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로나 블루 이겨내고 건강사회로!
지난 1월 20일, 코로나19 첫 확진자가 나왔을 때만 해도 누가 이렇게까지 될 거라고 상상이라도 했겠는가. 그냥 쉽게 잡힐 작은 불길인 줄 알았는데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초대형 불길이 되어버렸다. 국경이 폐쇄되고, 학교가 문을 닫고, 여가 생활도 멈춰 섰다. 도시 전체가 거대한 격리시설로 바뀌었다. 다행히 큰 불길은 꺾였다. 그러나 사회적 거리두기가 이어지면서 불안을 넘어 멍하고 답답하고 우울하고 감정조절이 안 되는 등 여러 심리적 어려움이 커지고 있다. 코로나19 대신 코로나 블루라는 심리적 감염병이 번지고 있다.
글 문요한 정신과 의사 / 사진 백기광
코로나 블루란?
‘코로나19’의 ‘코로나’와 우울하다는 뜻을 지닌 ‘블루(blue)’의 합성어다. 즉, 코로나19 감염병으로 인해 나타나는 제반 심리적인 어려움을 말한다. 이는 크게 세 가지 원인요소가 있다.
첫째, 감염병에 대한 공포. 둘째, 경제적 어려움. 셋째, 사회적 격리다. 여기에 하나를 덧붙이자면 ‘불확실성’이다. 코로나19가 종식되어야 이 증후군도 끝이 날텐데 도대체 언제 끝날지, 또 다른 변이체가 등장할지, 백신이 개발될 수 있는지 등 도무지 앞으로의 상황을 짐작할 수가 없다. 이에 따라 나의 일자리는 안전할지, 경제는 언제나 정상화될지, 세상은 어떻게 달라질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이러한 불확실성이 심리적 스트레스를 크게 가중시키고 있다.
코로나 블루의 증상은?
코로나 블루는 꼭 우울이나 불안에 국한되지 않는다. 코로나 19가 장기화하면서 증상도 복잡하고 다양해지고 있다.
이를 크게 보면 네 가지 측면의 증상으로 나뉜다.
1) 심리 증상:
걱정, 불안, 권태, 분노, 무기력감 등 다양한 정서적 문제를 호소한다.
2) 신체 증상:
심리 증상과 함께 두통·소화불량·어지러움·두근거림·불면증 등이 동반된다.
3) 인지 증상:
기억력과 집중력이 감퇴하고 정신이 멍하고
혼란스럽다.
4) 관계 증상:
사람에 대한 경계심, 예민함, 공격성 등이 늘어난다.
심리 증상 중에서 놓치기 쉬운 것은 ‘권태’라는 감정이다. 권태는 피할 수 없는 따분하고 식상한 환경으로 인해 유발되는 갑갑하고 괴로운 감정을 말한다. 이 감정은 처음에는 사람을 기운 없게 만든다. 그러나 이러한 권태 감정이 해결되지 않고 장기화하면 분노 폭발로 이어지게 된다. 즉, 갈등과 다툼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사례를 통해 코로나 블루가 어떻게 나타나고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좋은지 살펴보자.
사례1
코로나19 이후로 회사를 그만두게 될까 봐 너무 걱정스럽습니다.
호준 씨는 공장자동화 설비업체에 다닌다. 3년 전 회사의 발전성을 보고 이 회사로 옮겼다. 그의 예상대로 회사는 승승장구 했다. 그러나 매출의 90% 이상을 수출에 의존하고 있던 회사는 코로나 사태로 큰 타격을 받았다. 부리나케 국내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지만 쉽지 않은 상황이다. 3월부터 직원들은 돌아가며 무급휴가에 들어갔다. 당장 생활비도 걱정이지만 조만간 회사의 구조조정이 뒤따를 것 같아 잠도 잘 오지 않았다. 술, 담배만 늘었다가 최근에는 주식에 빠졌다. 온종일 스마트폰에서 주식차트만 바라보고 있다.
과연 이 글로벌 팬데믹 상황에서 한 개인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살바토레 매디(Salvatore Maddi)라는 미국의 심리학자는 1970년대 중반부터 ‘벨’이라는 전화회사의 관리자들을 대상으로 심리 건강을 연구했다. 그런데 연구가 한창 진행되던 6년 차에 회사는 큰 위기를 맞았다. 이로 인해 혹독한 구조조정을 겪었다. 갑자기 직무가 바뀌거나, 아예 팀이 없어지거나, 회사의 프로토콜이 수시로 바뀌었다. 이로 인해 관리자 3분의 2는 심장병이 생기거나, 자살 또는 이혼하는 등 심각한 심신 건강의 문제가 나타났다. 그런데 그의 관심을 끈 사람들은 나머지 3분의 1이었다. 이들은 회사에 남아 있든 옮겼든 간에 여전히 활기차고 대인관계도 좋았다. 매디는 왜 그런 차이가 나타나는지 궁금했다. 연구 결과 스트레스에 대한 반응 면에서 큰 차이점이 드러났다. 건강 이상을 보인 3분의 2는 ‘3F’인 도망(Flight), 마비(Freeze), 싸움(Fight)의 반응을 보였다.
즉, 스트레스를 피하거나, 아무것도 안 하거나, 불만만 쏟아냈다. 그에 비해 건강한 3분의 1에서는 ‘3F’ 외에 ‘3C’라는 다른 반응을 관찰할 수 있었다. 그는 이를 전념(Commitment), 도전(Challenge), 통제(Control)라고 표현했다. 이들은 스트레스 상황에서도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를 유심히 살펴보고, 그에 따라 새로운 목표를 정해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에 에너지를 집중했다. 위기 앞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신을 바짝 차리는 것’이다. 호랑이한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 수 있다는 속담도 있지 않은가! 상황이 괴롭지만 이를 직시하고 의식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3C’의 비중을 늘려야 한다. 이를 위해 다음과 같은 질문이 도움이 된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지?’ ‘나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이지?’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지?’라고 반복적으로 묻고 대답하는 것이 좋다. 정신을 차리면 인간은 최악의 상황에서도 최상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사례2
온라인수업에 적응하기 어려워요. 집중이 잘 안 되고 부모님의 잔소리도 지겨워요.
