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만남

나눔의 삶을 살아가는
모든 날이 선물

곽병은 원장

환자의 질병만 치료하는 의사보다는 환자를 인간적으로 대하고 더 따뜻하게 치료하는 의사가 되고 싶었다. 환자가 속한 사회까지 치료하는 의사가 되어서 난향이 자연스럽게 천리를 가듯 따뜻한 마음과 사랑이 멀리 이웃에 퍼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가난한 이웃들을 위해 평생 봉사해온 곽병은 원장이 46년 동안 의사로서 지켜온 소신이다. 넓은 마음과 뜨거운 가슴으로 사랑을 실천하는 곽병은 원장을 만나러 원주로 향했다.

편집실 / 사진 송인호

조금은 남달랐던 괴짜 의사

곽병은 원장이 봉사를 꿈꾸게 된 것은 의사였던 아버지의 영향이 크다. 생활이 어려워 병원비 낼 형편이 안 되는 이들에게 무료로 진료를 해주던 모습이 어린 눈에 슈바이처처럼 보였기에 의사가 되어 무의촌에서 어려운 환자를 위해 살고 싶다는 꿈이 생겼다.

“의대 시절 교수님께서 ‘처음 의대에 들어올 때는 모두가 슈바이처를 꿈꾸지만 졸업할 때 보면 그 마음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말씀이 크게 와닿았습니다. 헌신하는 의사가 되고 싶어 의대에 들어가지만, 그 길을 걷는 의사는 드물다는 말씀이겠지요. 학생 때 품었던 마음을 잃지 않으려면 꾸준히 활동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생각에 의대 재학 중에 농촌 의료봉사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한 번도 쉬어본 적이 없습니다. 어린 시절 아버님을 보면서 봉사하며 살고 싶다는 꿈을 가졌고, 교수님 덕분에 그 꿈을 지켜낼 수 있었습니다. 참 다행스럽고 감사한 일이죠.”

곽병은 원장은 인생을 살면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느냐며 그래서 자신은 꿈을 이룬 행복한 사람이라 말하고 환하게 웃는다.

곽병은 원장은 스스로를 순진하지만 고집이 세고, 조금은 남다른 괴짜 기질이 있다고 표현한다. 중학생 시절, 집으로 놀러온 친구가 그의 시계를 훔쳐 간 일이 있었는데 당시 소년 곽병은은 아버지에게 ‘친구가 필요해서 가져간 것 같다’고 담담하게 말했다고 한다. 이런 곽 원장의 괴짜 기질은 의대 시절에도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의사라는 직업이 너무 힘들다는 것을 아시기에 아버님은 의대 진학을 극구 반대하셨어요. 그래서 몰래 중앙대 의대에 지원해 합격했는데 그렇게 어렵게 들어간 사람치곤 농땡이를 참 많이 부렸어요. 한 번은 친구와 아예 낙제를 할 생각으로 일부러 시험을 보지 않았던 적도 있었어요. 이 사실을 안 아버님이 불호령하셔서 결국 저는 재시험을 보고 친구는 유급을 하게 됐죠. 지금 생각하면 왜 그런 짓을 했는지 모르겠어요. 공부를 열심히안했으니 연히 성적이 좋을리 없어서 모교 대학병원은 엄두도 못 내고 있었는데, 아버님의 도움으로 국립원호병원 인턴으로 들어가 수련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자신이 너무 모자라는 자식이어서 죄송스러운 마음이 컸다는 곽병은 원장은 방황 아닌 방황을 하면서도 봉사하는 의사가 되겠다는 다짐은 잠시도 놓지 않았다. DNA에 단단히 박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지 짐작해본다.

2013. 2. 15. 부부의원 마지막

봉사가 꿈인 원주의 슈바이처

곽병은 원장은 원주지역에서 슈바이처로 통한다. 국군원주병원에서 군의관으로 복무하면서 원주와 인연을 맺었고, 의사인 부인 임동란 씨와 부부의원을 운영하면서 지역 재소자와 집창촌 여성들을 돌보다가 가정공동체인 ‘갈거리사랑촌’을 설립하면서 본격적으로 봉사의 삶에 뛰어들었다. 외환위기 때는 노숙인을 위한 무료급식소 ‘십시일반’을 차렸고, 이후 원주노숙인센터, 봉산동 할머니의 집 등을 세웠다. 또 스스로 삶을 일으키려 해도 종잣돈이 부족한 노숙인들을 위해 갈거리협동조합을 만들어 200만 원 한도 내 무담보 신용대출을 시작했고, 강원의료복지생활협동조합 밝음의원 원장을 끝으로 퇴임을 한 지금도 병원에 올 수 없는 고령층 환자와 요양원 어르신들을 찾아 왕진을 나가고 있다.

