에서 봉사활동을 하면서 많이 배우고 느끼면서 사람들과 희로애락을 함께하는 기분이 듭니다.”

사실 전승준 원장의 봉사 이력은 대학생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푸른얼’이라는 봉사 동아리에서 무의촌 의료봉사를 시작하면서 짜릿한 희열을 느꼈다고 한다. 아직 여물지 않은 치대생이 뭐라고 분에 넘치게 고마워하고 인사해주시는 걸 보면서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벅찬 감동으로 다가왔다고 한다. 수련의 시절에는 몽골로 의료봉사를 떠나 치과 치료가 필요한 주민들을 진료하면서 이보다 더 내 삶의 존재 가치를 높이는 일이 또 있을까 하는 가르침을 얻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가르침은 지금껏 꾸준히 봉사활동을 이어올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되었다.

“재능 기부 봉사활동을 오랫동안 하다 보니 고민도 물론 있어요. 이게 진짜 봉사의 의미가 맞나? 치과의사로서 내가 제일 잘하는 일을 하는 것뿐인데? 땀 흘리고 노동 강도가 높은 일을 하는 것이 봉사가 아닐까? 정작 고통과 힘듦을 동반한다면 아마 할 수 없었을 텐데? 아마 재능 기부라는 것이 이런 함정이 있는 것 같습니다. 치과의사인 제게는 이 일이 솔직히 너무 쉽거든요. 그래서 고민 중입니다. 육체적·정신적으로 힘이 드는 봉사를 해야 하는지 아니면 남들이 하기 힘든 전문적인 치과 재능 기부를 계속할 것인지.”

여러 고민에도 불구하고 결국 봉사는 취미 활동처럼 즐겨야 한다는 것이 전승준 원장의 지론이다. 다른 사람들이 골프를 좋아하듯이 자신은 봉사가 좋고 하고 나면 기분이 좋으니까. 나아가 더 많은 사람이 봉사하는 재미와 기쁨을 느낄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제도적인 장이 마련되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저에게 봉사는 누구한테도 뺏기고 싶지 않은 즐거움입니다. 또 누구나 할 수 있는 쉬운 일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어릴 때부터 체험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요즘은 초등학교에도 봉사점수를 따는 제도가 있다고 하는데 점수 때문에 억지로 하더라도 한번 체험해보고 그 ‘맛’을 제대로 경험할 수도 있을 테니 더 많은 기회가 열리면 좋겠습니다.”

아이들과 눈높이를 맞추는 친구 같은 의사

전승준 원장이 치과대학에 입학할 당시 선배가 했던 말이 ‘치과의사 좋은 시절 다 지나갔는데 뭐 하러 들어왔냐?’였다. 하지만 인체에 대해 배우는 과정이 재미있었고, 무의촌 의료봉사를 할 때 막연한 사명감으로 가슴이 벅차게 뜨거웠던 기억, 졸업 후 환자들과 소통하면서 커리어를 쌓아가는 과정이 행복했기에 의사로서 자부심을 잊지 않으려 한다.

“치과대학 졸업식 때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하는데, 어린 나이에도 무척 크게 와닿았어요. 선서 내용대로 지내고자 노력하자는 결심으로 환자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다 보니 어느 해에는 직원들이 너무 힘들다고 퇴사한 적이 있었습니다. 환자를 최우선으로 하되 그 과정에서 다른 누군가의 희생을 당연시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그때 얻었어요.”

그 경험 덕분에 병원 식구들을 대하는 자세가 확연히 달라졌다고 고백하는 전승준 원장은 나이가 들어도 소아치과 의사는 성장을 거듭하는 존재들이라며 웃는다.

“30년 넘게 소아치과 의사로 몸담으면서 가장 이상적인 모습은 친구 같은 의사가 되는 것입니다. 치과를 무서워하는 어린 친구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눈높이를 맞추려는 노력을 해야 해요. 저는 지금도 아침에 눈을 떠서 그날 하루에 일어날 일들을 상상하면 저절로 미소가 지어져 서둘러 출근길에 오릅니다. 우리 후배들도 어린 환자들과 보호자, 직원들과 더불어 웃음이 떠나지 않는 근무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치과의사는 그럴 수 있는 직업이며, 그러므로 치과의사의 길은 매력이 있는 과정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