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든 일에서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 건강관리에서도 마찬가지다. 무슨 병에 걸리지 않았는지 지나치게 걱정하는 것을 건강염려증이라고 한다. 건강염려증은 정신과 치료가 필요한 질병으로 분류되며 상당수 사람이 이 질병을 앓고 있다.
글 하지현 건국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A씨는 40대 중반의 회사원이다. 성실한 성격에 책임감이 강하고 꼼꼼하게 일을 하는 타입이다. 쉬는 날에는 규칙적으로 운동하며 체중 관리도 하는 바람직한 라이프스타일을 갖고 있다. 그런데 6개월 전 70대 중반의 아버지가 급성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 아버지도 건강하신 편이었는데 갑작스레 돌아가셔서 A씨뿐 아니라 온 가족이 큰 충격을 받았다. 황망히 상을 치르고 슬픈 마음을 추스르며 일상을 이어가는데 이상하게 그때부터 자신의 심장박동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심장질환이 있는 것이 아닌지 걱정되기 시작한 A씨는 황급히 동네 병원에서 심전도검사를 했으나 이상은 없었다. 그래도 안심이 되지 않아 이번에는 대학병원 심혈관내과에서 필요한 모든 검사를 했다. 검사 후 다음 진료를 기다리는 일주일 동안 A씨는 피가 마르는 듯한 불안을 경험했다. 자신도 아버지처럼 심장질환으로 죽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 찬 것이다. 중학생 아들의 방문을 열어보며 ‘저 아이가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는 살아 있을 수 있을까’ 하는 엉뚱한 걱정을 한 적도 있다. 다행히 모든 검사에서 정상이라는 결과를 들었다. 그날 하루는 안심됐지만, 다음 날 급히 거래처에 가면서 지하철 계단을 뛰다시피 오르고 난 다음부터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버렸다. 온종일 심장질환의 가능성에 대해서 고민하고, 인터넷 검색을 하며 놓친 병이 없는지 알아보았다. 지난번 검사 외에 새로운 검사가 있나 찾아보는 일을 계속했다. 당연히 업무에 집중하지 못했고, 입맛도 떨어지고 밤에 잠을 깊이 못 자는 날이 계속됐다. 심장이 빠르게 뛸까 봐 절대 뛰지 않고, 하던 운동도 그만뒀다. 무리하지 않으려고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상사에게 이야기했다가 만류하는 일까지 있었다. 보다 못한 가족들의 권유로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아오게 됐다.
생각보다 높은 비율의 건강염려증
A씨는 건강염려증(hypochondriasis)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최근에는 진단명이 질병 불안장애로 바뀌었다. 코로나바이러스라는 보이지 않는 위협이 일상이 된 시기에 병에 대한 걱정은 흔한 일이 됐다. 어딜 가든 마스크를 쓰고, 손을 잘 씻고,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는 것처럼 어떤 병이건 미리 적당히 걱정하는 것은 예방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이다. 이런 걱정과 불안이 있기에 우리는 안전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 다만 모든 것이 다 그렇듯 걱정도 지나치면 안 된다.
건강염려증은 자신에게 심각한 질병이 생기고 있거나 생길지도 모른다는 불안으로 집착하는 상태다. 실제 몸에 증상이 있는 경우도 있지만, A씨처럼 증상 자체는 가벼운 편이고 주로 병이 걸렸을 것이라는 생각에 몰두하다 믿음 수준까지 깊어져 자세한 설명이나 검사 결과로는 설득이 되지 않는다. 반복적으로 병원을 찾아가고, 웬만한 의사들보다 특정 질환에 대한 지식과 정보가 많다. TV나 뉴스에서 보고 들은 건강정보에 해박하고, 의학 논문을 정리해서 가져오기도 한다. 문제는 인터넷 검색으로 흔치 않은 최악의 결과만 찾아서 그게 실재하는 위험이라고 믿게 된다는 것이다. 한 가지 병에 대한 불안만 있는 경우도 있지만, 만성화되면 일정 기간 불안이 잠잠해졌다가 다른 병에 대한 걱정으로 옮겨가는 일도 흔하다. 이런 걱정이 필요한 진료와 검사를 받고 병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한 후 사라지면 정상이다. 그러나 6개월 이상 불필요하고 과도한 검사와 진료를 받고, 병에 대한 걱정으로 일상생활이 엉망이 되어버린다면 그때는 건강염려증으로 진단하고 내과가 아니라 정신건강의학과 진료 대상이 된다. 몸에 큰 이상이 생겼을 것이라는 두려움 자체가 정신질환의 하나가 되어버린 것이다.
역학연구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평생 유병률은 0.7%로 아주 많지는 않다. 그러나 한 가지 신체 질환을 가진 사람은 다른 병에 걸렸을 위험에 대해서도 민감하기 쉽다. 이들을 대상으로 하면 4~6%까지도 추산할 수 있고 60대 이상에서 상대적으로 많을 것으로 추정한다. 적지 않은 사람이 어느 수준 이상의 건강염려증을 갖고 있음을 짐작하게 하는 수치다.
