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0년, 대구 지역은 그 어느 곳, 그 어떤 순간보다 힘들고 어려운 시간을 견뎌야만 했다. 지난 2월 18일 대구에서 코로나19 첫 확진자가 나오고 같은 달 21일 감염병 전담병원으로 지정된 이래 166일 만인 지난 8월 4일 코로나19 감염병 전담병원에서 해제된 계명대학교 대구동산병원. 전쟁터를 방불케 할 만큼 의료진과 방역당국이 긴밀하게 움직이는 가운데 코로나19 확산을 막아내는 일에 총력을 기울이며 누구보다 뜨거웠던 봄여름을 보낸 이들 의료진의 투혼을 재조명했다.
글 편집실 / 사진 이덕환, 계명대학교 동산병원
지역 내 감염병 확산을 막기 위한
최선의 선택
지난 2월, 대구 지역에서 신천지교회 교인들을 중심으로 코로나19 확진자가 폭증하면서 이곳은 의료 인력과 음압격리병상 부족 등으로 큰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이에 정부는 대구 지역을 ‘감염병 특별관리지역’으로 정했고, 계명대학교 동산병원(성서 캠퍼스)이 대구시 달서구로 이전함에 따라 대구 중심지에서 2차병원으로 운영 중이던 대구동산병원을 코로나19 지역거점병원으로 지정했다.
대구동산병원이 감염병 전담병원이 되겠다고 자처한 이유는 기존 병원 이전으로 병상이 비어 여유가 있었고, 조금만 손보면 가용할 만한 병상이 많다는 점 때문이었다. 이를 주목한 대구시와 대구시의사회의 결정과 무엇보다 환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상황에서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며 이에 가장 적절한 병원이 대구동산병원이라는 판단이 선 덕분에 코로나19 지역거점병원이라는 막중한 책임을 수행할 수 있었다.
2월 16일, 감염병 전담병원에 지정됨과 동시에 대구동산병원은 기존 입원환자 130여 명에게 동의를 구한 후 40여 명을 21일부터 성서 동산병원으로 순차적으로 이송하는 작업에 착수했고, 나머지 환자는 퇴원 및 전원 조치하면서 병원 전체를 비웠다. 그리고 463개 병상을 통째로 코로나19 환자 치료 공간으로 마련했다. 전담병원이 된 첫날, 환자 50명이 몰렸고, 3월 19일에는 395명이 한꺼번에 입원했을 정도로 환자가 넘쳐났다.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의료진과 의료 물자는 턱없이 부족했고,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서 전국 각지에서 코로나19 전사를 자처한 439명이 대구동산병원을 찾아왔다. 인공호흡기, 방호복, 마스크, 장갑 등 각종 의료물품을 보내는 기업체와 NGO단체 및 국민의 후원이 잇따르는 가운데 코로나19 전담병원에서 해제되기까지 대구동산병원은 8월 3일 기준 입원환자 1,067명 (퇴원 982명, 사망 22명 등)의 집중치료를 맡아 전국에서 가장 많은 코로나19 환자를 담당하는 병원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코로나19 대응의 최일선에 서 있다는 자부심
코로나19가 확산 추세를 맞으면서 대구동산병원은 전담병원으로 지정된 지 일주일 만에 준비된 216개 병상을 다 채웠고, 이후 72병동, 85병동, 구병동(교수연구동)까지 수리해 450병동까지 개설하게 됐다. 특히 3월 7~18일 사이에는 환자가 395명까지 폭증했지만, 타 지역 병원에서도 여력이 되지 않아 환자를 전원할 수도 없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에 NGO단체 ‘글로벌케어’와 중환자의학회 등의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어 중증환자 및 위중환자까지 치료할 수 있는 중환자실 20개 병상을 운영할 수 있었다.
"우리 병원이 감염병 전담병원으로 지정된 첫날 50명이 넘는 환자가 몰려왔을 때 중대한 문제점과 마주하게 됐습니다. ‘이 많은 환자를 누가 간호할 것인가?’ 하는 것이었어요. 급속도로 번지는 감염병의 위험으로부터 아무리 의료진이라 할지라도 안전하다는 보장은 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때 수간호사 선생님들이 주축이 돼 환자 간호를 자원하겠다고 나섰고, 일주일 정도 지나 별문제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비로소 지원 인력이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병상을 늘려가는 동안 초반에 겪었던 문제점들이 조금씩 해결되면서 상황이 안정적으로 흘러가게 되었습니다."
대구동산병원 서영성 병원장은 의료진과 직원 모두가 한마음으로 코로나19 대응의 최일선에 있다는 자부심으로 임했기에 감염 위험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내고 수많은 환자를 건강하게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낼 수 있었다고 확신한다. 이와 더불어 대구동산병원은 의료진과 직원, 환자 치료에 필요한 모든 관계자를 대상으로 감염병 관리와 예방에 대한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교육과 모니터링을 실시한 결과, 단 한 건의 병원 내 의료진 감염 없이 성공적으로 임무를 완수했다는 점에서 K-방역의 모범 사례로 손꼽힌다.
K-방역의 자부심이 이어지길
첫 확진자가 발생한 이후 대구 지역은 충격과 공포의 코로나19 사태에 직면했다. 이후 3개월이 지나자 하루 수백 명씩 폭증하던 신규 확진자 수가 0명을 기록하는 날이 더 많아졌고, 수천 명에 달했던 격리자 수도 두 자릿수까지 줄어드는 등 진정 국면을 맞을 수 있었다. 이는 ‘우리 대구에서 막아야 대한민국을 수호한다’는 각오로 의료진과 소방관, 군 장병, 공무원, 자원봉사자들의 노력과 함께 시민들의 자발적 사회적 거리두기 동참이 한데 어우러진 결과이기도 하다.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 코로나19 방역의 모범 사례로 꼽은 K-방역의 시발점이 대구라는 인식에 공감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서영성 병원장은 K-방역의 핵심 인프라로 생활치료센터의 역할을 꼽는다. 코로나19 초기, 확진 환자가 급속도로 늘어나면서 확보되는 병상 수가 환자 증가세를 따라가지 못해 확진 판정을 받고도 입원을 기다리다 집에서 숨지는 사례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에 대구광역시와 지역의료계는 중증과 경증 환자를 분리해 치료해야 한다고 정부에 건의했고, 방역당국은 전국의 기업과 지자체를 설득해 생활치료센터로 쓸 공간을 확보했다. 그 결과 대구광역시 동구 중앙교육연수원을 시작으로 세계 최초의 생활치료센터가 마련됐고, 60일간 생활치료센터 15곳에 코로나19 경증 환자 3,025명이 입소해 치료를 받았다. 이로 인해 병상이 충분히 확보되자 입원을 기다리다 숨지는 안타까운 사례가 사라질 수 있었다.
코로나19 확진 환자가 급속도로 확산하면서 한때 의료붕괴 위기에 직면했던 대구는 지역감염이 진정되면서 의료체계도 제 모습을 갖춰가고 있다. 코로나19 방역의 최후 보루로서 감염병과 사투를 벌이던 대구동산병원도 치열했던 전시 체제에서 벗어나 일상으로 복귀해 정상 진료를 진행하고 있다. 서영성 병원장은 코로나19 2차 대유행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공공의료만으로는 역부족인 것이 사실이라 말하고, 민간의료기관의 공공적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대구가 코로나19 최대 피해 지역이자 슬기롭게 극복한 모범 도시로 찬사를 받기까지 모두의 절박한 마음으로 지켜낸 K-방역인 만큼 정부의 적극적인 손실 보상과 체계적이고 현실적인 지원을 기대하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