현우는 고등학교 1학년이다. 온라인 개학을 했지만 계속 방학 같다. 며칠 잠깐 긴장했을 뿐 이내 무질서해졌다. 늦게 잠을 자다 보니 아침에 눈을 뜨기가 너무 힘들다. 아침마다 전쟁이다. 엄마가 겨우 깨워놓고 출근을 하지만 다시 자느라 출석을 못한 게 벌써 여러 번이다. 인터넷 수업은 왜 그렇게 재미가 없는지…. 출석이 잘 이루어지지 않자 엄마는 회사 일을 하다 말고 수시로 전화를 한다. 저녁이 되면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꾸중을 듣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본인도 잘하고 싶지만, 전혀 긴장이 안 되는데 어쩌란 말인가! 며칠 전 부모님과 크게 다투고 난 뒤로는 방문을 잠그고 지낸다.
코로나19로 인해 다들 고생이다. 부모도 고역이지만 학생들도 마찬가지다. 한창 친구들과 어울리고 활동해야 할 청소년들에게는 좁은 집 안에서 온종일 생활한다는 것 자체가 고역이다. 실제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가족끼리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지만 정작 오붓한 시간을 보내는 집은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가정불화가 심해지고 코로나 이혼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이다. 왜 그럴까? 인간은 위협을 느끼면 예민해지기 때문이다. 평소 같으면 그냥 넘어갈 일도 신경에 거슬리기 쉽다. 그리고 가까운 사람들에 대한 기대가 커진다. 즉, 상대가 나를 이해하고 내 말대로 따라주기를 바란다. 아이나 어른들이나 똑같다. 그러나 한쪽이라도 여유가 있을 때는 이게 가능하지만, 모두가 예민할 때는 그럴 수 없다.
결국 위기 앞에서 많은 가정은 무너지기 쉽다. 이 상황을 풀어가려면 모두가 힘들다는 것을 인정하고 각자 자신의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 부모님은 일단 아이가 왜 그렇게 잠만 자는지 혼낼 것이 아니라 자녀 입장에서 이 상황이 어떻게 느껴질지 이해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온라인수업을 함께 참관해보며 어떻게 진행되는지, 어떤 문제가 있는지, 왜 이렇게 재미없어하는지 등을 겪어봐야 한다. 현우 역시 자기 입장에서 벗어나 부모님이 예민해져 있음을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신뢰를 주어야 한다. 간섭이 싫다면 일단 아침에 일어나는 것부터 스스로 하는 것이 필요하다.
코로나 블루를 이겨내기 위해
마지막으로 코로나 블루를 이겨내기 위해서는 무엇을 하면 좋을지 생각해보자.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방역을 잘해서 코로나19를 하루빨리 종식시키고 이전의 생활을 되찾는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렇게 되기까지는 아직도 많은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그 날을 기다리며 각자 심리적 방역을 병행해나가자.
첫째, 서로 힘들다는 것을 인정하자. 지금은 경중을 따질 것도 없이 모두 힘들 때다. 그렇기에 평소보다 자기중심적이고 예민하게 반응하기 쉽다. 이를 먼저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나도 예민하고 상대도 예민하다고 생각하면 일방적으로 상대를 비난하지도 않을뿐더러 좀 더 언행을 조심할 수 있다.
둘째, 적극적으로 의미부여를 하자. 매우 답답한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중요하거나, 나에게 소중한 사람을 위해서라고 생각한다면 답답함과 우울함은 약해진다. 거리두기가 힘들지만 어쩔 수 없어서가 아니라 코로나19를 빨리 극복하는 데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는 의미부여가 되어 있다면 덜 힘들다.
셋째, 새로운 자극을 부여하자. 코로나 블루가 악화되는 이유는 사회적 격리 때문이다. 따라서 마음가짐만 강조할 것이 아니라 새로운 자극을 늘려나가야 한다. 새로운 요리, 가족끼리 책상 바꿔보기, 실내가구 재배치하기, 화분 키우기 등 지금껏 하지 않았던 실내 활동을 해보는 것이 좋다. 가족의 오락에 변화를 줄 필요도 있다. 처음 접하는 큐브, 퍼즐, 보드게임 등을 시작해보는 것도 좋다.
넷째, 의식적으로 몸을 움직이자. 우울하고 답답한 마음이 들 때는 마음을 환기해주어야 한다. 이를 위해 가장 좋은 것은 몸을 움직이는 것이다. 몸을 움직이면 감각과 운동에 관여하는 뇌가 활성화되어 생각과 감정이 진정된다. 단, 제대로 된 환기를 위해서는 습관적인 움직임이 아니라 ‘의식적 움직임’이 좋다. 몸의 감각을 느끼며 움직이는 것이다. 가장 좋은 것은 ‘걷기’다. 손으로 바람을 만지고, 주위의 풍광을 자세히 보고, 땅에 닿는 발바닥의 감각을 느끼며 감각적인 걷기를 하는 것이다. 이를 ‘오감 걷기’라고 한다.
다섯째, 코로나19 이후 변화에 대해 토론해보자. 코로나19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우리 사회에 많은 영향을 주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자신의 관심 분야에 어떤 영향을 주고, 세상이 어떻게 달라질지 가족이나 사람들과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눠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