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수많은 문학작품이나 노랫말에서 인생의 모든 것을 거는 순간을 ‘심장’에 비유한다. 심장은 살아 숨 쉬는 모든 생명체의 활동에서 절대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소중한 장기인 까닭이다. 지난 30년간 3,000례가 넘는 수술을 통해 새 삶을 선사하는 등 심장 수술 분야에서 독보적인 업적을 쌓아오면서 평소 소외된 이웃을 위한 봉사와 헌신에 남다른 노력을 기울여온 의사가 있다. 심장 수술할 때 가장 행복하다며 자신의 호를 ‘심.수.가.행’으로 지었다는 박국양 교수를 만났다.
글 편집실 / 사진 백기광
42년 동안 휴가 한 번 안 가본 의사
1986년 흉부외과 전문의가 된 이래 박국양 교수는 국내 심장 수술의 최고 권위자로 손꼽히지만, 그간 휴가 한 번 제대로 가본 적이 없다. 환자를 진료하고 수술하는 일 외에 별다른 취미가 없는 박 교수에게는 병원이 일터이자 휴식처이다. 그도 그럴 것이 15년째 흉부외과 레지던트가 없는 상황이라 환자 가까이 있어야 마음이 편하다는 이유도 있다. 심장질환 특성상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해도 응급 상황이 발생할 수 있어서 박국양 교수는 위급할 때 언제든지 자신에게 연락할 수 있도록 환자나 보호자에게 개인 전화번호를 내어주는 의사로도 유명하다.
“인턴 기간에 각 과를 돌면서 진로를 결정하게 되는데 맺고 끊음이 분명한 걸 좋아하는 성향이라 외과에 마음이 끌렸고, 그중에서도 심장 뛰는 모습이 너무 좋았어요. 청색증 때문에 파랗던 아이의 입술이 심장 수술을 받고 금세 빨개지고, 또래 친구들과 씩씩하게 뛰어노는 모습을 보면서 전율을 느꼈다고 할까요? 이 드라마틱하고 멋있는 광경은 우리 과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거잖아요. 흉부외과에 매료되지 않을 수 없었죠.”
확실히 고칠 수 있고 그 결과에 만족감이 높은 것이 흉부외과의 매력이라며, 그래서 ‘가성비가 가장 높은 과’라 말하고 웃는다.
그 덕분일까 심장과 폐를 동시에 이식하고, 수혈 없이 환자의 심장이식수술에 성공했으며, 심부전증환자에 대한 심근성형술, 심정지 없이 극초단파를 이용한 심방세동수술 등을 국내 최초로 시행했다. 헬리콥터로 이송된 뇌사자의 심장을 적출해 이식하는 수술도 처음으로 성공하는 등 박국양 교수는 ‘국내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을 만큼 어렵고 힘든 수술마다 자신의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
짧은 가운, 보타이에 담긴 의미
지난해 정년을 맞은 박국양 교수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로서의 활동은 마무리했지만, 여전히 의사로서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흉부외과 의사가 부족하다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지만, 손도 안 떨리고 눈도 나쁘지 않아 아직은 수술하는데 문제가 없는 만큼 한계가 오기전까지는 의사로서의 삶에 최선을 다하고픈 마음이 크다.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우리나라는 심장이식 수술이 전무하다시피 한 상황이어서 미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왔죠. 국내 최초 심장이식 수술은 다른 병원에서 시행했지만, 나머지 심장에 관한 수술은 거의 제가 처음으로 도전한 것이 많았습니다. 당시에는 제가 처음으로 뭔가를 시도하고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개척해간다는 의미가 컸었는데 연차가 쌓이고 많은 경험을 하고 보니 의사 한 사람이 모든 병을 고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명확히 구분해서 환자나 보호자의 부담을 덜어주는 것도 의사가 할 일이라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생과 사가 의사 손에 의해 좌우되는 경험을 하고 보니 생명에 대한 경외와 존중이 더 깊이 자리하게 되었다는 박국양 교수. 그가 덤덤하게 털어놓는 말에서 의사는, 특히 외과의사는 수술 테크닉이나 숙련도를 키우는 일에만 집중해서는 안 되며 진심으로 환자와 보호자를 배려해야 한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그가 넥타이 대신 보타이를 고수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에서다. 길게 늘어뜨린 넥타이로 인해 혹시나 감염 위험이 있을까 싶어 짧은 의사가운에 리본모양의 보타이를 착용하기 시작했다는데, 이제는 박국양 교수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다고 한다.