지역을 위한 나눔의 지평을 넓혀가다 보니 여러 사업으로 확장하게 됐고 봉사보다 운영에 매달리는 자신을 돌아보게 됐다는 곽병은 원장은 2015년 그간 맡고 있던 자리와 재산을 내어주고 오롯이 봉사자로 살고 있다. 그가 갈거리사랑촌을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는 생각은 자신은 이곳의 봉사자라는 것이다. 한 번도 개인 소유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에 지역에 필요한 여러 가지 사업을 하고 여한 없이 천주교 원주교구에 기증을 할 수 있었다.

“우리 부부가 운영하던 부부의원에는 할머니 환자가 많이 오셨는데, 아픈 다리를 이끌고 걷다 쉬다 하시니까 15분이면 올 거리를 1시간 넘게 걸어오시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정부에서 생활보조금으로 월 15만 원을 받아 월세 10만 원 내고 5만 원으로 한 달을 사셔야 하니 차비를 아낄 수밖에 없으셨던 거죠.”

할머니들의 안타까운 사정을 듣고 옛집 한 채를 매입해 월세 6만 원, 4만 원만 내면 되는 ‘봉산동 할머니의 집’이라는 공동가정을 만들었다는 곽병은 원장. 생활비를 두 배로 늘려준 이 집이 천국이라며 행복해하는 할머니들을 보며 봉사 덕분에 인생을 배우고 성숙해진 듯해 오히려 감사한 마음이 든다고 말한다.

2023. 8. 12. 제27회 만해대상 수상일

남을 도울 수 있어서 행복한 의사라는 직업

곽병은 원장이 퇴직을 하던 날, 한 어르신이 고마웠다고 선물 봉투를 내밀었다. 그 속에는 금 열 돈이 들어 있었다. 정부에서 주는 지원금으로 간신히 생활하던 어르신은 한때 부랑인으로 살다가 환자와 의사로 만나 친구가 되었고, 곽원장이 아니었더라면 자신은 지금까지 살아 있을 수가 없었을 거라며 그간의 고마움을 담아 선물한 것이다.

“환자와 의사가 아닌 가족이고 친구인 분이 건네주신 귀한 마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병원을 떠나던 날 많은 환자가 눈물로 인사를 해주셨고 몇 번이고 고맙다는 말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의사여서 이분들을 도울 수 있었기에 저는 세상에서 의사만큼 행복한 직업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현역 의사에서 물러난 지금도 왕진을 다닌다는 곽병은 원장은 예전에 진료했던 환자가 고맙고 반갑다는 인사를 건넬 때면 자신이 그렇게 잘해드렸나 되돌아보게 된단다. 의사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인데 이토록 고마워하고 존경받을 수 있는 직업은 의사가 유일할 것이라는 곽병은 원장. 봉사자로서 평생 꿈을 이룬 지금, 하루하루가 선물을 받은 기분이라며 더 많은 의사 후배가 이 감사한 선물을 받을 수 있기를 소망한다.

“의사들이 환자를 단순히 환자로만 보지 않고 마음으로 이해하고 따뜻하게 대하면 좋겠습니다. 지역사회에서 병원을 하고 있으니 주민들에게 감사하게 생각하고 다시 베푸는 선순환이 이루어지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환자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존경받는 의사가 된다면 궁극적으로 병원 운영에도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의사와 봉사라는 꿈을 간직하고 끝까지 길을 잃지 않은 것을 큰 선물이었다고 말하는 곽병은 원장. 인생을 살면서 누군가에게 마지막 날에 고맙다는 말을 들을 수 있는 행복을 얻은 만큼 자신 또한 마지막 날에 누군가에게 고마웠다고 말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