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만남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바로
내가 있어야 할 자리

아이안과
서정성 원장

작은 시골 마을에서 나고 자란 아이의 눈에 비친 의사는 좋은 일을 하는 멋진 사람이었다. 서울 어딘가에서 내려왔다는 의료봉사단원들이 동네 어른들을 진료하고, 그 덕분에 아픈 몸이 나았다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의사가 되어 누군가를 돕고 싶다’는 꿈이 생겼다. 이 어린 소년은 결국 의사가 됐고, 의료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을 위해 해외 오지마을을 찾아다니며 봉사활동을 지속적으로 이어오고 있다.

편집실 사진 윤선우

의사, 도움이 필요한 이를 돕는 ‘좋은 사람’

“의료봉사단이 오는 날이면 그야말로 온 동네가 떠들썩해집니다. 작은 시골 마을이라 병원 한번 가기가 쉽지 않은데 의사가 직접 우리 마을을 찾아주시니 얼마나 고마웠겠어요. 거동이 불편한 할아버지, 할머니부터 동네 사람들이 다 모였던 것 같아요. 어린 마음에도 의사 선생님이 환자를 진료하는 모습이 멋지고 대단해 보여 그때부터 ‘의사는 아픈 곳을 다 낫게 해주는 좋은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마음속에 새겨졌고, 지금까지 의사의 길을 갈 수 있었던 저만의 ‘명분’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어릴 적 꿈인 의사가 되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던 서정성 원장은 당초에 정형외과나 내과 혹은 산부인과를 목표로 삼았다. 그러던 그가 안과전문의로 23년을 이어온 이유는 안과야말로 사람들의 삶의 질 향상에 큰 역할을 하는 과라는 확신이 들어서라고 한다.

“우리 눈은 작은 우주와 같아서 굉장히 섬세하고 복잡하며 스페셜한 영역입니다. 안과에서 진료를 받아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수술 전과 수술 후 결과가 상당히 드라마틱해요. 저는 백내장수술만 20년 넘게 해오고 있는데, 증상이 심해 거의 앞을 볼 수 없던 환자가 수술 한 번으로 바로 시력을 회복하는 드라마틱한 변화를 목격할 때가 많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아주 당연하고 간단한 이야기로 들리겠지만, 백내장 환자에게는 삶에 희망이 되는 어마어마한 사건과도 같아요. 이러한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의사의 역할이고, 삶의 질 향상에 작은 기여라도 할 수 있어서 안과를 선택하길 잘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릴 때 만났던 의료봉사단의 모습에 반해 의대에 진학한 서정성 원장은 대학생 시절부터 꾸준히 봉사활동에 참여해왔고, 지금까지도 멈추고 싶은 마음이 없다. 여력이 되는 대로 더 많이 하고 싶고, 더 많은 사람과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다. 그가 봉사를 이토록 강조하는 데는 ‘꼭 필요한 사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라’는 부모님의 가르침도 한몫했다.

“나누고 베풀며 살아야 한다는 어머니 말씀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고 자란 영향이 아닐까 싶어요. ‘사람들과 같이 살아야 된다, 혼자 먹으면 안 된다’고 늘 강조하셔서 빵 하나가 생겨도 친구와 나눠먹었어요. 다들 그렇게 하는 줄 알았거든요.”

어린 시절 깨달은 나누고 봉사하는 마음이 성인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체화돼 서정성 원장은 도움이 필요한 곳을 다니며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자신이 그렇게 될 수 있도록 큰 가르침을 주신 어머니의 ‘잔소리’가 정말 고맙다고 말한다.

