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 건강러 주목!

적정한 비만 기준과
적당한 치료

비만 역설(逆說)이라는 말이 있다. 약간 뚱뚱한 사람이 정상 체중보다 되레 더 오래 산다고 해서 나왔다. 협심증, 만성심부전, 말초동맥질환, 뇌졸중 같은 심뇌혈관질환에서 과체중이 정상보다 사망률이 낮다. 이런 경향은 고령층에서 더 뚜렷하다. 조금 뚱뚱한 그룹에선 우울증도 적다. 질병 징후가 전혀 없는 건강한 비만인이 상당수 있다는 것도 비만 패러독스(paradox)에 속한다.

김철중 조선일보 의학전문기자

정상 체중인데 운동하지 않는 사람과 뚱뚱한데 신체 활동이 많은 사람, 둘 중 누가 더 오래 사느냐는 한때 의학계의 큰 관심사였다. 여러 나라에서 연구가 이뤄졌는데 승부는 싱겁게 끝났다. 비만해도 운동한 사람의 완승이었다. 뚱뚱한 것보다 게으른 것이 건강에 더 나쁘다는 의미다. 살 빼라는 잔소리보다 운동하라는 격려가 장수에 훨씬 효과적이다. 같은 질병에 똑같은 약을 써도 열심히 몸을 움직인 환자에게 약발이 잘 듣는다.

심장내과나 내분비내과 의사들은 환자가 심장병이나 당뇨병을 처음 진단받고 나서 다음 진료에 다시 들어올 때를 유심히 관찰한다. 환자 모습만 봐도 앞으로 이 환자의 병이 잘 나을지 안 나을지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뚱뚱하건 말랐건 걸음걸이가 활기차면 잘 나을 징조다. 예전보다 얼굴이 햇빛에 보기 좋게 그을렸고, 운동화를 신고 진찰대로 오면 두말할 것도 없다. 그런 경우 뚱뚱해도 영락없이 검사결과 혈당·혈압·콜레스테롤 수치가 좋게 나온다.

비만의 적정한 기준은?

그렇다면 비만의 기준은 무엇일까. 이와 관련해 현재의 한국인 비만 기준이 적정한가에 대한 의문도 있다. 비만여부는 체질량지수(BMI)에 따라 결정된다. 체질량지수는 몸무게(kg)를 키 제곱(m²)으로 나눈 값으로, 몸무게 72kg, 키 170cm인 남자의 BMI가 25kg/m²정도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인종에 관계없이 BMI 30kg/m²이상을 비만 기준으로 삼는데, 한국인과 아시아인의 경우 25kg/m²이상을 비만으로 보고있다. 아시아인은 서양인에 견줘 낮은 BMI 구간부터 합병증 위험도가 증가하고 복부지방과 체지방률도 높다는 점이 고려돼, 서양인보다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온 것이다. 그런데 이 기준을 적용하면 현재 한국인 남자의 경우 38%가 비만이다.

그래서 요즘은 BMI 25kg/m²가 지나친 비만 잣대라는 비판과 함께, 한국인 비만 기준은 여러 상황을 감안하여 BMI 27kg/m²선이 적당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27kg/m²로 기준이 올라가면 비만 인구가 14%로 줄면서 기존 뚱보의 절반 이상이 뚱보에서 해방된다.

비만 치료제의 효과는?

최근 화제의 중심인 비만 치료제 위고비. 글로벌 제약사 노보 노디스크가 만든 위고비는 당뇨병 치료에 쓰던 ‘세마글루타이드’라는 약물의 고용량 주사제 버전이다. 세마글루타이드는 위·소장에서 음식을 먹으면 분비되는 호르몬(GLP-1)의 작용제이다. 이 호르몬은 음식이 들어오면 췌장에 알려서 인슐린 분비를 늘리라고 알려준다. 일종의 홍수 경보다. 한꺼번에 음식이 소장으로 쏟아져 들어오면 처리가 힘드니, 위장에 배출 속도를 줄이라고도 지시한다. 그리고는 뇌에도 포만감을 높이고 그만 먹으라는 신호를 보낸다.

위고비를 맞은 환자들은 평균적으로 자기 체중의 15~20%가 줄었다. 몸무게 100kg인 사람이 80kg으로 빠진 것. 단, 일부에게는 울렁거림, 설사, 구토 등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 위고비는 혈당, 지방간, 심혈관질환, 콩팥 기능 개선, 사망률 저하 등의 효과도 보인다. 펜처럼 생긴 주사제로 환자가 주 1회 직접 배나 허벅지 등에 주사를 놓으면 된다. 주사비는 1년에 600만~800만 원가량 들며 환자가 전액 부담해야 한다.

위고비 투여 대상은 BMI 30kg/m² 이상인 고도 비만 환자 또는 BMI 27~30kg/m² 미만 비만이면서 고혈압, 고지혈증 등 동반 질환이 있는 환자 등이다. BMI 27kg/m²이 넘으면 대부분 고혈압과 고지혈증이 있기에 27kg/m²이 넘은 비만인은 거의 모두 투여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보면 된다. 위고비를 쓰다가 끊으면 다시 살이 찔 수 있다. 최근 미국의사협회지에 발표된 임상 연구에 따르면, 약물 투여로 자기 체중의 20%를 줄었다가, 투여를 중단하면 체중의 14%가 돌아온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약물 투여 중에 식이요법과 운동을 병행하는 등 생활습관을 고치면 약을 끊어도 다시 찌는 정도가 덜했다.

온갖 다이어트와 운동을 해봐도 체중 조절에 실패했던 사람들이 위고비 주사를 맞고는 15%에 이르는 체중 감량을 보이는 점에서, 비만에는 단순히 의지 부족으로만 치부할 수 없는 생물학적인 부분이 있다. 주사를 중단하면 다시 체중이 늘어난다는 것은 비만이 그만큼 평생에 걸쳐 관리해야 할 만성질병이라는 점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체중은 개인 일상의 블랙박스

다들 적정 체중을 가지려고 애쓴다. 하지만 많이 먹고 적게 움직였으면 몸무게는 어김없이 늘어난다. 체중은 칼로리 수입과 지출을 표기한 신체 회계장부다. 매일 아침 체중계에 올라섰을 때, 전날 내 활동에 대한 성적표를 받는 느낌이다. 먹은 만큼 늘고, 움직인만큼 줄어든다.

대개 70세를 기점으로 체중 관리 목표가 달라진다. 고령자는 식욕저하와 소화 흡수 능력 감소, 치아 부실 등으로 영양 부족이 쉽게 온다. 체중도 줄고 근력 저하도 일어난다. 그러므로 70세부터는 적정 체중 목표를 올리는 것이 좋다. 저체중보다는 차라리 과체중이 낫다. 70세 전에는 건강관리 목표로 고혈압, 당뇨병, 심장병 등 생활습관질환 예방에 방점을 두어야 하고, 70세가 넘어서면 근력 감소와 노쇠 예방에 주안점을 둬야 한다. 젊었을 때는 넘침을 주의하고, 나이 들면 부족함을 경계해야 하는 것이 세상 이치다.

체중은 하루 일상의 행동과 심리가 기록되는 블랙박스다. 인생 경로와 노화에 따라 적정 체중을 만들어가야 한다. 매일 재는 체중은 건강한 삶으로 안내하는 기초 내비게이션이다. 명백한 비만이나 저체중 상태라면 적정 체중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나이 들어 적정한 체중만 꾸준히 유지해도 삶이 보람차다. 매일 아침 체중계에 올라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