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평원 이야기 + 소통 의료현장

알코올중독은 뇌에서 술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한 뇌 질환이다. 끊임없이 술에 대한 갈망감이 생겨나는 질병의 일종인 만큼 한번 중독되면 죽을 때까지 따라다니기에 ‘완치’보다는 ‘회복’을 위해 전문적인 치료가 병행되어야 한다. 특히 우리나라는 술에 관대한 문화를 가지고 있지만, 알코올중독에는 부정적인 인식이 많아 치료와 재활에 어려움을 겪는 것이 사실이다. 보건복지부가 지정한 전국 9개 알코올치료전문병원 중 하나인 다사랑병원은 알코올의존증과 관련된 다양한 교육과 활동 등 재활치료를 통해 환자의 회복을 돕고, 다시 건강한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편집실 / 사진 이덕환

전국 최초의 알코올치료전문병원

2001년 개원한 다사랑병원은 전국에서 처음으로 알코올중독만 전문으로 치료하는 병원으로 출발했다. 당시 전국 대부분의 정신병원에서 조현병과 같은 정신질환자와 치매환자, 알코올중독 환자를 한 병동에 함께 수용하는 상황이었고, 한 병동을 알코올중독환자 전용 병동으로 운영하는 병원은 전국 서너 군데에 불과했다.

다사랑 신재정 원장은 알코올중독 환자들에게 제대로 된 치료 환경과 프로그램을 적용하면 회복이 잘될 것이라는 확신으로 병원 전체를 알코올치료전문병원으로 개원하게 됐다. 당시로서는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모험적인 시도였다고 회상한다.

"알코올중독을 치료하는 의료진의 가장 큰 고충은 술을 끊겠다고 약속하고 나간 환자들이 재발해 병원으로 돌아오는 모습을 봐야 한다는 점일 겁니다. 현장에서 이런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정말 환자들에게는 알코올치료전문병원이 필요하겠다는 일종의 사명감 같은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술 중독 환자들 면면이 만만치가 않는데 그 많은 환자가 모이면 과연 병원이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겠느냐는 우려가 컸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환자들은 약한 사람들이었지 악한 자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주변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실행할 수 있었습니다."

병원 개원 당시만 해도 중독 환자의 회복과 관련해 전문서적이나 제대로 된 치료 가이드북이 없는 상황이어서 신재정 원장은 관련 외서를 직접 번역하고 공부하며 다사랑병원만의 자체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적용했다. 이 같은 노력을 기울인 결과 전국에서 많은 환자가 치료를 위해 다사랑병원을 찾아왔다.

지난 2005년, 보건복지부 지정 알코올질환분야 시범 전문병원을 거쳐 2010년 보건복지부 지정 알코올치료전문병원으로서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게 됐다. 이를 계기로 다른 지역에서도 알코올치료전문병원들이 생겨나 전국에서 9개 전문병원이 지정되게 하는 마중물 역할을 해냈다.

환자 특성을 고려한 맞춤형 치료 프로그램

보건복지부가 지정하는 알코올치료전문병원의 기준은 첫째, 환자의 구성비율과 그들에 대한 진료량으로, 적어도 66% 이상이 알코올중독 환자여야 한다. 둘째, 필수진료과목으로 정신건강의학과가 있어야 하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최소 4인 이상이어야 한다. 셋째, 80병상 이상이어야 한다. 넷째, 대학병원에 상응하는 의료 질과 서비스 수준이 제공되어야 한다. 현재 98% 이상의 알코올중독 환자를 관리하는 다사랑병원은 신재정 원장을 비롯한 의료진과 심리상담사 등 구성원 69명이 입원환자 180명의 치료와 재활을 돕고 있다.

이곳만의 차별화된 점은 기초병동, 심화병동, 노인여성병동에서 각각 특화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는 점이다. 기초병동에서는 성인 남성 환자를 대상으로 병식 개선을 위한 중독학, 자기분석 발표, 온전한 생활, 회복교실, 심리극, 긍정해석, 동기화 강화 프로그램 등을 실시하고, 심화병동에서는 그동안의 자신의 삶, 대인관계와 성격적인 부분을 살펴보는 심리도식(스키마), 12단계 교육과 집단, 재발방지, 치유명상, 인지행동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노인여성병동에서는 노인 환자들에게 맞는 정서치료와 즐거운 활동을 병행해 중독으로 인해 힘들어진 기억력과 감정을 개선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또 여성 환자들에게 특화된 심리극과 심리도식 시간, 여성 단계별 집단 등 남성과 다른 중독 특성과 감성, 성격적인 부분 등을 더욱 깊이 살펴보는 시간을 마련하고 있다. 

