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평원 이야기 + 마음 연구소

도망이 아닌 
도움을 주는 본능

하지현 건국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코로나19 사태가 몇 달째 이어지고 있다. 초기보다 안정됐지만 언제 다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아 조마조마하다. 꽤 높은 스트레스 상황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누군가는 바이러스를 피하기 위해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는 한편, 다른 누군가는 위험지역에 자발적으로 뛰어들어 봉사활동에 전념하기도 한다. 이처럼 스트레스에 대한 반응은 두 가지로 나타난다. 피하거나 맞서거나.

인류의 생존에 병균과 바이러스는 아주 오랫동안 가장 위험한 존재였다. 위험한 맹수는 근처에 나타나면 피하면 된다. 그렇지만 병균과 바이러스는 보이지 않으니 당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병의 원인이 박테리아이고 전염된다는 걸 알게 된 것은 채 150년이 되지 않았다.

잘 모르는 적은 피하는 것이 최선이다. 학습은 시도하고 성취하거나 실패를 반복하면서 일어난다. 하지만 생명이 달린 일은 그럴 여유가 없다. 한 번 다쳐보고 배우자고 하면 이미 늦는다. 이미 알고 있는 상태로 태어나는 게 더 유리하다.

보이지 않는 병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냥 반응한다. 이유를 알 수 없고 배운 적도 없다. 상한 음식의 쉰맛, 역한 냄새에는 몸이 바로 반응한다. 울렁거리고 구토 반응이 온다. 몸에 들어가 퍼지기 전에 빨리 뱉어내도록 세팅해놓은 것이다. 안전을 위해 상한 음식을 빨리 알아차리는 것은 민감할수록 좋다. 이런 반응이 발전한 것이 혐오다. 위험해 보이면 피하고 거리를 두고 본다. 눈에 안 좋아 보이면 울렁거리는 반응이 먼저 온다. 혐오라는 뜻의 영단어 ‘disgust’에 위장이 좋지 않다는 뜻이 들어 있는 것도 이런 유래 덕분이다. 보이지 않는 위험한 대상은 일단 피하고 보는 것이 최선의 생존전략이었다.

스트레스, 싸울 것인가? 피할 것인가?

'맞서 싸울 것이냐 피할 것이냐' 선택하는 것은 스트레스에 대한 고전적 대처 방식이다. 흔히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네"라는 말을 한다. 화가 나서 싸워야 할 상황이 되었다는 뜻으로 쓴다.

그렇다. 스트레스를 인지하면 우리 몸에서는 아드레날린이 분비된다. 심박수가 올라가고, 근육이 긴장하고, 호흡이 가빠지며, 몸의 반응성이 매우 좋아진다. 평화로울 때보다 훨씬 강력한 전사로 바뀌는 것이다. 인간을 넘어 동물 전체의 기본적 스트레스 대처 방식이었다. 강아지가 더 큰 개가 다가오면 털이 확 솟구친 채 이빨을 드러내고 크게 짖는 것도 모두 같은 메커니즘이다.

코로나19가 한국을 덮쳤다. 보이지 않는 적과 싸우기 위해 아드레날린을 분비하지만 그 대상이 보이지 않는다. 이 고전적 방식의 장점은 신속하게 반응할 수 있다는 것이고, 단점은 오래 지속하기 어려운 응급 대응 방식이라는 것이다. 이 상태를 오래 유지하면 지치고 소진되어버린다. 보이지 않는 적과 오랫동안 지구전을 펼쳐야 한다. 스트레스는 지속되고 몸은 지쳐가고 있다. 뭔가 다른 방법은 없을까? 당연히 있다. 우리는 그 방법을 잘 작동하고 있다. 코로나19가 대구·경북지역에 퍼지면서 사회 전체의 스트레스는 최고조였다. 그 지역을 넘어 전국으로 퍼지는 것은 시간문제 같았다. 하루에 신규 확진자가 수백 명 나오고, 모든 물자와 인력은 모자랐다. 속출하는 환자를 받아줄 병실이 모자라고, 의심되는 환자를 평가하고 검사할 인력과 물자가 부족했다. 미증유의 사태로 의료 시스템 붕괴는 곧 다가올 재앙으로 보였다. 이때 특이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전국에서 의사, 간호사 등 의료 인력이 자원해서 대구·경북지역으로 달려간 것이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존재가 어느 정도 위험하고, 감염력이 얼마나 강한지 잘 알려지지 않았음에도 사람들은 위기에 처한 사람을 돕기 위해, 시스템 붕괴를 막기 위해 조건 없이 달려갔다.

