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만남

대한민국 소아외과를
지탱하는 큰 버팀목

중앙대학교병원 소아외과
박귀원 임상석좌교수

고희를 훌쩍 넘긴 나이지만 박귀원 교수는 지금도 의료 현장에서 최일선을 지키는 ‘현역’이다. 1979년 서울대학교병원에서 국내 최초로 소아외과를 신설할 당시에도, 2014년 중앙대학교병원에서 소아외과를 새로 조직할 때도 어김없이 박귀원 교수가 있었다. 44년 동안 시행한 수술만 해도 3만 건이 넘는 대한민국 소아외과의 최고 권위자인 박 교수는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의사로 살아온 만큼 받은 은혜를 무료 봉사로 베풀고 싶다 말한다.

편집실 / 사진 윤선우

국내 여성 소아외과 전문의 1호,
그 전설의 시작

학창 시절 박귀원 교수의 꿈은 법조인이 되는 것이었지만 집안 식구가 다 의료계에 종사하는 분위기에서 의사의 길은 이미 정해진 수순이었다. 법대에 가면 학비를 주지 않겠다는 아버지의 엄포에 어쩔 수 없이 서울대학교 의대에 진학했지만, 지나고 생각해보니 의사가 천직인 것 같다며 웃는다.

“다행히 의대 공부가 적성에 맞아 열심히 했지만, 과 선택을 두고 또다시 부모님과 의견 충돌이 생겼어요. 어머니의 뒤를 이어 산부인과를 가길 바라셨는데, 저는 환자 예후와 회복을 빨리 확인할 수 있는 외과에 가고 싶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여성 외과의가 드문 시절이라 ‘여자한테 누가 배를 내놓고 수술 받겠느냐’는 인식이 있어서 부모님의 반대가 극심했지만 제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의대를 졸업하고 바라던 대로 원자력병원에서 외과의로 근무하던 박귀원 교수는 1979년 9월부터 서울대병원에 전임의 제도가 생기니 와서 소아외과에서 일해보라는 대학 은사님의 제의를 받고 한동안 고민에 빠졌다. 소아외과는 너무 힘들 것 같아 망설이던 박귀원 교수는 ‘어른들은 암 수술 후에 5년만 살면 잘 살렸다고 하는데, 신생아는 80살까지 살게 해주는 것이니 더 보람 있는 일이지 않겠느냐’는 은사님의 설득에 마음이 움직여 서울대학교병원 소아외과 1기 전임의 생활을 시작했다.

“이전까지 서울대학교병원 외과에 여자 의사가 없어서 주변에서 걱정을 많이 하셨는데, 저는 여자가 외과를 못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수술받은 환자로부터 오히려 여자가 바느질을 더 잘해서 좋다는 말을 듣기도 했는데,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던 시절의 해프닝이죠.”

서울대학교병원 소아외과에서 혹독한 전임의 과정을 마치고 1983년 조교수가 된 박귀원 교수는 ‘여자 외과의사’라는 한계에 갇히지 않으려고 몇 배의 노력을 기울였다. 3만 건이 넘는 수술을 하고 연구논문 300여 편을 발표하는 등 언론에서 기네스감이라고 기사를 낼 만큼 엄청나게 활동했고, 정년퇴임 후 중앙대병원으로 자리를 옮기고도 800건이 넘는 수술을 집도하며 지금까지 어린 친구들의 병동을 든든하게 지키고 있다.

어린 환자에게서 배운 교훈,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

44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수많은 아이를 수술하고 진료하면서 박귀원 교수는 현장에서 얻는 경험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깨닫는다고 말한다.

“항문이 없어 인공항문 수술을 했는데 수술이 잘못돼 배에 배변 주머니를 달고 다녔던 남자아이가 있었습니다. 지방에 있는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는데 수술이 잘못됐으니 서울에 한 번만 데려가달라고 울면서 어머니를 졸랐다는데, 얼마나 힘이 들었으면 아이가 병원에 가자고 했겠어요? 수술로 새 항문을 만들어줬더니 배변 주머니가 없어졌다고 좋아하던 아이 얼굴이 지금도 잊히지 않습니다. 또 한 번은 대장, 소장 전체 신경이 없고 장루에서 변이 줄줄 새는 아이가 있었는데, 여러 번 수술을 해도 해결되지 않아 절망감이 들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몇 차례 더 수술을 하고 나니 장이 제대로 막히고 염증도 나아졌습니다. 더 살기 힘들 거라며 포기하라던 환자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기에 살려낼 수 있었고, 이 아이를 보며 큰 교훈을 얻었어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니 어떤 아이도 포기하지 않겠다고 말이죠.”

