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평원 이야기 + 마음 연구소

해가 갈수록 여름이 점점 더워지고 있다. 기상청은 올여름에는 폭염일수 20~25일, 열대야 일수 12~17일로, 지난해보다 더울 것이라고 예보했다. 더욱이 올해는 한 가지가 더 있으니 바로 마스크다. 실외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은 마스크 속으로 내뿜은 열기를 그대로 재호흡하게 되니, 산소 공급이 부족하고 심부 온도가 올라갈 위험이 있다. 저녁이 되면 확연히 더 피곤해질 수밖에 없다. 잠이라도 푹 자고 싶은데, 쉽지 않다. 불면증 이야기다.

하지현 건국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평소 잠을 잘 설치던 사람이라면 제대로 불면증에 빠지기 좋은 시기가 왔다. 눕기만 하면 바로 잠이 드는 운 좋은 사람들은 불면증의 고통을 이해하기 어렵다. 불면증은 잠드는 것이 어렵거나 잠은 들지만 깊이 못 자고 자주 깨는 경우, 이른 새벽에 깨서 그 후로는 잠을 자지 못하는 상태 등 세 가지 유형이 있다. 다음 날 생활이 힘들고, 피곤이 풀리지 않은 상태가 된다. 잠을 몇 시간 자는지, 절대적 수면시간은 개인차가 크다. 문제는 이 세 가지 유형 중 하나라도 해당되어 충분한 휴식을 취하지 못하고, 다음 날 생활이 점점 힘들어지는 악순환에 빠질 때 생긴다. ‘오늘 밤엔 잘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과 긴장이 온종일, 혹은 해가 지면 시작된다. 불면에 대한 두려움과 못 잘 것이라는 믿음이 불면증을 만성화한다. 특히 밤이 되면 분비되는 멜라토닌의 양이 확연히 줄어드는 65세 이상의 노년기에는 불면증은 흔하면서 고통스러운 문제다.

마치 커튼이 없는 방에서 불을 끄지 못한 채 자는 것 같은 상태가 되는 셈이다. 잠을 자는 동안 우리 몸은 휴식을 취하며 다음 날을 위해 에너지를 보충한다. 불필요한 노폐물이 제거되고, 전날 들어온 정보를 취합하고 정리해서 차곡차곡 분류한다. 눈과 귀로 정보가 들어오지 않는 상태가 되어야만 그 일을 할 수 있다. 그렇기에 다음날 활기찬 하루를 보내고, 밀고 들어오는 정보 중 옥석을 가려 정리한 다음,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고 판단하는 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양질의 잠이 중요하다. 이렇게 잠이 중요한데, 사람들은 불면에 시달리면서도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려 하지 않는다. 불면이 워낙 흔하다 보니, 불면에 대한 오해도 많은 덕분이다.  '술 한잔하면 된다', '수면제는 한 번 먹으면 중독되니 절대 시작 하면 안 된다' '나이가 들면 누구나 잠을 못 잔다' '누구나 불면증이 있으니 따로 치료받을 필요가 없다'고 하는데 모두 틀린 생각이다.

수면시간과 패턴은 모두 다르다

하나씩 오해를 풀어보자. 먼저 잠은 8시간을 자야 정량이라는 생각, 이것부터 오해다. 쾌속으로 충전되는 배터리가 있고, 오래 걸리는 배터리가 있듯이, 한 사람에게 필요한 수면시간은 4~10시간으로 매우 다양하다. 중요한 것은 다음 날 피로가 풀렸는지, 또 평소 자던 시간에 자서 기상하는 시간에 눈이 떠지는지 보는 것이다. 누구나 오랜 경험으로 자신에게 필요한 수면시간을 알고 있다. 필자의 경우 밤 11시경에 잠이 들어 다음 날 아침 6시 조금 넘은 시간에 눈을 뜨는 것이 가장 편안하다. 사람에 따라 필자와 같이 7시간을 잔다고 해도, 9시부터 4시까지가 편한 사람이 있고, 새벽 3시에 자서 10시까지 자는 리듬을 유지하는 사람이 있다. 모두 정상이다. 종달새형과 올빼미형의 수면각성 리듬을 갖는 사람은 자기에게 제일 잘 맞는 패턴에 따라 살아가고 있다. 문제는 내가 자야 할 시간에 제대로 못 잘 때 벌어진다.

