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평원 이야기 + 마음 연구소

불안은 
없앨 수 있을까?

하지현 건국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이 불안이 완전히 없어졌으면 좋겠어요.”

진료실을 찾아오는 사람의 반 이상,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 중 내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라는 걸 아는 사람이라면 열 명 중 세 명에게 들었던 말이다.

어떤 불안도 느끼지 않는 극강(極强)의 정신상태를 우리는 이룰 수 있을까? 

리 답부터 말하자면 가능하지 않고, 설혹 가능하다 하더라도 본인에게 위험한 상태다.

불안(不安)은 한자가 설명하듯 '안전하지 않다'고 인식하는 것이다. 몸과 마음의 기본 원리는 순서가 정해져 있다. 가장 앞에 있는 것은 어떤 일이 있어도 살아남는 것이다. 생존은 행복, 즐거움, 올바름보다 훨씬 앞에 번호표를 받는다. 죽고 나면 어떤 행복도, 즐거움도 의미가 없다. 진화와 발전은 종교의 영역 이전부터 흘러왔다. 생존이 걸린 문제라고 보는 순간, 몸은 확 달아오르고, 머리는 팽팽 돌아가기 시작한다. 스트레스적 관점에서 보면 ‘싸울 것이냐 도망갈 것이냐’ 반응이다. 인간뿐 아니라 포유류의 공통 반응이다. 동네를 산책하던 강아지가 자기보다 큰 개를 만났다고 치자. 상대 개가 으르렁하고 위협을 하면 강아지는 깜짝 놀라며 몸을 움츠리고, 털이 바짝 선다. 빨리 결정해야 한다. 만만해 보이니 맞서서 짖을지, 무서우니 재빨리 도망갈 것인지. 이건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보다 앞서서 미리 작동해야 한다. 저 개가 어떤 종류이고, 내가 친하게 지내던 옆집 개인지, 입마개를 했는지 하지 않았는지를 파악하려면 시간이 걸린다. 신중하게 분석하느라 달려오는 개를 막지 못하면 죽을 수 있다. 그래서 불안 반응은 위험하다고 여기는 순간 바로 작동한다.

덕분에 불안은 생존을 좌우하는 전쟁터에서 몸과 마음에 단단히 뿌리박혀 있다. 불안 수준까지 가지 않고 적당한 수준으로 경계하고 적절하게 반응하면 딱 좋기는 하다. 그걸 긴장이라고 부른다. 시험 전날에 어떤 긴장도 없이 게임을 하고 TV를 보다가 잔다면 인생을 망치는 지름길이다. 그렇다고 불안해하면서 있지도 않을 최악의 시나리오를 그리고 공부는 공부대로 못 하고, 한잠도 못 자고 뜬눈으로 밤을 새우고 시험을 치러 간다면?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에서 재연되는 걸 목격할 것이다. 그만큼 불안은 한 번 시작하면 진짜 불안해질 만한 일이 벌어지는 역설의 악순환이 생긴다. 그게 진짜 문제다. 그래서 한 번 생긴 불안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는다. 더욱이 불안은 확연히 구별되는 병리조직이 아니다. 어떤 사안에 대해서 경계하고 긴장하던 와중에 어느 선을 넘으면서 불안하다고 반응을 하는 수준으로 넘어선다. 마치 혈압이 어느 수준을 넘어가면서 목덜미가 당기고 머리가 벙벙해지는 변화와 함께 고혈압으로 진단하는 연속선에 있는 것과 같다.

불안에 건강하게 반응하고 대처하라

문제는 평가와 반응의 두 요소로 나눌 수 있다. 평온한 상태를 수치로 50 정도라고 치자. 어떤 문제가 될 상황이 생겼을 때 그 상황을 70 정도로 볼지 100 정도의 위중한 사안으로 생각할지는 뇌가 하는 일이다. 70 정도로 정확히 평가하고 그 정도로 반응을 하면 적절한 긴장이다. 그런데, 100 정도의 문제로 판단할 수 있다. 두 번째는 반응이다. 70의 상황으로 파악은 잘했다. 그런데, 내 몸의 반응이 70보다 더한 100만큼 과하게 반응을 한다. 과잉이 모자란 것보다 낫다고 여기거나, 자동으로 과하게 반응을 하도록 잘못 세팅이 된 상태다. 과잉 측정과 과잉 반응, 이 두 가지 중 어느 하나만 있어도 우리는 불안하다고 여긴다.

