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과 사람을 보는 거울,
근감소증
사람은 노화가 진행됨에 따라 대략 30세 정도부터 근력 등 신체기능과 근육량, 뼈밀도가 감소한다. 노화로 근육량과 신체기능이 감소해 잠재적으로 낙상이나 골절을 일으키거나 일상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기능이 떨어져 생존을 위협할 수 있는 의학적 상태를 근감소증(sarcopenia)이라고 한다.
글 정희원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교수
과거에는 기대수명이 짧고, 만성질환에 대한 관리나 개별 질환들에 대한 치료법이 미비해 질병이 있는 채로 오랜 기간 생존하는 경우가 적었기에, 이러한 근골격계 변화는 부차적인 것으로 간주해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전반적인 생활수준과 의료 기술의 발달, 의료서비스에 대한 접근성 향상으로 대부분의 사람이 ‘유병 장수’ 하는 시대가 도래하면서, 근육의 건강 정도가 사망이나 기능 저하에 따른 요양기관 입소 등 미래 건강 예후를 상당 부분 결정한다. 또 여러 가지 질환에 대해 치료를 견딜 수 있는지마저 결정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에 따라 점차 근감소증을 중요한 노인성 질환으로 간주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2021년부터 근감소증을 질병으로 분류하면서 연구와 진료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근감소증의 정의와 진단은 지난 30년간 지속해서 변화해왔으며, 근감소증에 대한 접근은 근육의 양 자체를 측정하려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근감소증의 정의 자체를 근육량 저하로 여겨, 골다공증에서 골밀도를 통해 질병을 정의하는 것과 유사하게 엑스선 이중에너지 흡수 방법이나 몸속의 전기적 저항(바이오임피던스)을 측정하는 방법으로 근육량을 측정했다, 그리고 이 값을 키나 체중, 체질량지수 등으로 바로잡아 인구 집단 내에서 특정 범위 이하의 결과인 경우를 근감소증으로 정의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임상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근육량 측정 방법에는 한계점이 존재했고, 이렇게 얻어진 근육량은 근력이나 신체기능과는 상관성이 높지 않다는 연구 결과가 쌓이게 되었다.
게다가 실질적인 노화의 결과인 사망이나 기능 저하에 따른 요양기관 입소, 낙상 등을 예측하는 데는 근육량 감소보다는 신체기능 감소가 더 중요한 인자임이 알려지게 되면서, 근감소증의 정의와 진단기준도 근육량과 근육의 기능을 모두 포함하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그래서 현재는 근감소증을 노화에 따른 근육량 감소와 신체기능·근력의 감소가 함께 있는 상태로 정의한다.
근감소증은 왜 생기는 것일까?
먼저 근감소증을 일으키는 3가지 요소인 생물학적 변화, 영양과 운동의 상호작용을 이해해야 한다. 같은 생활습관을 유지한다고 하더라도 노화가 쌓인 몸은 근육을 조금씩 잃어가는 생물학적인 경향성이 생긴다. 우리 몸의 근육 단백은 항상 합성(동화)과 분해(이화)가 동시에 일어나며, 시시각각 변화하는 동적인 균형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운동을 하거나 음식을 섭취하면 이 동적 균형 상태가 근육량 증가 방향을 향하게 되고, 반대로 휴식을 취하거나 금식을 유지하면 근육량 감소 방향을 향하게 된다. 이 균형이 전체적으로 아래를 향하게 되는 것은 직접적으로는 노화와 질병에 따라 발생하는 동화 저항(anabolic resistance) 현상이 그 배경에 있다. 대략 60대 정도가 되면, 노화에 따른 성호르몬 감소를 포함한 여러 가지 전신적 호르몬 변화가 어느 정도 자리 잡기 시작한다. 또 당뇨병을 앓지 않더라도 다소간의 인슐린 저항성(일정량의 인슐린 분비에도 불구하고 세포 안에서의 생물학적 변화는 그에 따르지 못하는 현상)이 동반되며 근육세포 내의 근육단백질 생성 기구의 효율성도 떨어지게 된다.
