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만남

아이들의 잃어버린 웃음을
되찾아주는 사람

연세대학교 치과대학병원 정영수 병원장

우리가 매일 밥을 먹고, 말을 하고, 웃는 일상이 누군가에게는 단 한 번만이라도 누리고 싶은 희망일 수 있다. 치과의사로서 소외된 이들에게 먼저 다가가 따뜻한 봉사의 손길을 건네는 이가 있다. 2004년부터 매년 진료봉사단을 꾸려 베트남, 몽골, 라오스 등 의료 낙후 지역에서 선천성 기형으로 고통받는 어린이들에게 새 삶을 선물하고 있는, 연세대학교 치과대학병원 정영수 병원장을 만났다.

편집실 사진 송인호

새 얼굴 찾아주기 20년, 꽃으로 보답받다

‘언청이’라 불렸던 구순구개열은 입술이나 입천장이 갈라지는 선천성 기형으로, 국내에서는 사례가 많이 줄고 있는 반면 베트남, 캄보디아 등 동남아 지역에서는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의료 취약계층 아이들은 생활고로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해 언어장애 등 합병증이 빈번한 상황이다.

구순구개열의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임신 당시 임부의 영양상태 부족이 원인 중 하나로 작용한다. 특히 베트남에서는 영양부족과 더불어 베트남전쟁 때 제초제로 사용되었던 고엽제로 인해 구순구개열 신생아 출산이 증가하면서, 국제사회에 도움을 요청한 바 있다.

“구순구개열은 입술이 갈라져 있어 발음이 새는 등 기능적인 부분과 함께 외관상의 문제도 크기 때문에 아이의 사회성 발달에 굉장히 큰 영향을 미칩니다. 따라서 1세 미만의 영아 때부터 1차 수술을 잘해야 하고, 이후 자라면서 생기는 변형으로 인해 얼굴이 틀어질 수 있으므로 2차 수술이 뒤따라야 합니다.”

정영수 병원장이 베트남으로 의료봉사를 가면 약 25명 정도를 수술하는데, 그중 10명이 1세 미만의 갓난아기들이다. 20년간 줄곧 봉사에 매진했으니, 당시 수술했던 아기가 건강하게 성장하여 2차 교정 수술 때 다시 만나게 되면 반갑고 대견한 마음이 든다고.

“2007년 하노이에서 수술했던 8살 남자아이가 기억에 남습니다. 아이의 기형이 눈 밑부터 양쪽으로 갈라져 있어 심한 편이었는데, 이런 경우에는 수술 한 번으로는 치료가 어려우므로 여러 교수진과 함께 3년에 걸쳐 수술을 해주었습니다. 그러다 2013년 의료봉사 10주년 행사 자리에서 이 아이를 다시 만났는데, 여자 친구가 생겼다며 환하게 웃는 얼굴을 보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의료봉사단을 찾아 오는 부모 중에는 어린 엄마가 많습니다. 아기를 낳았는데 얼굴에 기형이 있어 너무 놀라고 힘들었다는 하소연을 하곤 하지요. 그러다 교정 수술 후에 우리 아기 예쁘게 수술해주어서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선물로 꽃을 주고 가는 모습을 보면 뭉클한 기분이 듭니다.”

그때 받은 꽃이 그 어떤 선물보다 귀하고 값지다는 정영수 병원장. 학문적 관심으로 구강악안면외과를 전공했고 치과의사가 직업일 뿐인데, 다행히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어서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며 환하게 웃는다.

지속가능한 글로벌 사회공헌활동으로 확대

정영수 병원장은 학창 시절부터 봉사에 관심이 많아, RCY(Red Cross Youth, 청소년적십자)와 같은 봉사 동아리의 단원으로 활동했었다. 치과의사가 된 후, 초기 해외 의료봉사 당시에는 전액 사비를 들여 진행하다가, 2017년 한 스폰서사의 지원을 받게 되면서 더욱 탄력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베트남 다낭 협력병원에서 구순구개열 환자 진료와 수술 봉사를 실시하면서, 수술만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습니다. 환자 대부분이 어린아이들이어서 사후 관리가 중요하므로, 우리의 선진 의료기술을 전수해 현지에서 직접 치료할 수 있도록 도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현재 연세의료원은 매년 베트남 의사 2명을 초청해 치과대학병원은 물론 세브란스병원 산부인과, 소아과, 이비인후과, 마취과에서 연수를 실시하고 있다. 연수를 받고 귀국한 의사들이 베트남 현지병원에서 활약하며, 진료에 상당히 큰 성과를 나타내고 있다.

“2004년 처음 해외진료 나갔을 때 당시 리더가 저보다 20년 위의 선배님이셨습니다. 그 교수님에게 ‘왜 이런 데를 다니십니까?’ 여쭸더니, ‘글쎄, 그냥 아기들이 수술 받고 잘 웃고 이러면 그게 기분이 좋아서 오는 거지 뭐’라고 하시더군요. 또 우리가 현지에 와서 수술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지 의사들을 교육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하셨습니다. 저는 그 뜻을 지금껏 지켜오고 있고, 우리 후배들 가운데 누군가가 그다음을 이어나가겠죠. 꼭 그렇게 되어서 지속적인 사회공헌활동으로의 맥이 이어지길 기대합니다.”

‘The First, The Best’를 지향하는
치과대학병원장으로서의 사명

정영수 병원장의 진로가 처음부터 치과의사는 아니었다. 부산고등학교를 졸업할 당시 대학 입시에서 고배를 마셨던 정 병원장은, 의사보다는 비교적 편하지 않을까 싶어 치과대학을 선택했다가 그와 비슷한 고생을 하고 있다며 웃어 보인다. 시작이야 그러했지만, 치과의사로 30년을 보내며 매 순간이 보람이라니, 이만하면 천직을 잘 찾았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지난 50년간 우리 병원은 연간 내원 환자 수가 34만 명에 육박할 정도로 쉬지 않고 달려왔고, 또 앞으로도 끊임없이 발전해나가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병원장으로 부임하면서 ‘탁월함을 온 누리에(Excellence for All)’를 캐치프레이즈로 내걸었습니다. 어느 누구든지 탁월한 우리 병원의 치과 진료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을 담았습니다.”

연세대학교 치과대학병원은 2022년 ‘서울 권역 장애인 구강 진료센터’로 선정돼, 서울시의 지원을 받아 중증장애인이 효과적으로 치과 진료를 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가고 있다. 센터가 개소되면 전신마취 치과 진료의 대기 일수를 줄일 수 있고, 중증도에 따라 비급여 진료비를 10~15%까지 지원받을 수 있어 비용 부담도 덜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치과 진료에서 가장 소외되고 있는 장애인들에게 ‘불편 없이 치과 진료를 받을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주는 것, 정영수 병원장의 오랜 소망이기도 하다. 올해 대한치과병원협회 신임 회장으로 선출되면서 이른바 ‘일복’이 터진 정영수 병원장은, 임기 중에 이루고 싶은 두 가지 과제를 전했다.

“구강 노쇠는 방치하면 전신 건강 악화로 이어질 수 있는 심각한 질환인 만큼, 조기진단과 치료를 위한 급여화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또한 치과 진료에 대한 별도의 감염·예방관리료가 단계적 시범사업 등을 통해 신설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정영수 병원장은 8월 1일부로 연세대학교 치과대학 학장으로 보직이 변경됐다. 현재 후임인 안형준 병원장과 협력하여 연세대 치과대학병원의 건설적인 운영과 발전을 위해 계속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