다사랑병원의 프로그램은 병식이 있는 집단과 병식이 없는 집단으로 나눠서 진행한다. 술을 끊을 생각이 전혀 없는 사람에게 단주하는 기술을 가르쳐주기보다는 다른 환자들이 단주를 하게 된 계기를 들려주는 경험담 발표가 더 유효할 수 있다. 초기 환자들에게는 병식을 키우는 프로그램을 적용한다.

단주를 결심한 환자들에게는 단주기술을 적용한다. 더 진도가 나간 환자들에게는 음주를 중단했을 때 이를 대체할 다른 건강한 생활방식을 모색하게 하고, 앞으로 평생 발전시켜나가야 할 내면의 힘을 키우는 데 주력한다.

"힘든 해독치료의 고비를 넘기고 나면 환자들은 퇴원하려고 하는데 사실 퇴원하면 또다시 술을 입에 댈 확률은 100%라고 할 수 있어요. 병원을 나서는 환자들이 단순히 술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술을 단 한 방울도 마시지 않고 살아갈 수 있어야 진정한 회복이라 말할 수 있어요.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약물치료와 병행해 현재 우리 병원이 진행하고 있는 것처럼 심리, 운동, 대체 활동 등 잘 고안된 효과적인 프로그램이 필수적이라 생각합니다."

이 밖에도 다사랑병원은 단주모임 참여의 중요성을 강조하는데 역점을 둔다. '혼자서는 결코 단주의 길을 걸을 수 없다'를 모토로, 서로 협력자이자 후원자가 되어주는 것이 알코올 중독 치료를 넘어 재발 위험에서 벗어나는 중요한 첫걸음임을 잘 아는 까닭이다.

‘정신질환자는 정신건강병원에서, 
중독환자는 중독치료전문 병원에서’

우리나라 국민의 25%가 알코올이나 도박 등 중독문제를 안고 있다. 하지만, 치료에 개방적인 미국에서조차 중독자의 1%만 치료에 임하고 있다고 하니 우리나라의 상황은 더 열악하다고 할 수 있을 터. 신재정 원장은 보건복지부에서 지정한 알코올치료전문병원이 아직 9개에 불과해 수많은 알코올의존자가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거나 일반 정신병원에서 겨우 해독치료만 받는 상황이 안타깝다고 말한다.

"알코올중독은 오랜 세월에 굳어지듯 회복 또한 오랜 세월을 거쳐야 이루어집니다. 중독환자는 중독환자만의 공간으로 모여야 하고, 그중에서도 알코올중독 환자끼리 그중에서도 노인끼리, 여성만으로, 또 회복 레벨이 비슷한 환자끼리 모여야 합니다. 아직도 많은 중독환자가 정신건강병원에서 알코올치료전문병원으로 이동하지 못하는 상황이라 아쉬움이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환자와 오랫동안 알고 지내다 보니 언젠가부터 ‘당신들과 우리는 친구가 된다’는 말을 하게 되었다는 신재정 원장은 실제로 환자와 의료진은 서로의 안부를 걱정하고 존경하는 친구 사이라며 웃어 보인다.

알코올중독은 환자 혼자의 힘으로 이겨낼 수 없는 병이고 또 환자 한 명으로 인해 온 가족이 고통받는 가족의 병이기에 환자와 가족이 적극적으로 치료에 임할 수 있도록 개입하는 치료진의 역할이 중요하다. 또 재발률이 높으므로 퇴원 후에도 환자에 대한 지속적인 관리가 이루어져야 한다. 알코올중독이 가져오는 사회적 손실이 나날이 커지는 상황인 만큼 전문적인 치료와 상담, 재활을 돕는 알코올치료전문병원에 관심을 가져야 할 때가 바로 지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