이런 다층적인 생물학적 변화 때문에 일정량의 단백질을 섭취하면서 같은 정도로 근력운동을 수행하더라도 노년기에는 젊고 건강한 성인에 비해 생성되는 근육의 양이 적다. 이런 현상을 외부에서 흡수한 에너지원에서 거대분자를 합성해나가는 과정인 동화작용의 저하로 해석하여 동화 저항이라고 부른다. 여기에 더해 만성질병을 포함한 노화에 따른 여러 세포와 조직의 구조적 변화, 이를 견디기 위해 복용하는 여러 가지 약제는 근육 단백 분해를 촉진하기도 한다.
더 큰 문제는 노년기에는 이러한 생물학적 변화에 더해 식사량(영양)과 활동량(운동)마저 줄어들어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여러 만성질환 자체와 이를 견디기 위해 복용 중인 약제들은 식욕을 떨어뜨리고 장운동을 느리게 하는 경우가 흔하고 여기에 더해 후각과 미각이 떨어져 있고 씹기와 삼키기도 불편한 경우가 많은데, 이 모든 것은 양질의 영양 섭취를 어렵게 한다. 활동량도 줄어들게 된다. 닭과 달걀의 문제처럼 신체기능이 저하되니 활동량이 줄고, 활동량이 줄어드니 신체기능은 더 나빠지는데, 이 사이클에는 또 다른 요소들이 있다. 기분(우울), 인지와 사회관계인데, 영양과 활동 상태가 나빠지면 우울감이 악화되고, 우울감 악화는 주관적인 인지기능을 떨어뜨릴 뿐 아니라 외출 등 사회관계를 유지할 기회도 줄어들게 한다. 이 모든 요소는 결과적으로 신체기능을 더 나쁘게 만든다. 이렇게 신체 활동과 영양 상태가 나빠진 상태로 온종일 앉아 있거나 누워 있으면 이미 앓고 있는 만성질환들도 잘 조절되기가 어렵고, 이런 현상을 ‘노쇠의 악순환(그림)’이라고 한다. 결과적으로 근감소증의 원인을 찾아서 치료하려면 이 악순환의 고리를 반드시 끊어주어야 한다.
복합적인 접근이 필요한 근감소증 치료
근감소증 치료를 뼈밀도를 높이는 것이 목적인 골다공증 치료와 비슷하게 여겨, 분자적으로 근육분해를 가로막거나 근육 합성을 촉진하는 물질을 투여해서 개선하려는 노력이 오랫동안 이어져 왔지만, 아직 개별 약제로서 효과가 있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개별 약제들이 근육량 증가를 일으키는 경우는 있었지만, 실제로 의미가 있는 치료 목표인 신체기능의 개선을 가져오지는 못했다.
반면, 세계적으로도 널리 보고된 ‘평창 코호트 연구’의 사례처럼 ‘노쇠의 악순환’을 끊고 악순환을 선순환으로 개선하려는 복합 노인의학적 중재는 근감소증의 신약 개발에서 흔히 성공 지표로 삼는 SPPB(간편 신체기능 검사) 1점 개선의 목표를 크게 뛰어넘어 약 3점의 개선 효과를 보여준 바 있다. 통계적으로는, SPPB 3점 개선의 효과는 10년 치의 신체기능 개선을 의미한다. 이런 결과는 근감소증을 치료할 때 반드시 질병과 노화를 둘러싼 사람의 전반적인 상태를 살펴보고 문제점들을 개선하려는 노력이 포함되어야 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런 복합 노인의학적 중재는 어떤 요소를 포함하고 있을까? 근감소증의 평가와 치료에 가장 기본적이면서 다른 노력이 효과를 발휘하기 위한 필요조건이 되는 것은 의학적·기능적 문제 목록 수립과 약제 정리이다. 환자가 알고 있는 질병, 먹고 있는 약을 모두 정리할 뿐만 아니라, 근감소증을 2차적으로 초래했을 가능성이 있지만, 아직 발견되지 않은 질병을 찾아내기도 한다.
