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아이들은 디지털기기 앞에서 하루의 많은 시간을 보낸다. 아직 말을 배우기도 전인 아이가 스마트폰 화면을 넘기며 유튜브 영상을 고르고, 초등학생 아이가 쇼트폼 영상 속 댄스를 따라 하며 시간을 보내고, 청소년들은 밤늦게까지 소셜미디어 속 친구들과 메시지를 주고받는 모습을 보며 부모들은 종종 불안과 혼란을 느끼곤 한다. 우리 아이의 뇌, 어떻게 지켜야 할까?
글 김은주 연세의대 강남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2024년 ‘옥스퍼드 올해의 단어’에서 1위로 뽑힌 ‘뇌 썩음(brain rot)’-낮은 품질의 온라인 콘텐츠를 지나치게 많이 이용하면서 집중력을 비롯한 지적·정신적 능력이 떨어지는 현상-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공포심까지 들 지경이다. 과거 수백만 년 동안 인간의 뇌는 자연과 사람 사이의 상호작용 속에서 발달해왔다. 그러나 불과 몇십 년 사이에 등장한 디지털 미디어는 매우 짧은 시간에 아이들의 일상을 지배하게 됐고, 아직 완전히 발달하지 않은 뇌는 그 영향을 고스란히 받는다.
발달하는 뇌와 디지털 미디어 사용
유아와 아동기의 뇌는 자극에 민감하다. 뇌의 신경회로가 빠르게 만들어지는 이 시기에 어떤 경험을 하느냐가 아이들의 발달에 매우 중요한데, 반복적인 화면 자극과 소셜미디어의 짧은 콘텐츠에만 노출될 경우 주의집중과 공감, 언어, 기억에 관련된 영역의 발달이 지연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미디어 멀티태스킹으로 지나치게 많은 양의 정보를 동시에 접하다 보니 오히려 꼭 해야 할 일에 대한 집중력이 떨어지기도 한다. 또한 자료가 저장되어 있으니 기억할 필요가 없어져 기억력이 감소하기도 한다. 강한 시청각적 자극을 과도하게 빠른 속도로 받는 것에 익숙해져 일상적인 자극에는 쉽게 지루해하며 인지적 노력과 참을성이 요구되는 학습에는 흥미가 떨어질 수 있다. 한편, 스마트폰과 태블릿을 통한 ‘훑어 읽기’는 ‘깊이 읽기’를 방해한다. 스크롤과 팝업, 하이퍼링크, 메신저 알림 등 디지털 환경의 특성이 읽기 흐름을 끊고 깊이 있는 사고를 저해하기 때문이다. 또한 책에 비해 정보를 짧은 형태로 전달하므로 이에 익숙해져 긴 문맥을 읽고 의미를 파악하는 독해력과 사고능력이 감소되기도 한다. 지나친 영상기기 사용은 전두엽 등의 뇌기능을 떨어뜨린다는 보고도 있다.
영유아기: 디지털 미디어 대신 사람과 놀기
미국소아과학회(AAP)에서 발표한 디지털 미디어 사용 지침에 따르면, 18개월 미만의 아이는 화상통화를 제외하고 디지털 미디어를 사용하지 않도록 하고, 18개월부터 2세까지는 부모가 함께하는 교육용 콘텐츠만 제한적으로 허용한다. 2~5세는 하루 한 시간 이내의 질 높은 프로그램을 시청하되 반드시 부모가 함께 보고 내용을 설명해주는 것이 좋다. 이런 권고들은 양육자가 옆에서 상호작용할 때 디지털 미디어 시청이 언어 발달이나 사회성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줄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엄격한 스크린 사용 지침을 고수하는 이유는 2세 이전의 영유아 시기에 인지, 언어, 감각, 운동, 사회-정서적 능력의 발달적 성숙을 위해서는 자유로운 놀이와 신체 활동, 실제 체험을 통한 탐색과 양육자와의 애착을 증진하기 위한 직접적 상호작용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과거 연구에 따르면, 미디어 사용 시작 연령이 어릴수록, 누적 사용시간이 더 길수록, 콘텐츠의 질이 낮을수록 자기조절능력과 공감능력이 떨어진다는 보고가 있다. 유아기에 디지털기기에 노출되면 아동기에도 이 기기들을 계속 사용하려는 욕구가 커져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어 더욱더 주의를 요한다.
