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9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며 한국 영화의 역사를 새로 쓴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한국을 넘어 아카데미 시상식의 새 역사를 썼다. 지난 2월 10일(한국시간) 개최된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기생충>은 6개 부문 후보에 올라 감독상, 작품상, 각본상, 국제장편영화상을 수상해 4관왕에 올랐다. 공생이 어려워진 각박한 시대를 살아가는 상반된 모습의 두 가족을 통해 현실을 냉철하고 위트 있게 꼬집었다는 평을 받으며 평단과 대중을 모두 사로잡은 <기생충>. 흥미진진하고 예상할 수 없는 이야기 전개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질환이 있다.
글 편집실 / 감수 정유석 단국대학교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글로벌 IT기업 CEO 박 사장(이선균)의 딸 다혜는 과외 교사인 기우(최우식)에게 가사도우미이자 집사인 문광(이정은)에게 심한 복숭아 알레르기가 있어 “우리 집에서는 복숭아를 먹을 수 없다”고 말한다. 이 이야기를 들은 기우는 박 사장 아들의 미술 과외 교사인 여동생 기정(박소담)과 공모해 문광을 쫓아낼 음모를 꾸민다. 남매가 복숭아 표면 솜털을 긁어 몰래 문광에게 뿌리자 금세 콧물과 기침이 시작될 만큼 복숭아 솜털에 민감하게 반응한 문광은 호흡기 알레르기 발작을 일으키게 된다. 운전기사로 박사장 집을 자유롭게 드나들던 기택(송강호)까지 합세해 핫소스를 묻힌 티슈를 각혈 흔적으로 둔갑시키며 안주인 연교(조여정)로 하여금 결핵으로 오인하게 만들어 내쫓는 데 성공하게 된다. 음식물 알레르기는 음식물 과민 반응(food hypersensitivity)이라고도 부르며 음식물 때문에 생기는 면역학적 반응을 뜻한다. 우리 몸에 해가 되지 않는 물질을 병원체로 착각하고 면역 시스템이 공격해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모든 음식은 알레르기를 일으킬 수 있는 단백질을 포함하고 있다. 음식 알레르기 중 약 90%는 달걀, 우유, 밀, 콩, 견과류, 어패류에 의해 나타나지만, 그 외 다양한 음식물 및 첨가물이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킨다. 또 음식물 알레르기 가족력이 있거나 다른 알레르기와 천식이 있는 경우, 소화기관이 미성숙한 유아나 신생아의 경우 음식물 알레르기의 위험성이 커진다. 일반적으로 달걀, 우유 등 유제품에 의한 음식물 알레르기는 성인이 되면서 없어지는 경우가 많지만, 갑각류•견과류 알레르기는 성인에게도 자주 나타나는 편이라 주의가 필요하다.
음식물 알레르기 반응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며 여러 가지 종류의 과민반응이 복합적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알레르기 반응이 있는 음식물을 섭취했을 경우, 음식물이 제일 먼저 접촉하는 입술과 구강 점막에 증상이 가장 먼저 발생한다. 입술과 입 주변이 붓기도 하고 오심, 구토, 설사 등의 증상을 띤다. 피부에 두드러기가 나타나기도 하고 콧물, 재채기 등 비염 증상과 기침, 호흡 곤란 등 기관지 천식 증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 아나필락시스 쇼크를 동반하는 중증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킬 수도 있어, 알레르겐, 특이 IgE 항체에 의한 제1형 과민반응이 특히 중요하다.
증상이 심하면 항히스타민제나 스테로이드를 이용해 치료하기도 하지만, 음식 알레르기에 있어 최선의 치료이자 예방법은 알레르기 반응을 유발하는 음식을 피하는 것이다. 섭취는 물론, 접촉도 조심해야 한다. 심한 사람은 몸에 닿기만 해도 알레르기 반응이 일어난다. 단 가장 중요한 것은 원인 음식물이 밝혀져야 한다는 것이다. 원인이 되는 음식물은 대부분 경험을 통해 알게 되지만, 더 정확하게 확인하려면 병원에서 혈액 혹은 피부 첩포검사등을 해야 한다. 원인 음식물을 정확히 확인하지 않은 상태에서 막연히 육류나 해물을 피하는 식으로 접근해서는 증상의 호전을 기대하기보다는 영양 공급의 불균형으로 이어질 수 있다.
회피요법에서 어려운 점은 음식물 속에 숨어 있는 성분을 완전히 피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우유, 달걀과 같이 여러 음식물에 첨가하여 사용하는 음식물은 철저하게 회피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 아울러 교차 항원성도 회피요법의 효과를 떨어뜨리는 요인이다. 원인 음식물을 회피하더라도, 다른 음식물에 포함된 교차 항원에 의해서 음식물 알레르기 증상이 발생할 수 있다. 복숭아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은 장미과 과일인 사과, 자두, 체리, 배 등을 주의해야 한다. 평소 응급 상황에 대비해 비상약을 항상 휴대하고, 심한 알레르기 반응이 나타나면 즉시 병원을 찾아 치료를 받아야 한다.
음식물 알레르기는 자연적으로 사라지는 경우가 있으므로 3~6개월 간격으로 다시 검사하여 반응을 확인한다. 알레르기가 없어졌다면 해당 음식물을 다시 섭취할 수 있다. 그러나 아나필락시스와 같이 증상이 심한 음식물 알레르기에서는 원인 음식물 섭취를 자제하는 것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