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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보험심사평가원

HIRAHIRA

세계 속으로

켈트족과 앵글로 색슨족 간의 대결 현장, 웨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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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양기화(건강보험심사평가원 상근평가위원/여행가)
참조. 가즈오 이시구로 『파묻힌 거인』(시공사, 2015년)

 

아내와 함께 가는 인문학 여행(9)

 

올여름 다녀온 영국여행에서 브리튼 켈트족의 흔적을 볼 수 있었다.

여행상품은 영국의 브리튼,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 그리고 웨일스 지역과 아일랜드를 8일 동안에 돌아보는 것이었다.
이 가운데 웨일스 지방의 콘위와 웨일스에 가까운 체스터를 돌아본 이야기와 함께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의 『파묻힌 거인』을 이야기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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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유럽 군사 건축의 걸작, 콘위

웨일스로 이동한 것은 더블린 구경을 마친 여행 6일째 아침이다. 콘위로 가는 길에 웨일스의 앵글시 섬에 있는 세상에서 가장 긴 이름을 가진 마을에 들렀다. 가이드는 웨일스어로 51자나 되는 ‘Llanfairpwllgwyngyllgogerychwyrndrobwllllantysiliogogogoch’라고 쓰고 ‘흘란바이르푸흘귄기흘고게러훠른드로부흘흘란더실리오고고고흐’라고 읽는다 했다.
이 이름은 영국 기차역 중 가장 긴 이름을 가지려고 마을 재단사가 지은 것으로 ‘붉은 굴의성 터실리오 교회와 물살이 빠른 소용돌이 가까이 있는 흰색 개암나무의 분지의 성 마리아 교회’라는 뜻이다.
콘위 강 하구에 위치한 콘위(Conwy)는 4,065명(2015년 기준)이 사는 마을이다. 이 마을이 여행자들에게 주목받게 된 것은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며 ‘13세기 후반과 14세기 초반 유럽 군사 건축을 대표하는 사례’로 든 것처럼 비교적 잘 보존된 성곽과 요새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콘위 성은 웨일스를 점령한 잉글랜드의 에드워드 1세의 명으로 1283년부터 6년여에 걸쳐 건설되었다. 마을을 에워싸는 성벽과 함께 콘위강 어귀를 지키는 요새가 세워져 있다. 최초에는 아일랜드로 쫓긴 브리튼 켈트족의 침공에 대비한 것으로, 당시 15,000파운드가 소요되었다. 직사각형 모양의 요새는 현지와 해외에서 구한 돌로 지었다. 안마당과 바깥마당으로 나누어졌고, 외부를 감시하기 위한 8개의 탑과 2개의 망루를 세웠다. 강으로 연결되는 통문이 있었으며 바다에서도 보급을 받을 수 있었다.
콘위 성 안마당을 지나 망루에 오르면 성채 내부는 물론 성 밖 풍경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성 밖 마을을 빙 둘러싸고 있는 성벽은 바닷가로 연장되어 있다. 성벽 위로는 성을 지키는 군사가 왕래했을 것으로 보이는 통로가 있고, 깊은 우물처럼 생긴 곳은 곡물을 보관하던 창고로 보인다. 퇴색한 성벽, 모서리가 닳은 망루가 긴 세월의 흔적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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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콘위 요새의 망루에서 내려다 본마을 풍경 / (우)뒤뜰에서 본 체스터 대성당

 

