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아이 건강

소아청소년 비만과
성조숙증의 상관관계

평소에 자주 쓰지만 의미가 애매한 말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잘 먹는다’이다. 아이를 건강하게 키우고 싶기에, 부모는 잘 먹이려고 한다. 더 맛있고, 좋은 음식을 먹으면 아이가 더 잘 클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이다. ‘잘 먹는 것’은 무엇일까? 소아청소년 비만을 진료하면서 보호자들에게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 ‘아이가 비만한 것은 잘못 먹은 결과’라고 말하는 것이다. 어떤 부분에서 잘못 먹었다는 것일까?

정인혁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첫 번째, 먹는 시간

비만한 아이들은 대부분 ‘공복’을 모른다. 비단 소아청소년뿐 아니라 비만한 성인들도 공복을 모른다. 편의점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다양한 기호식품은 간편하게 먹을 수 있고 아이들의 기호에 맞게 달거나 짠 맛을 극대화했기 때문에, 먹는 이의 만족감이 높고 공복감도 해소해준다. 이러한 식품들은 끼니와 상관없이 수시로 먹을 수 있으므로, 아이들의 식사량은 전반적으로 늘어나게 된다. 끼니와 끼니 사이의 공복은 소화기관이 쉬는 시간이며, 다음 식사가 온전히 소화될 수 있도록 준비하는 시간이다. 하지만 현대인의 식사, 혹은 현대인의 육아는 일정한 간격을 두고 식사하는 규칙적인 패턴을 잃어가고 있다. 식사에서 다소 벗어난 주제일 수 있지만,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할 것 중 하나인 절제, 즉 기다릴 줄 아는 마음을 식사와 연결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심지어 요즘 아이들에게 결핍을 가르쳐야 한다고도 말한다. 풍요롭게 먹는 것 혹은 배가 부를 때까지, 만족할 때까지 먹는 것이 ‘잘 먹는 것’이라는 생각을 바꾸는 것이 비만 치료의 시작이다.

두 번째, 먹는 종류

‘만 원을 가지고 편의점에 가서 정제 탄수화물(인공적으로 합성하거나 도정을 거친 곡류. 설탕, 흰 밀가루, 백미가 대표적)이 들어 있지 않은 음식을 산다면, 무엇을 살 수 있을까?’ 진료실에 비만 상담을 위해 오는 아이에게 자주 하는 질문이다. 한동안 편의점에서 식품의 영양정보를 열심히 들여다본 적이 있다. 탄수화물이나 당이 없는 식품을 찾기 위해서였는데, 결과는 예상대로 찾을 수 없었다. 채소, 물 등을 제외하면 탄수화물이 없는 식품은 없었던 것이다. 굳이 찾자면 삶은 달걀 종류, 닭가슴살 정도가 탄수화물이 적게 포함된 식품들인데, 아이들이 선호하는 식품은 단맛이 극대화되어 있는 정제 탄수화물이 풍부한 음식들이다. 아이들이 편의점을 자주 찾기 때문에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식품을 예로 들어 설명했지만, 집밥도 탄수화물 비중이 높다. 탄수화물이 나쁜 영양소로 오해받을 것 같아 첨언하자면, 탄수화물은 우리 몸에 반드시 필요한 3대 영양소 중 하나이다.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아이들이 섭취하는 영양의 비중이 탄수화물 쪽으로 너무 많이 치우쳐 있으며, 탄수화물 중에서도 정제 탄수화물(필자는 불량 탄수화물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에 과도하게 노출되어 있고, 비만한 아이들 대부분이 실제로 그렇다는 것이다. 정제 탄수화물은 통곡물로 섭취한 탄수화물보다 단순한 과정을 거쳐 몸에 저장되며, 매우 효율적으로 축적된다(모두 몸에 쌓인다). 심지어 경제적으로도 주변의 먹거리 중 가격 대비 가장 만족감이 높은 음식은 대부분 정제 탄수화물이다. 이렇게 보면 아이들이 정제 탄수화물을 먹는 것을 피하기 힘든 현실이지만, 그래도 하나씩 가르치고 기호식품 섭취를 줄일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더 나아가 영양 균형적인 건강한 밥상을 제공하는 것이 비만으로 힘들어하는 자녀들을 돕는 최선의 방법이다.

성조숙증으로 이어질 수 있는 비만

소아청소년기, 즉 성장기에 찾아온 비만은 여러 가지 질병의 원인이 되는데, 그중 하나는 최근 급증하고 있는 성조숙증이다. 만 8세 이전 여아, 만 9세 이전 남아의 성조숙증 관련 자료에 따르면, 비만한 아이들은 정상 체중인 아이들에 비해 약 2배 정도 성조숙증 발생 빈도가 높다(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 외국의 사례에서도 비만은 성조숙증을 일으키는 주요 원인 중 하나이며, 비만일수록 사춘기가 빨리 오는 현상이 나타난다. 최근 우리나라 데이터를 보면 지난 10년간 아이들의 성장이 빨라졌으나 최종 성인 신장은 큰 변화가 없는 것을 볼 때, 전반적으로 사춘기가 빨라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여자아이는 만 8세 이전에 가슴이 발달하기 시작할 때, 남자아이는 만 9세 이전에 고환이 커지기 시작할 때(고환이 2.5cm보다 길어질 때) 성조숙증을 의심할 수 있다. 혈액검사와 성장판 검사(뼈 나이 평가)를 시행해 성호르몬이 빨리 나오고 있는지, 성장판 폐쇄가 나이보다 빨리 진행되는지 확인하여 최종적으로 진단한다. 치료는 정기적 주사 치료로 이루어지는데, 4주, 12주, 24주 간격 주사 중 환자에게 적절한 방법을 선택해 진행하며 대부분 잘 치료된다. 다만 성조숙증 발견 시기가 너무 늦어지면 치료를 해도 효과를 보기 어렵기 때문에, 부모나 형제자매의 사춘기가 빨랐거나 아이가 비만한 경우 사춘기 증상이 빨리 나타나는지 주의 깊게 관찰하여 조기에 진단하는 것이 중요하다.

생활습관 교정이 치료의 지름길

소아청소년 내분비과 의사로서 성장기에 있는 소아·청소년을 진료하며 느끼는 점은, 아이들 질병의 원인은 하나가 아니며 다양하다는 것이다. 그중 가장 큰 원인을 꼽자면, 불규칙적인 생활습관이다. 부모는 비만한 아이에게 ‘덜 먹어라, 더 움직여라’라고 하지만, 아이가 더 먹고 덜 움직이는 이유는 생활습관 속에 있다. 비만을 해결하기 위해 음식에만 집중한다면 원인은 배제하고 현상만 치료되는 절반의 결과만 얻게 되며, 근본적인 원인인 생활습관·방식을 바꾸려 노력한다면 최선의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정인혁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로 재직하며 소아청소년 내분비질환을 주로 진료한다. 또 아이의 성장에 방해가 되는 요인을 들여다보고 바른 성장을 돕는 성장비만클리닉에서 아이들을 만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