생명 존중은 봉사활동으로 이어졌다. 박국양 교수는 가천대 길병원이 지난 1996년부터 심장병 환자를 대상으로 진행해온 무료 수술에 매년 참가해 지금까지 450여 명의 귀한 생명을 살려냈다. 또 사재를 털어 ‘푸른들가 족공동체’를 설립해 노숙인과 출소자들의 자활에 도움을 주고 있다. 또 국내외 소외계층에게 박애 정신을 실천한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2월 ‘제12기 국민추천포상 수여식’에서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이 상은 나눔과 봉사를 실천하는 이들을 추천받은 뒤 정부포상 심사위원회의 엄격한 심사를 거쳐 수상자가 선정된다. 박국양 교수는 기관이나 단체가 아닌 일반 국민으로부터 추천을 받아 투표를 통해 선정된 만큼 더욱 영예롭고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한다.
의사의 24시간은 환자를 위한 것
박국양 교수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수혈을 거부하는 특정 종교인을 위해 수혈 없이 심장이식을 성공적으로 해냈다. 또 성공 확률이 50%에 불과한 복잡성 심장 기흉을 앓고 있는 중국 연변 어린이를 위한 수술에도 직접 나서서 살려낸 바 있다. 다른 병원이 하지 않는 위험한 수술에 도전한 이유는 단 하나, ‘내가 도와주지 않으면 누가 하겠는가, 내가 흉부외과 의사인데…’라는 생각에서였다. 자신이 존재하는 이유는 환자이며, 환자를 피하는 것은 의사의 직무유기라는 것이 그의 소신이기도 하다.
병원에서 아픈 환자를 수술하고 치료하는 의사, 병원 밖에서 소외된 이웃의 삶을 돌보는 자원봉사자. 어느 하나도 쉽지 않은 일이지만 박국양 교수는 이 두 가지 길을 흔들림 없이 잘 핸들링하고 있다. 그는 응급환자를 빨리 보기 위해 병원에서 5분 거리에 있는 아파트로 이사하고, 개인 연락처를 알려줄 정도로 개인생활과 시간을 환자와 보호자에게 내어줬고, 매년 흉부외과 의사들과 봉사팀을 꾸려 해외에서 심장 수술과 교육을 하는 등 민간외교 활동에도 만전을 기하고 있다. 그것도 모자라 이웃을 위한 봉사활동을 더욱 체계적으로 하고픈 마음에 사회복지사 자격증도 취득했고, 북한 의료지원과 의료인 출신 탈북민의 국내 정책을 돕는 일에도 발 벗고 나섰다. 수많은 환자에게 심장을 이식하면서 한 생명을 살리기 위해 반드시 다른 사람의 장기가 필요하다고 느껴 장기이식에 한해 뇌사를 사망으로 인정해달라는 의견을 적극 피력해 장기이식이 활성화되는 데 기여하기도 했다. 박국양 교수가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해야 한다’가 아니라 ‘하고 싶어서’ 하는 마음이 큰 까닭이다.
“유년 시절부터 불쌍한 사람을 보면 그냥 지나치질 못했어요. 어쩌면 부모님께 물려받은 유전적인 이유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흉부외과 의사로서 소중한 생명을 살리는 일에 행복을 느끼는 동시에 사회에서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을 격려하고 지원하는 일도 심장 수술처럼 누군가를 살리는 일이 아닐까 싶어요.”
심장 수술을 통해 파랗던 입술에 붉은 생기가 돌게 하듯 우리 사회에서 소외된 계층을 돌보는 일 또한 생명을 불어넣는 일이라는 박국양 교수의 말에 큰 울림이 실린다. 의사의 24시간은 환자를 위한 것이라는 그의 신념이 오랫동안 이어지길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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