성벽에 둘러싸인 중세 구시가지, 체스터

콘위 성에서 차로 한 시간 정도 달려 웨일스와 잉글랜드 경계를 넘으면 체스터이다. 기원 79년 로마제국의 베스파시아누스 황제 시절 제국의 제2군단은 고대 지도제작자 프톨레마이오스가 켈트 코르노비(Celt Cornovii)라고 한땅에 데바 빅트릭스(Deva Victrix)라는 이름의 요새를 세웠던 것이 체스터의 시작이다. 지금 남아있는 체스터 성은 1070년 휴 다브란체스 (Hugh d’Avranches)가 세웠다. 아마 초기 색슨족의 요새가 있던 장소에 지었을지도 모른다. 12세기 들어 목조탑이 돌탑으로 대체되었고, 13세기에 외벽을 세웠다. 성곽의 복잡한부분은 1788년과 1813년 사이에 지어졌다. 동문은 1768년 리처드 그로스베너(Richard Grosvenor) 백작의 지원으로 우아한 모양의 아치로 재건되었다. 붉은 사암으로 지은 동문에는 늘어난 교통량을 고려하여 중앙에 넓은 아치형 통로를 두었고, 양쪽으로는 보행자를 위한 작은 아치형 통로를 두었다. 1897년 빅토리아 여왕의 ‘다이아몬드 희년’을 기념하는 시계탑을 동문 위에 세웠다. 4면에 각각 시계 판을 붙인 시계탑을 둥근 아치형 철탑 위에 세웠고 그 위로는 풍향계를 올린 구리로 만든 오지큐폴라를 덮었다. 동문의 시계탑 가까운 데서 성벽 위로 올라서면 두어 사람이 편하게 왕래 할 수 있을 정도로 통로가 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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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스터 성 동문에서 내려다 본 거리풍경. 튜터양식의 건물들이 이어져 중세풍의 분위기가 물씬 난다


로마군단이 철수한 다음에 앵글로 색슨족이 교회를 세웠는데, 907년에는 앵글로 색슨족의 공주 성 워버그(St Werburgh)에게 헌정된 교회를 세우고 그녀의 유골을 모셨다. 체스터 대성당은 영국 다른 성당들과 달리 현지에서 구한 붉은 사암으로 지었다. 1092년에는 체스터의 첫 번째 노먼 백작 휴 루퍼스(Hugh Lupus)의 발원으로 베네딕토회 수도원을 지었다. 13세기 무렵에는 여성 예배당을 지었다. 이후 16세기에 이르도록 수도원 건물들이 회랑을 따라 지어졌으며 성당의 부속 건물도 추가되었다. 이 수도원은 1540년 헨리 8세가 수도원 해산 명령을 내릴 때까지 유지되었으며 많은 부분이 손상되었으나 살아남을 수 있었다. 오랜세월에 걸쳐 건물을 지어가다 보니 과거부터 현대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건축양식을 볼 수 있다. 1868~1876년 대대적으로 보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수 세기에 걸쳐 증축한 탓에 내부가 복잡하다. 크기가 얼마나 큰지 본당에 들어서면 제단이 까마득하게 보인다. 남쪽수랑으로 이동하면 제단 외에도 장식품, 성경내용을 묘사한 그림 등 다양한 소장품을 비롯하여 여러 연대의 스테인드글라스 등을 볼 수 있다. 본당의 북쪽으로 나가면 회랑이 이어지고, 회랑에는 기묘한 조각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회랑으로 둘러싸인 안뜰에도 현대의 조각품을 설치한 것을 보면 대성당이 보유한 예술작품의 연대가 참 다양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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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위대한 신학자이자 체스터 성당의 주교(1672~1686)를 지낸 존 피어슨 주교의 석관. 네 면에 십이사도의 두상을 부조했다 / (우) 체스터 대성당의 전면

 

