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를 맞을 때 빛을 발하는 사람이 있다. 코로나19가 대구 전역을 휩쓸었을 때 대책위원장으로서 감염병 일선에서 최전방을 진두지휘하며 상황을 안정화하는 데 크게 기여한 사람. 그는 각종 피부질환으로 고통받는 장병들을 위해 의료적 개선책을 제시해 대한민국 군인의 사기를 진작했고, 의료 사각지대에 놓인 나라들을 찾아다니며 꾸준히 의료봉사 활동을 실천해왔다. 함께 사는 세상일수록 나눔의 힘이 절실히 필요하고, 그 길에 힘을 보탤 수 있는 ‘의사’여서 자부심을 느낀다는 민복기 올포스킨피부과의원 원장을 만났다.
글 편집실 사진 윤선우
우주를 가슴에 품고 선택한 의사의 길
민복기 원장의 프로필을 보니 A4 10장이 넘는다. 대구광역시의사회 회장, 대한의사협회 대선, 총선기획단장, 메디시티대구 의료관광산업위원장, 대한피부과의사회 법제위원장, 경북의대 100주년 홍보위원장, 대구광역시 감염안심존위원장, 코로나19 대책위원장, 대한피부과의사회 이사, 대한탈모치료학회 감사 등 빼곡하게 채워진 이력을 보면서 이처럼 적극적인 삶을 살게 된 연유가 궁금해졌다.
“거창한 포부나 뭔가 대가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어요. 어릴 때부터 함께해야 한다, 나누면서 살면 세상이 좀 더 좋아지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은 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평소 ‘go together’라는 말을 좋아하고 또 자주 하는 걸 보면 아무래도 자신은 혼자보다는 같이하는 일을 ‘벌리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 같다며 웃는다. 의대 시절에도 혼자 공부 잘하는 것보다는 동기와 함께 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노트 필기를 열심히 해서 같이 나눠 보곤 했더니 동기나 후배들이 잘 따랐고, 주변에 사람이 많으니 더 책임감 있게 잘해야겠다는 마음이 강해졌다.
“원래 꿈은 천체물리학자였어요.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읽고 우주를 동경하면서 서울대학교 물리학과에 가려고 했는데 커트라인이 아슬아슬해서, 아버지가 일단 경북대학교 의과대학에 입학하고 다시 공부해서 원하는 과를 가는 것이 어떻겠냐고 하셨죠. 일단 어디라도 적을 두는 것이 안전하겠다 싶어 의대에 가보니, 선배들을 따라다니다가 얼떨결에 동아리를 7개나 가입한 의대 새내기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때 선배들의 부름을 뿌리치고 천체물리학자가 되는 길을 선택했다면 어땠을까? 한 번쯤 생각해볼 수는 있지만, 의사로서의 역할이 더 가치 있다 느끼고 보람이 크기에 자신의 선택에 후회는 없다. 큰 우주를 가슴에 품고 의사로 살아가는 현재의 삶이 만족스럽고 또 감사하기 때문이다.
환자가 겪는 불편감을 통해
각성한 의사라는 자리
기초의학에 남다른 관심이 있었던 민복기 원장은 경북대학교 의대에 면역학교실이 신설되었을 때 학문적 호기심으로 면역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기초의학 연구자로서 집중하고자 했던 민 원장을 곁에서 지켜본 당시 학장은 우수한 재능을 진료 현장에 쏟는 것이 더 좋겠다는 조언을 했다. 환자를 직접 치료하는 것이 더 잘 맞는 옷이라는 학장의 권유를 받아들여 피부과를 선택한 민복기 원장.
피부과는 내과·외과적 요소를 다 갖추고 있어 연구논문도 많이 쓸 수 있고 수술도 할 수 있다는 환경이 ‘멀티태스킹’에 능한 그의 기질과 잘 맞아떨어져, 레지던트 신분으로 작성한 논문이 학회 최우수상을 수상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이후 전문의 자격증을 따고 초임 군의관으로 최전방에 발령받은 민복기 원장은, 예기치 않은 사고를 겪은 후에 본격적으로 의료봉사자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학교 다닐 때 축구동아리에서 주장을 맡아 많은 훈련을 했습니다. 사실 군대 축구장 시설이 얼마나 좋겠어요? 딱딱한 돌바닥 운동장에서 뛰다 보니 부상이 속출하는데, 그때 심한 백태클을 받고 고관절 인대가 크게 손상되는 사고를 당했어요. 목발 짚고 생활하는 일이 정말 힘들다는 걸 깨달으면서 그때 처음으로 환자의 불편감을 몸소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환자 입장이 되어 보니 비로소 의사의 역할이 제대로 보였다는 민복기 원장. 병사들이 고생하는 모습을 보면서 대학병원 의사의 ‘안온한 삶’에서 벗어나 조금 다른 생각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한다. 각성 이후 첫걸음이 피부질환으로 힘들어하는 장병들을 돌보는 일이었다.
