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5년 감염 위험을 무릅쓰고 헌신적으로 환자를 돌보며 감동을 안겨준 '메르스 전사' 김현아 간호사. 2년 뒤 간호사라는 직업을 내려놓고 작가의 길에 들어섰다. 간호사라는 직업을 제대로 알리고 싶어 책을 썼고, 그 책이 이제 드라마로 나올 준비를 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에 작은 힘이라도 보태고자 대구 동산병원에 다녀온 김현아 작가를 만났다.
글 편집실 / 사진 백기광
마흔두 번 방호복을 입고 벗다
1월 20일 중국에서 날아온 신종감염병 소식이 귓전을 맴돌았다. 드문드문 확진자 발생 소식이 들리긴 했지만 그렇게 잠잠해지나 싶었다. 2월 18일, 대구 신천지 신도 집단 감염 사태는 드라마 대본 집필에 전념하고 있던 김현아 작가의 마음을 헤집어 놓았다. 21년 간호사 생활을 접은 그였지만 연일 이어지는 감염병 소식은 그를 대구동산병원으로 향하게 만들었다.
"메르스 유행 때 죽을 뻔했으면 됐지, 또 죽으려고 가냐는 어머니 말씀을 뒤로하고 동산병원으로 향했습니다. 일손이 부족해 지쳐가는 의료진을 보니 도저히 마음이 불편해서 견딜 수 없었어요. 일손을 보태면 누군가가 잠시라도 쉴 수 있으니까요."
또다시 감염병을 물리치고 오겠다며 걱정하는 어머니를 안심시키고 중환자실 간호사로 돌아갔다. 첫날 교육을 받고 바로 중환자실에 투입됐다. 방호복을 두 시간 이상 입고 있을 수 없어서 두시간마다 3개 조가 번갈아 가며 근무했다. 중환자실 근무자는 일회용 모자를 사용해야 하는데 공급이 원활하지 않아 개인별 이름을 써두고 소독해서 사용하며 1~2주에 한 번 교체해주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수급 사정이 나아졌지만 처음에는 불안하기도 했다.
"방호복이 찢어져 중환자실에서 뛰쳐나간 적도 있었고 새벽 근무 중 전동호흡장치에 에러가 발생한 적도 있었습니다. 당황하니 방호복을 벗어야 하는데 어떻게 벗어야 하는지 생각이 안 나고 눈앞에 바이러스가 보이는 것 같기도 했어요."
퇴직을 앞둔 고참 간호사, 원소속 병원의 출근 통보를 뒤로하고 달려온 신규 간호사, 대구를 응원하는 메시지와 함께 광주의 어머니들이 보내준 주먹밥을 먹으며 위기에 힘을 모으는 대한민국 국민과 위험에 처한 사람들을 지나치지 못하는 간호사의 DNA…. 이 모든 상황이 김현아 작가에게 새로운 경험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마흔두 번 방호복을 입고 벗으며 동산병원에서의 사투는 끝이 났다.
간호사, 아름답고도 슬픈 직업
"저승사자 물고 늘어지겠습니다. 내 환자에게는 메르스 못 오게"
2015년 온 나라가 메르스 공포에 휩싸여 있을 때 김현아 작가는 '간호사의 편지'로 감동의 메시지를 전하며 유명해졌다. 그렇지만 그는 2017년 7월 그토록 사랑한 간호사라는 직업을 내려놓았다.
"변하지 않는 간호사에 대한 인식과 병원에서의 처우, 보호자에게 폭행당한 후배 간호사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었던 저는 2017년 7월 병원에 사직서를 냈습니다. 병원에 계속 있다가는 저도 무너질 것 같았고, 간호사들을 위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을것 같았어요."
그는 간호사만큼 세상에서 아름다운 직업은 없다고 말한다. 의사가 환자를 치료하는 직업이라면 간호사는 환자를 지켜주는 사람이다. 의사의 치료를 가장 잘 받을 수 있도록 환자를 케어하며 환자의 삶 속으로 들어가 진정한 돌봄을 실천하는 직업이다. 환자가 유명을 달리했을 때 예의를 갖춰 보내드리는 것도 간호사가 할 일이자 사명이다. 그래서 아름답고 슬픈 직업이다.
"어떤 상황에도 항상 친절해야 한다는 무언의 협박 같은 ‘백의의 천사’라는 수식어를 정말 싫어합니다. 천사는 사람이 아니죠. '백의의 천사'라는 타이틀로 희생과 봉사로 간호사를 묶어놓으면 현실을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간호사로 일하면서 틈틈이 배우고 시도한 글쓰기 연습을 통해 간호사로 산 20여 년의 세월을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나는 간호사 사람입니다』에서 간호사를 제대로 알리고 싶었다. 환자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 일하는 간호사의 사명감과 책임감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간호사가 하는 일을 가감없이 보여주고 알려야 더는 무시당하지 않을 것 같았다. 간호사를 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바꿔놓고 싶었다.
앞으로 뭘 할지 아직 모르겠다고 말한다. 『나는 간호사 사람입니다』를 기반으로 드라마 대본 집필에 여념이 없는 김현아 작가. 간호사에 대한 인식이 조금이라도 바뀔 수 있다면 이 일이야말로 자신이 갈 길이라고 생각한다. 혼자 이 과정을 겪어야 하는 것이 때론 힘들기도 하지만 간호사를 위해 간호사라는 직업을 내려놓던 그 순간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 간호사가 행복하게 간호에 전념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