여기에 사회문화적 변화도 불안이 늘어나는 상황에 한몫한다. 지난 수십 년 사이에 우리의 일상은 편안하고 편리해졌다. 일상이 편해진 만큼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 것이 있다. 불편하다고 여기는 문턱이 낮아진 것이다. 과거에는 진짜 힘들어야 힘들고 불안하다고 했는데, 이제는 조금만 불편해도 힘든 상황이라고 여기고, 그 불안을 완전히 없앨 수 있기를 바란다. 살짝 불편해지기만 해도 불안이라 느끼게 된 부작용이 생겨버렸다.

그래서 불안을 없애고 싶다. 하지만 현실에서 불안은 없앨 수 없다. 더욱이 불안이 없다면 그건 위험을 감지하는 능력이 꺼진 것과 같다. 8차선 대로에 차가 쌩쌩 다니고 있다. 불안의 스위치가 꺼져버린 사람은 차가 다니고 있어도, 신호등이 초록불로 바뀌지 않았는데도 그냥 지나갈 수 있다. 진짜 위험에 빠질 수 있다. 적당한 수준의 불안은 위험에 재빨리 대처하게 한다. 적절히 평가하고 적당히 반응하는 것, 그리고 상황이 끝나고 나면 신속히 원 상태로 복귀하는 능력. 이것이 불안에 대한 가장 건강한 관리와 반응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이 잘 작동하면 우리는 안전할 수 있고,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불안의 문턱을 높여라

평소에 불안을 잘 느끼고, 몸이 한 번 반응하기 시작하면 꽤 오랫동안 불편할 정도로 심장이 뛰고, 입이 마르고, 속이 쓰리거나 몸이 아플 정도로 근육에 힘이 들어가는 사람이라면 어찌해야 할까.  

불안의 문턱을 높이려고 노력해야 한다. 주변의 상황이 살짝 변화하는 것이 감지되면, 문턱이 낮은 사람은 이걸 위험신호로 인식한다. 좋은 뜻으로 해석하면 위험신호를 잘 감지하는 사람이다. 마치 남들은 거의 못 느끼는 지진을 혼자만 느끼는 사람과 비슷하다. 잘 느끼는 만큼 쉽게 반응하는 습관이 있다. 문턱부터 높여야 한다. 웬만한 자극이나 변화에는 반응하지 않고 무시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처음에는 힘들다. 그래도 되나 싶다. 연습이 필요하다. 연습하고, 무시했음에도 별문제가 없고, 조금 불편했지만, 위험할 수준은 아니었다는 걸 확인하면 안심이 된다. 그 상태를 확인하는 것으로 불안이 나를 괴롭히는 힘은 줄어든다. 

불안의 반대말은 안심이다. 마음이 안전하다고 느끼고, 평안하다는 상태로 이어지는 것이다. 몸과 마음은 잘 연결되어 있고, 외부에 대한 두려움이 없으니 호기심도 잘 작동한다. 타인에 대한 두려움이 없으니 그들의 아픔에 연민을 느끼며, 생존에 대한 비이성적 두려움 대신, 용기를 내 맞선다. 이를 위해 자기 능력에 대한 분명한 자신감을 유지하며, 의식은 또렷하고 판단은 명료한 상태가 하루 중 대부분 이어진다. 상상만 해도 멋진 상태다.

이 상태를 잘 유지할 수 있다면 불안이 완전히 없어지지 않았지만 삶을 더 흔들지 못한다. 적당한 불안은 안고 살아가야 한다.  나를 깨어 있게 하고, 반응성을 활동하게 하며, 예측하지 못한 위기에서 안전하게 빠져나올 수 있게 돕는다. 불안은 없애야 할 대상이 아니라, 집 잘 지키는 똑똑한 개 한 마리를 키우고 있는 것과 같다.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좋은 경보시스템을 설치해놓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