심리적 요인이 원인
건강염려증의 원인은 다양하지만 아프다는 것, 환자가 된다는 것의 심리적 의미가 큰 사람에게 생긴다고 본다. 환자가 되면 많은 사회적 책임, 감당하기 힘든 문제들로부터 일단은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릴 때 만성질환이 있었거나 크게 다쳤거나 아팠던 적이 있는 사람의 경우 성인기에 어떤 일이 생기면 잊혔던 건강염려증이 불현듯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A씨와 같이 가족 중에 병이 생기거나, 큰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나타나는 경우가 흔하다.
혹은 살면서 큰 실패를 경험하거나, 누군가와 헤어지거나 거절을 당한 다음에 생기는 분노가 병에 대한 걱정으로 전환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사례도 관찰된다. 뭔가 자신이 큰 잘못을 저질렀다고 여기는 무의식적 죄책감이 생겼을 때 그 반응으로 병에 걸려야 마땅하다고 여기는 심리 기제가 작동하기도 한다.
이렇게 다양한 심리적 요인이 건강 염려 증상에 집착하게 만들기 때문에 딱 한 가지 원인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건강염려증이 심해지면 진짜 병이 있는데 못 찾았다고 생각하고 새로운 검사를 한다. 하지만 검사를 반복하기보다는 여러 심리적 요인이 비합리적이고 설득하기 어려운 병에 대한 과도한 걱정을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대부분의 환자는 실제 병이 있는데 못 찾았을 뿐이라고 여긴다. 일상의 책임을 회피한 채 온통 병에 대한 걱정에 몰두하고 있을뿐이기에 이를 정신적 문제라고 받아들이지 않아 치료를 거부한다. 그러므로 일단 병의 가능성을 인정하되, 이로 인한 스트레스가 극심하니 함께 정신건강의학과적 치료를 하자고 제안하는 것이 치료의 문턱을 넘게 하는 데 효과적이다. 한 번은 검사를 해보는 것이 확인하는 데 도움은 되나, 환자가 원할 때마다 검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음성이 나온 것을 확인하면 불안이 줄어드는 효과가 있으나, 언제나 최악의 상황을 걱정하는 것이 특징이기에 검사 후 무서워서 병원에 가는 것을 거절하는 환자도 있기 때문이다. 건강염려증은 몸에서 느끼는 가벼운 증상이 빨리 없어지고, 불안과 불면 같은 심리적 불편감이 빨리 좋아지는 경우 조기에 증상이 사라지기도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1/3은 호전과 악화를 반복하는 만성 경과를 반복한다. 일반적으로 사회경제적 수준이 높고, 초기 치료에 반응이 있는 경우, 우울함이나 불안 증상이 동반된 경우, 다른 신체 질환이 없는 건강한 몸 상태일 때 예후가 좋다고 알려져 있다.
적극적인 치료가 필요한 건강염려증
건강염려증의 악순환에 빠지면 헤어나기 어렵기에 이 문제가 의심되면 조기에 심리적 요인이 개입되었을 가능성을 살펴본다.
신체 질환이 있을 것이라는 심증이 진짜 병이 있을 가능성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닐 수 있음을 인식하도록 돕는 것이 중요하다.
뚜렷한 불면이나 우울 증상이 있을 때는 단기간 정신과적 약물요법이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제한적인 수준에 그칠 뿐이고 약물치료 효과는 뚜렷하지 않다. 무엇보다 한 명의 주치의와 신뢰 관계를 맺고 주기적으로 방문해서 상담하면서 신체 증상이나 병에 대한 두려움이 심리적 스트레스나 마음속 불안 때문이라는 인과관계를 깨달아야 비로소 건강염려증에서 벗어날 수 있다.
우리가 평소 건강관리를 하는 것은 병을 예방하고, 조기에 발견해서 더 큰 병으로 진행하기 전에 빨리 치료하기 위해서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란 말이 괜한 말이 아니라는 것을 건강염려증 환자들을 만날 때마다 혼잣말로 되새기게 된다. 인터넷의 발달로 건강 관련 정보가 넘쳐난다. TV를 켜면 오전에는 건강이나 병에 대한 정보 프로그램이 채널마다 나오고 홈쇼핑에서는 보험상품이나 몸에 좋은 음식을 판다. 온종일 보다 보면 나도 모르게 무슨 병이 하나 없으면 도리어 이상한 사람일 것 같은 착각이 생길 것이다. 이때 건강염려증이 생길 위험이 올라간다. 내가 혹시 무슨 병에 걸린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생긴다면 한 번쯤 진료나 검사를 받아보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그렇지만 음성 판정을 받은 후에도 그 걱정과 의심이 사라지지 않아서 어느새 일상생활이 제한되기 시작하고, 종일 정보를 찾아 헤매고, 주변에 유명한 병원을 찾아 전화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면? 그때는 멈춰야 한다고 판단해야 한다. 바로 여기서 한 발 더 내딛으면 건강염려증의 악순환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병에 대한 걱정도 심하면 그 자체로 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