소외받는 곳에 희망나무를 심다

서정성 원장은 의대 시절부터 지금까지 무의촌 의료봉사, 외국인 노동자를 위한 의료지원과 봉사활동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또한 네팔과 파키스탄에서 발생한 지진, 태풍이 휩쓸고 간 필리핀과 미얀마, 쓰나미로 고통받는 인도네시아 등 재난이 발생한 지 72시간 이내에 해외 재난 현장에 달려가는 등 다양하게 의료봉사 활동을 펼쳤다. 아시아 각지의 재난 현장에서 구급 활동을 하던 서 원장은 봉사는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연속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의료혜택과 보건 수혜율이 낮은 지역에 직접적인 의료혜택을 지속적으로 나눠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서 원장의 취지에 공감한 여러 단체의 후원을 받아 캄보디아 광주진료소 1호를 개소했고, 건립 당시 2.8%에 불과했던 의료혜택 수혜율이 22.8%로 크게 높아지는 성과를 거뒀다. 서정성 원장은 특히 현지 의사와 간호사를 고용해 내과·안과·치과·약국 등 상시적인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했다는 점에 남다른 자부심을 느낀다.

지방정부와 민간이 협력해 이뤄낸 성공적인 공적개발원조 모델로 평가받는 ‘캄보디아 광주진료소’가 탄생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서정성 원장이 설립한 ‘사단법인 아시아희망나무’가 있었다.

“2007년 버지니아 공대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했어요. 한국인 유학생이 외국에서 적응하지 못해 벌어진 충격적인 참사를 보면서 우리 사회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당시는 다문화가정이 엄청 늘어난 시기였는데 이들을 위한 정책이나 지원이 거의 없던 상황이라 이분들을 돕는 모임을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우리 사회 소외계층이라 할 수 있는 다문화가정, 한부모가정 자녀들이 적절한 지원을 받고 건전한 사회인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취지에 뜻을 같이한 분들이 모여 (사)아시아 희망나무를 설립하게 된 거죠.”

(사)아시아희망나무가 다문화가정과 지역사회 내 소외계층을 돕는 역할에 최선을 다하기를 바란다는 서정성 원장은 사람을 고치고, 마음을 고치며 우리 사회에 희망을 심는 의사로 살아가고 싶다는 소망을 전한다.

다양한 봉사활동, 현장에서 답을 찾다

봉사활동의 형태는 다양하니 현장에 가서 답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하는 서정성 원장은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곧 내가 있어야 할 자리인 만큼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이면 언제든지 달려 나갈 준비가 돼 있다. 이것이 서정성 원장 스타일의 봉사 방식이다.

2018년 인도네시아를 휩쓴 쓰나미로 희생자가 수십만 명이나 발생한 현장으로 달려간 서정성 원장은 너무 처참한 현실에 안타까워하며 도움이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 가야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서 원장이 해외 재난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해 구호 활동에 전력을 쏟는 이유기도 하다.

“자연재해가 닥치면 마을 전체가 다 죽어버리고 말아요. 희생자 수도 엄청나고 남아 있는 이들의 현실은 더 처참합니다. 이들을 돕기 위해 전 세계에서 달려와 구호 활동을 하는데 일본, 덴마크, 영국, 프랑스 등에 비해 우리나라는 아직 구호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더군요. 도움이 필요한 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에 최선을 다하자, 여기 오길 정말 잘했다는 마음이 굳어지니 해마다 재난 현장을 찾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이 삶을 살아가고 있으며,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소중하다. 이 귀한 존재들이 삶을 영위하면서 사랑받고 소외되지 않고 공정한 기회를 같이 누리는 삶이면 좋겠다는 서정성 원장은 자신 역시 시골에서 태어나 어렵게 공부해서 의사가 된 데는 다른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던 덕분이라고 말한다. 그러니 나누며 사는 것이 당연하며, 최대한 많은 사람이 서로 나누는 가운데 더 나은 세상이 되기를 소망한다.

“의사로 살면서 우리 구성원들이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잘 갖춰진 사회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대한의사협회 일원으로서 진정한 의미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할 수 있도록 저를 비롯해 우리 협회가 국민과 더 친해지고 가까워지는 날이 오기를 바라며 이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