학령기와 청소년기: 균형 잡힌 24시간 설계하기
요즘 아이들은 부모님 세대와 달리 디지털기기 사용에 익숙하며 게임이나 SNS는 아이들의 중요한 취미 활동이자 또래와의 필수적인 소통 수단이다. 따라서 무조건 디지털기기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면 아이들의 반발을 사거나, 몰래 사용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초등학교 시기는 자율성과 감독의 균형을 통한 자기조절능력 향상이 주요 발달 과제이므로, 이 시기에는 미디어 사용을 조절하는 자제력을 키우기 위해 규칙을 지키는 훈련을 해야 한다.
초등학교 시기에는 디지털 미디어를 하루에 2시간 이상 사용하지 않도록 지도한다. 청소년기에는 더 어린 아이들에 비해서는 미디어의 악영향이 덜하다고 알려져 있기는 하지만, 아직은 전두엽 기능 발달이 미숙하여 미디어 과의존 위험이 증가되는 시기이므로 주의해야 한다. 스크린타임이 전혀 없거나 하루 6시간 이상 과도하게 사용하는 것은 발달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지만, 적당한 사용(1일 약 2~3시간)은 인지적·심리사회적 이점, 삶의 만족감 상승과 관련이 있다는 보고가 있다.
부모는 식사 시간과 가족 대화 시간만큼은 스마트폰이나 TV를 끄고, 학습 시간에는 SNS 알림을 꺼놓도록 지도해야 한다. 또한 취침 1시간 전에는 모든 스크린을 치우고 방 안에 기기를 두지 않으며, 가능한 한 침실 밖에서 기기를 충전하도록 한다. 이런 습관은 블루라이트가 수면 유도 호르몬 분비를 억제하는 것을 막아 숙면을 돕는다. 부모의 주의 깊은 관찰과 관심, 부모-자녀 간 긍정적 의사소통, 가족 간의 원만한 관계, 규칙에 대한 명확한 한계 설정 등을 통해 미디어 중독을 예방할 수 있다. 이 같은 통상적인 방법으로 집에서 열심히 지도해도 안 된다면, ADHD, 자폐스펙트럼장애, 난독증, 우울증, 강박증, 사회성 문제, 중독 성향 등 정신병리가 있을 때 자기 절제에 어려움을 겪으므로 전문가와 상담해야 한다.
또한 청소년기의 과도한 소셜미디어 사용은 학교나 온라인상에서의 따돌림, 지속적인 슬픔과 절망감, 자해행위, 신체 이미지에 대한 왜곡, FOMO(소외 불안), 수면 부족, 온라인 괴롭힘, sexting(성적 메시지 주고받기), 온라인 도박이나 음란물 노출 등 여러 문제를 유발할 수 있다. 따라서 부모와 교사는 청소년이 온라인에서 겪는 괴롭힘이나 위협을 숨기지 않도록 신뢰 관계를 형성하고, 심각한 우울이나 불안, 수면장애, 자해행위의 징후가 보이면 정신건강전문가와 함께 조기에 개입해야 한다. 또한 익명의 공간에서 상처를 주는 말을 하지 않도록 하고, 자신의 사진과 개인정보를 함부로 공유하지 않는 등 디지털 에티켓을 가르쳐야 한다. 소셜미디어가 초래하는 비교와 질투의 감정을 건강하게 다루는 법, 친구 관계에서 발생하는 갈등을 스크린 뒤로 숨지 말고 직접 해결하는 법을 익히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
김은주
세브란스병원에서 전공의 및 소아청소년 정신과 전임의 과정을 밟은 후 2014년부터 교수로 재직 중이다. 연구년에는 스탠퍼드대학병원, 네이버 헬스케어 연구소 및 카이스트 전산학부에서 아이들의 인지 및 정서에 도움을 주는 디지털 기반 프로그램 개발에 참여했다. 지금도 아이들의 마음을 건강하게 해줄 방법을 꾸준히 고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