세월이 담긴 유적, 그것을 배경으로 쓴 소설

콘위에서 체스터까지 가며 ‘오래된 유적들을 잘도 지켜왔구나’라고 생각하며 이들 유적이 담고있는 긴 세월의 흔적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궁금해졌다. 특히 웨일스 지역으로 밀려난 브리튼 켈트족과 앵글로 색슨족의 힘겨루기는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했다. 웨일스 지역을 가즈오이시구로의 『파묻힌 거인』과 연결해서 생각해본 이유다. 이 소설의 무대는 고대 잉글랜드이며 시대 배경은 5~6세기경 브리튼족과 색슨족사이의 정복 전쟁이 끝난 뒤이다. 이 소설을 읽다 보면 기억과 망각의 역할에 대해 생각하게된다. 작가는 모든 사람의 과거 기억을 한 번에 통제할 수 있는 기전으로 ‘망각의 안개’를 이용하였다. 영국의 기후 특성에 착안한 것 같다.
등장인물인 액슬과 비어트리스는 아들을 찾아가는 길에 색슨족 마을에 들어선다. 색슨족은 토끼굴에 사는 브리튼족과는 달리 제대로 된마을에서 산다. 그리고 사람들이 과거를 잊고사는 이유가 케리그라는 암용의 입김이 안개처럼 땅을 뒤덮고 사람들의 기억을 빼앗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암용을 죽이면 사람들의 기억이 되돌아올 것인데, 수도원의 수도사들이 암용을 보호하고 있다. 수도원에서 만난 조너스 신부는 비어트리스에게 안개의 진실을 전하며 안개에서 벗어나는 것이 좋은 일만은 아닐 수 있다고 말한다. 안개는 나쁜 기억까지 덮고 있기 때문이다. 그에 대하여 비어트리스는 나쁜 기억 때문에 눈물 흘리거나 분노로 몸을 떨 수도 있지만, 삶이 어떤 것이더라도 함께 기억할 이유가 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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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콘위로 들어가는 도개교와 현수교 /

(우) 서쪽 창의 스테인드글라스 카터쉐프랜드가 1961년에 제작한 현대작품으로 성가족과 성도 워베르, 오스왈드, 에이단, 차드, 윌 프리드, 에델 플로다 등을 새겼다


긴 여행 끝에 등장인물들은 암용이 머무는 장소에 이른다. 그리고 각자의 역할이 드러난다. 가웨인경은 암용을 보호하는 일을 맡아왔고, 위스턴은 암용을 죽이라는 색슨족왕의 밀명을 받았던 것이다. 아서왕이 마법사 멀린으로 하여금 암용의 입김으로 망각의 안개를 만들어내도록 한 것은 끝없는 전쟁을 마감하고 평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것이다. 색슨족왕이 암용을죽이려는 이유는 다가올 정복 전쟁의 길을 닦기 위해서였다. 암용이 죽으면 묻혀있던 거인이 깨어나게 된다. 아마도 원한과 증오를 담은 기억이라는 거인이리라. 그렇게 되면 브리튼족과 색슨족은 다시 전쟁을 치러야 하고, 사람들은 죽음으로 몰리게 될 것이다. 가웨인경과의 결투에서 승리를 거두고, 암용을 죽인 위스턴이지만 오랜 세월 브리튼족과 어울려 살아서인지 환호할 수만은 없었다. 그래서 브리튼족인액슬과 비어트리스에게 멀리 떠나라고 말한다.
브리튼족과 색슨족 사이의 실타래는 풀렸지만, 액슬과 비어트리스 사이에 숨겨진 이야기는 무엇일까? 두 사람은 바다 건너 특별한 섬으로 향한다. 복잡한 세상을 떠나 조용한 삶을 보내려는 사람들이 선택하는 장소다. 그런데 섬에 들어간 사람은 많아도 다른 영혼을 보지 못한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만이 유일한 거주자인 것처럼 행동한다. 부부가 그 섬에 들어가 같이 살려면 사공의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두 사람의 진정한 사랑을 확인하면 사공은 배에 태워 섬으로 간다. 암용이 죽고안개가 걷힌 다음 사라졌던 기억이 액슬과 비어트리스 두 사람에게 돌아온다.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리고 두 사람은 같이 배를 타고 섬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 기억과 망각의 상보적 역할에 대하여 생각하게 하는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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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체스터 성 동문과 시계탑 / (우) 콘위 요새에 있는 곡물 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