노인의 신체기능이나 인지기능을 잠재적으로 저해할 수 있는 약물의 부적절한 사용이나 여러 의료기관에서 부지불식간에 발생한 처방 연쇄(약의 부작용이 새로운 처방을 부르는 현상) 등이 관찰되면 이에 대한 중재 또한 수행해야 한다. 호르몬 이상을 찾아내서 교정해주기도 하며, 우울증이나 수면장애, 인지기능 저하 등 영양과 운동에 제약을 초래하는 정신적인 문제도 선별하고 중재해주어야 한다. 낙상 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감각기계 이상을 점검해야 하며, 낙상 결과를 나쁘게 만들 수 있는 골다공증을 찾아내서 치료해야 한다. 지역사회의 복지 자원을 연계하기도 한다. 이런 일들을 노인의학에서는 ‘노인포괄평가’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도 노년내과, 노인병내과 등 몇몇 곳에서 수행하고 있다.
충분한 영양 섭취와 운동
여기에 더해져야 하는 것이 충분한 단백질(체중 1kg당 하루 1.2g 이상)이 포함된 적절한 영양 섭취와 근력·균형운동 위주의 운동이다. 실제 임상 현장에서 환자들은 노인포괄평가를 통한 의학적 중재를 바탕으로 식사량과 활동량이 자연스럽게 회복되고, 전신 상태가 개선되며 기분과 인지기능도 좋아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선순환이 수개월간 이루어지면 근감소증의 주요 치료 지표로 생각하는 SPPB 점수도 개선된다. 이렇게 노인포괄평가를 중심으로 근감소증을 살펴볼 수 있는 의사라면 근감소증에 대해 해줄 것이 참 많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고, 반대로 질병에 대해 시술이나 투약만 생각하는 의사라면 근감소증은 ‘해줄 것이 없는’ 병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근감소증은 질병과 사람을 보는 거울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거나, 또는 간과되고 있던 여러 가지 신체적·정신적·사회적·기능적 문제를 찾아내는 계기가 되고, 이렇게 발견된 서로 꼬여 있는 문제들이 개선되어서 결과적으로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실마리로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사실, 근감소증이라는 질환명으로 최근에 새롭게 포장되었지만, 오래전부터 노인의학 영역에서는 거의 유사한 임상적 개념을 ‘노쇠(frailty)’라는 이름으로 지칭하여 노인포괄평가를 통한 중재를 성공적으로 수행해왔다.
노화에 따라 질병이 복합적으로 혼재되어 있고 기능적인 문제를 초래하며 여러 요소가 악순환을 만든다는 특성 탓에, 노쇠가 있는 고령 환자의 진료는 개별 질환적 접근이 가능한 젊은 성인과 달리 노인의학적 개념에 따라 포괄적으로 수행되어야 하므로 다른 선진국에서는 일찍이 노인의학이 발전해온 것이다.
경제적으로 빠르게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이행해온 우리나라에서는 다양한 의료 기술을 선진국 수준으로 발달시키는 데 집중하여 아직까지는 선진국형이면서 사람을 중심에 놓는 노인의학이 널리 보급되지는 못했다. 그러나 인구구조와 질병 특성이 변화하면서 점차 젊은 성인과 다른 특성을 가지는 노년기 환자의 비중이 증가하고 있고, 앞으로는 근감소증과 같은 포괄적 접근이 요구되는 노년기 질환의 사회적 중요성 또한 높아질 것으로 생각한다. 이에 발맞추어 노인의학적 개념의 확산과 보급을 통해 그동안 ‘해드릴 것이 없어서’ 치료에서 소외돼온 어르신들이 적절한 중재와 돌봄을 받아 더 나은 삶을 영위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서울대학교병원 내과·입원의학센터 진료조교수를 거쳐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저서로는 건강과 고령사회에 관한 책 『지속가능한 나이듦』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