“1990년대만 해도 피부질환은 야전에서 흔한 질환이었습니다. 수많은 장병이 염증으로 고생하는 걸 보고 원인을 살펴봤더니 보급된 속옷의 염료에 문제가 있었어요. 개선방안을 제시하려면 학문적 뒷받침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논문 작업에 착수했죠. 그리고 연구한 결과물을 가지고 의무사령관을 찾아가 염료를 국산으로 대체해줄 것을 요청했고, 오랜 설득 끝에 성과를 이룰 수 있었습니다.”
그때 작성한 민 원장의 논문은 지금까지도 ‘군대 바이블’로 불릴만큼 장병들의 필독서로 전해지고 있다. 이 밖에도 장병의 건강 유지와 군 전투력 손실 방지를 위한 논문들을 꾸준히 발표하면서 군진의학 학술대회에서 많은 상을 수상한 민복기 원장은, 그때 처음 자신이 피부과 전문의여서 다행스럽고 고마웠다고 한다. 39개월 군 복무 기간이 자신과 주변 사람들, 나아가 국가에 대한 생각을 재정비하는 기회가 되었기에 그 시절의 경험들이 그에게는 늘 애틋하고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다르게 생각하면 다르게 행동하게 된다
민복기 원장의 이름 뒤에는 ‘대구 방역의 주역’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2020년 코로나19가 대구 전역을 강타했을 때 대구시의사회 코로나19 대책위원장으로 감염병 최전방에 섰다. 국내외 언론의 집중조명을 받았던 그는 위태로운 상황에서 누군가 나서야 했고, 마침 의사인 자신에게 그 일이 주어져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사실 초기에는 ‘왜 오버하느냐’는 비난을 감수해야 했어요. 대구 지역에 감염병 환자가 발생했을 때도 다들 가벼운 감기 정도로만 여기고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거든요. 하지만 저는 코로나 이전에 메르스를 경험해서 감염병 대유행에 대한 심각성을 늘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면역학자로서 초기에 진압하지 않으면 걷잡을 수 없는 사태를 맞을 거라고 확신했기 때문에 의료진과 방역 대책을 세우면서 정부를 설득하고, 동산의료원의 병상 확보, 국군대구병원의 코로나19 거점 병원 전환, 군의관·간호장교·공중보건의 차출 요청 등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던 것 같습니다.”
이후에도 드라이브스루 선별 검사소를 설치하고, 가용 가능한 의료인력을 지원하며 생활치료센터 허가를 받아내는 등의 활동을 지속하며, 민복기 원장은 전방위적으로 체계적인 시스템을 구축할 것을 강조했다. 일차원적인 경로로는 순식간에 확산되는 감염병을 막아낼 수 없다는 사실을 군 복무 시절의 경험으로 몸소 체험한 덕분이었다.
자고로 부지런한 사람에게 일거리가 찾아드는 법. 국내에서 다양한 방식의 봉사활동을 전개해온 민복기 원장은, 2015년부터 중증 건선, 아토피피부염, 피부암, 탈모 등이 많은 러시아와 CIS 국가, 피부 습진이 주로 발생하는 베트남과 중국 등지의 의료 사각지대를 찾아다니며 의료봉사 활동을 펼쳐나갔다.
“환경이 정말 열악한 오지마을을 찾아다니는데, 갈 때마다 치료가 필요한 환자가 너무나 많다는 생각을 합니다. 피부암이 상당히 진행된 환자가 있었는데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꼭 수술을 받고 싶다고 해서 동료 의사들과 최대한 의료 환경을 만들어 무사히 수술을 끝낸 적도 있어요. 의료혜택이라는 것을 한 번도 받지 못한 주민들을 만날 때면 어떻게든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집니다.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서 모두가 부유하게 살 수는 없다 하더라도, 의료만큼은 평등하게 누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세상 모두가 서로 나누고 격려하는 가운데 아름다운 동행이 이루어지기를 소망한다는 민복기 원장.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행동한다는 자신의 신념을 실천으로 옮겨 병영 환경을 개선하고 감염병 확산을 막아냈듯이, 향후 또 다른 새로운 길을 만들어갈 그의 행보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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