위에서 설명한 스트레스의 대처 방식으로는 설명이 안 된다. 바이러스가 퍼지면 일단 거리두기를 해야 한다. 몸이 먼저 혐오 반응을 한다. 위험한 곳에 갔다고 느껴지면 숨쉬기가 어렵고 속이 울렁거리고 토할 것 같은 느낌이 먼저 온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멀리하지 않고 바로 그 지역으로 달려갔다. 그렇다면 의료인과 자원 봉사자들은 위험을 피하려는 본능을 거스를 정도로 의지력이 강한 사람들일까? 우리나라에 숨은 슈퍼히어로가 이렇게 많았을까? 아니다. 이것 또한 인간의 스트레스 반응 중 하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스트레스와 관련된 행위라는 것을 몰랐을 뿐이다.

돌봄행동 부추기는 옥시토신

스트레스라는 개념이 알려진 것은 채 백 년이 되지 않았고, 지금까지는 ‘싸울 것이냐 피할 것이냐’를 중심으로 연구가 이루어졌다. 그런데 약 30년 전부터 새로운 스트레스 반응이 알려졌는데 주인공은 ‘옥시토신’이었다. 원래 옥시토신은 출산 후에 급격히 증가해 자궁을 수축하는 역할을 하는 호르몬이다. 그러니 출산을 전후한 시기가 아니면 분비가 안 되는 줄로 알았고, 남성들에게는 전혀 필요하지 않은 호르몬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스트레스 상황에 옥시토신 분비가 증가하는 것이 관찰되었고 결과는 친사회적 행동이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새끼를 낳은 동물을 관찰해보면 가장 중요한 행동은 어미의 돌봄행동이다. 옥시토신은 돌봄행동을 하도록 부추긴다. 그것이 발전되어 옥시토신이 분비되면 상대에게 다가가고, 돌봐주고 싶고, 접촉하고 싶은 욕구가 증가하는 것이다. 스트레스에 대한 반응은 두 가지 축이 있다. 맞서 싸우기 위해 각을 세우거나 일단 도망가서 안전거리를 확보하려는 쪽이 있는 반면, 고통을 줄이고, 다른 사람과 친화력을 높여 연대를 하도록 부추기고, 마음의 안정을 찾도록 돕는 쪽도 있는 것이다. 게다가 옥시토신은 스트레스로 인한 뇌의 자동적 공포 반응을 무디어지게 한다. 그 결과 더욱 용감해지기도 한다. 새끼를 보호하기 위해 무모할 만큼 매섭게 방어하는 어미 동물의 용감함에는 옥시토신의 기능도 한몫한 것이다.

대구·경북지역으로 달려간 의료진과 자원봉사자들의 이타적 행위는 스트레스에 대한 인간의 특별한 반응의 한 측면으로 설명할 수 있다. 사회적 위기가 닥쳤을 때 역사적으로도 이런 대응을 잘해냈고, 파편적 개인으로 생존하려는 이기적 행위를 하기보다, 공동체 모두가 함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인 것이다. 과거 경험에서 이런 방식이 가능하다는 신뢰가 있었기에 옥시토신이란 스트레스 호르몬이 분비되었을 때 별다른 망설임 없이 이타적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었다.

한 연구에 따르면 사별이나 경제적 붕괴와 같은 스트레스가 생기면 사망 위험률이 30% 증가한다고 한다. 이때 타인과 좋은 관계를 맺는 데 시간을 보낸 사람들은 위험률이 높아지지 않았고 스트레스에 대해 옥시토신적 대처를 잘한 사람은 위기에도 잘 버티고 회복도 빨랐다.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응하기 위해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는 중이다. 이것이 고통스럽게 느껴지는 이유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모이고 싶고, 서로 접촉을 하면서 안정을 되찾으라고 옥시토신이 작용하는 면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머지않아 코로나 상황이 잘 마무리되기를 희망한다. 이 시기가 지나고 우리의 마음에 남기를 바라는 게 있다. 스트레스에 대처하는 방식은 맞서 싸우는 것만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스트레스가 증가하는 상황에 주변 사람을 돕고, 배려하고, 공감하는 연민의 마음이 생기는 것은 타인뿐 아니라 나 자신에게도 도움이 되는 스트레스 대처 방식이다. 결과적으로는 우리 모두의 건강과 생존에 긍정적 역할을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옥시토신은 힘이 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