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대학병원 영상의학과 판독실에 가보면, 예전과 다른 풍경을 볼 수 있다.
영상의학과 의사가 판독하려고 띄운 유방촬영술 사진에 매번 화살표가 뜬다. 이곳을 잘 보라는 메시지다.
인공지능(AI) 프로그램이 유방촬영술을 분석하여 암이 의심되는 부분을 찾아내는 것이다.
바야흐로 AI 의사 판독 시대다.
글 김철중 조선일보 의학전문기자
AI가 등장하면서 암 진단·치료 방식이 바뀌고 있다. 예전에는 같은 병기라면 누구나 비슷한 항암제를 맞고, 수술 방식도 거의 동일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환자 개개인의 유전자변이, 종양의 미세한 구조, 영상 속 보이지 않던 패턴까지 고려해 치료법이 달라진다. 이 변화의 중심에는 AI가 있다. ‘정밀 암 의학(precision oncology)’이라는 말은 오래전부터 존재했지만, 실제 임상에서 그 정밀함이 구현되기 시작한 것은 바로 AI가 본격적으로 암 진단과 치료 과정에 투입되면서다.
치료 강도와 예후까지 예측
가장 먼저 큰 변화를 만든 분야는 병리학이다. 구글 딥마인드가 개발한 AI 알고리즘 ‘LYNA’는 유방암 환자의 림프절 전이를 판독하는 데 민감도 99%를 기록했다. 현미경으로 봐도 놓치기 쉬운 미세전이를 사람보다 빠르게 찾아낸다. 전립선암에서도 AI는 악성도를 알려주는 글리슨 점수 판독의 편차를 줄이고 전문가와 동등하거나 더 높은 정확도를 보였다. 이러한 병리 슬라이드 판독에서 일관성이 높아지면 치료 강도와 예후 예측까지 정교해진다.
영상의학에서 AI의 존재감은 뚜렷하다. 미국에서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AI 모델은 저선량 CT에서 폐암 결절의 악성 여부를 가려내는 능력이 숙련된 전문의보다 뛰어났다. 특히 오진율을 11%까지 낮췄다. 췌장암은 어떨까. 조기 발견이 거의 불가능한 암으로 알려져 있지만, 존스홉킨스대 연구팀은 CT 영상에서 췌장 주변의 지방·섬유화 패턴을 분석해 발병 3년 전 위험을 예측하는 AI 모델을 발표했다. 영상 속 ‘보이지 않는 단서’를 찾아낸 것이다. 이는 진단의 혁신일 뿐 아니라, 검진 전략 자체를 바꿀 수 있는 잠재력이다.
항암제 부작용 발생 가능성도 예측
정밀의학의 핵심인 유전체분석에서도 AI는 거대한 역할을 하고 있다. 실제 암환자 수만 명의 데이터를 보유한 파운데이션메디슨과 플래티런헬스는 AI를 이용해 ‘이 변이를 가진 환자는 어떤 약에 반응할 가능성이 높다’는 패턴을 찾아내고 있다. 다나파버 암센터는 수천 개 유전자변이를 분석해 환자에게 가장 적합한 표적치료제나 임상시험을 매칭하는 알고리즘을 사용한다. 희귀 변이를 가진 환자가 적합한 치료를 찾지 못해 방황하던 시대가 서서히 끝나가고 있는 것이다.
AI는 치료 반응성 예측에서도 힘을 발휘한다. 특히 면역항암제는 어떤 환자에게 듣고 어떤 환자에게 듣지 않는지가 매우 불확실하다. 메모리얼슬로언케터링암센터는 CT 영상과 종양 미세환경 정보를 결합한 AI 모델을 개발해 기존 PD-L1 염색보다 20~30% 높은 정확도로 면역항암제 반응을 예측했다. 항암제 부작용이 발생할 가능성을 조기에 예측하는 AI도 등장해, 치료 강도 조정을 돕고 있다.
암 치료의 패러다임 변화
수술방에서도 AI는 이미 작동 중이다. UCLA 연구팀은 형광 이미지를 실시간 분석해 종양과 정상조직 경계를 즉시 표시하는 AI를 개발했다. 이를 적용하면 잔존 종양 비율이 30% 이상 줄어든다. 로봇수술에서도 AI가 봉합·절개 동작을 학습하면서 수술을 표준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치료 후 관리도 달라진다. 스탠퍼드대 AI 예후 모델은 방사선·혈액검사·영상 기록 등을 통합 분석해 재발 위험을 기존 노모그램보다 최대 50% 이상 높은 정확도로 예측한다. 실제 미국의 여러 암센터는 AI 기반 원격 모니터링 시스템을 도입해 응급실 방문율과 입원율을 줄이고 있다. 암 치료가 병원 중심에서 환자 중심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신약 개발까지 설계
마지막으로 주목해야 할 점은 신약 개발이다. AI가 설계한 항암 후보물질이 1년 만에 임상에 진입하는 시대가 열렸다. 특정 유전자변이에 맞춘 초정밀 표적치료제를 훨씬 빠르게 개발할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다. 정밀의학의 완결판이 향하는 방향이다.
이제 암 치료의 패러다임은 단순히 ‘더 강한 치료’가 아니라 ‘더 정확한 치료’로 바뀌고 있다. AI는 그 변화를 가속화하는 엔진이다. 병리, 영상, 유전체, 수술, 예후 관리, 신약 개발까지 암 치료 전 과정에서 AI는 이미 사람의 한계를 보완하며 정밀도를 끌어올리고 있다. 정밀의학은 미래의 약속이 아니라 현실이 되었고,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도입 속도다. 이 거대한 변화가 한국 의료 시스템에 본격적으로 구현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