20년 전에 수술했던 어린아이를 세월이 지나 환자 보호자로 만나기도 했고, 자신에게 수술을 받았던 환자가 건강하게 자라 간호사가 되어 재회하는 등 박귀원 교수는 소아외과 의사가 경험할 수 있는 놀랍고 반가운 인연들에 항상 감사한 마음이다.

서울대학교병원 소아외과에서 열정을 쏟은 박귀원 교수는 정년을 앞두고 ‘신나게 놀 생각’에 몹시 들떠 있었다. 어떻게 놀지 구체적인 계획도 이미 세워둔 상황에서 의사라는 운명은 박교수를 쉬 떠나게 해주지 않았다.

“중앙대의료원장을 지낸 김성덕 교수님과 는 서울대병원 시절부터 전임의를 같이 시작해 수술방에서 자주 만나 친하게 지내던 사이였습니다. 그 인연으로 중앙대병원에서 일할 기회가 생겼어요. 2014년 3월에 중앙대병원 소아외과를 신설한다고 해서 자리 잡을 때까지만 도와드린다는 생각으로 왔다가 지금까지 진료하고 있네요.”

2~3년만 하면 후임이 생기지 않을까 했는데 여태까지 떠나지 못하고 있다는 박귀원 교수는 이대로 소아외과가 없어지게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하루빨리 소아환자의 외과수술을 담당할 수 있는 후배가 나타나 후련한 마음으로 병원을 떠날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이다.

소아외과는 어린 생명에게
희망을 심어주는 가치 있는 일

강산이 네 번도 더 바뀌는 세월 동안 어린 환자들 진료에 몸담아온 박귀원 교수는 오늘날 소아외과가 처한 현실을 누구보다 체감하고 있다.

“제가 처음 일을 시작할 당시 120만 명에 육박하던 신생아가 20만~30만 명으로 5분의 1로 줄었어요. 여기에 고질적인 저수가 문제와 인력 부족, 무엇보다 극성 민원에 시달리다 보니 젊은 의사들이 기피하려는 경향이 충분히 이해됩니다. 국가차원에서 특단의 조치가 있어야 하지만 녹록지만은 않으리라 생각해요. 그럼에도 우리 후배들에게 보람 있는 일을 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고열로 병원을 찾은 아이가 링거를 맞는 과정에서 500cc중 300cc만 주입했으니 나머지 200cc는 계산에서 빼달라는 보호자의 말에 씁쓸했다는 의료진의 이야기를 듣고 요즘 세태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는 박귀원 교수. 그래도 의사는 본연의 임무를 다해야 한다는 말을 조심스럽게 건넨다.

“아이들은 성인보다 회복이 빠르다 보니 상태가 좋아지는 것을 금방 확인할 수 있어서 의사가 느끼는 보람도 큽니다. 아이들이 힘들게 역경을 헤치고 나가서 건강하게 지내는 모습을 보면 우리가 어린 환자들에게 고마움을 느끼는 순간이 더 많아요. 현재 젊은 의사들이 처한 여러가지 상황 때문에 보람 하나만으로 평생을 걸라는 말을 하는것이 상당히 조심스럽지만, 어린 생명들에게 희망을 심어주는 일은 세상 무엇보다 가치가 있는 일이라 여기면 좋겠습니다.”

중앙대병원에서 10년을 보내는 동안 매일 자택이 있는 춘천에서 서울까지 기차통근을 하고 있는 박귀원 교수. 월·화·수요일은 외래를 보고 목·금요일은 수술을 하는 빡빡한 스케줄을 소화하면서도 환한 미소를 잊지 않는다.

“기차로 출퇴근을 하니 하루에 8,000보 넘게 걸어요. 차를 타고 다닐 때는 몰랐던 풍경들도 보고, 많이 걸으니 건강이 더 좋아진 것 같습니다. 2010년부터 무량감로회라는 의료봉사 단체를 운영하면서 의료봉사를 하고 있는데, 후배가 들어와 은퇴하게 되면 봉사하면서 인생 2막을 보내고 싶어요.”

사회에서 인정받는 의사로 은혜를 입었으니 세상에 갚고 베풀며 사는 것이 도리라 생각한다는 박귀원 교수가 앞으로 펼쳐갈 진정한 은퇴 후의 삶을 응원하며, 박 교수의 바람대로 뒤를 이어줄 고마운 후배가 하루빨리 나타나길 학수고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