바쁜 일이 있어서 7시간 정도 자던 사람이 4일간 4시간밖에 못잤다고 가정해보자. 많이 피곤할 것이다. 이때 ‘이번 주말에 몰아자서 피로를 완전히 풀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이때 자야 할 시간도 계산한다. 3시간씩 4일을 못 잤으니 주말 이틀간 12시간을 몰아서 자야 하니 하루에 6시간씩 더 자야 한다고. 이건 진짜 불면증의 악순환에 들어가는 첫걸음이다. 잠이 모자란 것을 수면 빚(sleep debt)이라고 한다. 12시간의 수면 빚이 생긴 것은 맞지만, 우리 뇌는 무척 관대하다. 뇌는 3~4시간 정도 살짝 더 자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휴식을 취한 것으로 알고 나머지 빚을 청산해준다. 열대야 때문에 잠을 자지 못하는 날이 지속되다가 비로소 잠을 잘 수 있는 주말에 몰아 자려고 할 때 수면 빚에 대한 계산은 이런 관대함에 맞춰 정산하면 된다.

불면으로 가는 습관을 멈춰라

잠이 안 올 때는 ‘양 백 마리를 세라’고 말하는 것도 오해다. 누워서 지루한 이미지를 그려보라는 것인데, 많은 불면증 환자가 꼼꼼한 성격들이다. 오십오, 오십육, 오십칠 이런 식으로 세다가 언뜻 놓치고 오십구로 넘어갔다고 치자. ‘그런가 보다’ 하고 육십으로 가지 못하고, 다시 하나, 둘부터 시작하기 일쑤다. 실수했다는 생각에 긴장돼서 겨우 오려던 잠은 저 멀리 사라져버리고 더 말똥말똥해질 뿐이다.

잠자리에 누워서 한 손은 가슴에, 다른 한 손은 배 위에 올려두고 천천히 복식호흡을 해보자. 배로 호흡하는 것에만 집중하다보면 잠이 안 올까 무서워 긴장했던 몸이 이완되며 잠들게 된다. 만일 실패한다면 잠자리에서 벗어나서 일어나기를 권한다. 10분 이상 잠이 오지 않는다면 아직 몸이 잠을 잘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신호다. 잠자리는 잠만 자는 공간으로 내 몸이 인식해야 한다. 오랜 시간 잠자리에 눕거나 앉아 있는 것은 되도록 삼가야 한다. 밖으로 나와서 TV나 라디오를 켜서 조금은 지루한 프로그램을 본다. 그러다 보면 살짝 다시 잠이 올 것이다.

덥다고 한밤에 찬물로 목욕하거나, 낮시간을 피해 밤에 피트니스센터나 운동장에서 격렬한 운동을 하는 것, 다이어트를 한다며 배가 무척 고픈 상태로 만들거나 야식을 잔뜩 먹는 것도 모두 잠을 자기에 좋지 않은 상태로 몸을 만드는 나쁜 습관이다. 불을 끈 채 누워서 핸드폰으로 동영상을 보거나 글을 읽는 것도 불면의 조짐이 있는 사람이라면 삼가야 할 일이다.

평소에는 별문제 없이 하던 일이라도 더운 여름에는 잠을 이루기 어려운 날이 많아지면서 불면이 시작되고, 어느새 불면에 대한 불안이 생겨 하나하나 더욱 잠을 이루기 어렵게 만드는 나쁜 습관으로 작용한다. 이런 습관들이 있다면 일단 멈추고, 잠자는 시간을 잘 관리한다면 불면의 악순환에 빠지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잠드는 게 너무 어렵다면? 그때는 단기간 수면제를 복용하는 것을 권한다. 의사의 진단과 관리하에 복용하는 수면제는 안전하고 매우 효과적인 도움을 준다. 잘 듣는 효과적인 약을 갖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안심이 되어 약을 먹지 않고도 쉽게 잠이 드는 환자도 많이 봤다. 웬만한 거리는 걸어 다니는 것이 좋지만, 짐도 많고 힘들 때는 비싸지만 택시를 불러 타듯이 확실한 효과가 있는 약은 힘들 때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