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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더 소중한 정신건강

유례없는 전염병이 창궐해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고 질병에 시달리고 있으며 격리는 물론 각종 후유증에 고통받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상황이 언제 끝날지 모르고 또 다른 전염병이 다가올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이로 인하여 보건의료자원은 고갈되기 일보 직전이며 의료진의 번아웃은 이미 최악의 상태에 이르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강섭 성균관의대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코로나19 팬데믹은 인류에게 큰 재앙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재앙은 인류에게 큰 난관으로 인식되어 불안과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불안과 공포는 재앙과 같은 스트레스 상황에서 가장 흔히 나타나는 정신적 증상이기 때문이다. 최근 ‘코로나 블루’와 같은 신조어가 생겨난 것도 이 때문이다.

물론 코로나19 유행 이전에도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라는 오명을 오랜 기간 갖고 있었다. 학자들은 우리나라의 높은 자살률을 지켜보며 이는 더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및 국가의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고 이미 주장한 바 있다. 이제 코로나19 대유행이 오래 지속되면서 나타난 코로나 블루 역시 분명 개인의 문제가 아닌 국가, 사회의 문제, 나아가 인류 전체의 생존 문제로 다가오고 있다.

물론 우리는 여전히 전염병과 사투를 치르고 있고 이로 인한 각종 신체적 문제와 그와 관련되는 경제·사회문제가 우선 해결되어야 할 주제여서 당장 정신건강 문제를 돌볼 여유가 없는 것처럼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심각한 재앙의 장기화는 사회 구성원의 정신건강에 강력한 위험요인으로 작용하므로 지금부터라도 이에 대한 준비가 필요하다.

사회 구성원의 정신건강 상태 파악

우선 사회 구성원의 정신건강 상태를 파악해야 한다. 이는 개인 차원은 물론 국가·사회적 차원에서 정밀한 조사가 진행돼야 한다. 물론 우리나라의 경우 보건복지부에서 5년마다 정신건강 실태조사를 진행해 발표하고 있고 최근에도 작년에 시행된 결과가 발표됐다. 이는 국가 단위의 전체적인 정신질환의 유병률을 조사해 5년 단위로 변화를 알아보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국민 개개인의 정신건강 상태를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국가에서도 이를 위하여 생애주기별 정신건강 검진을 계획하고 일부 시행하기도 했지만, 개인의 정신건강을 총체적으로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은 신체 건강을 지키기 위하여 정기적으로 신체 종합검진을 받는다. 그러나 정기적인 정신건강 검진은 아직 그 효과에 대한 논란은 물론 검사 도구의 적용 문제 등 난관이 있는 것도 현실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전염병이라는 대재앙에 노출된 사람들은 자신의 정신 상태가 어떤지 정확하게 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점이다. 특히 코로나19에 실제 감염되었거나 이로 인하여 격리되었거나 일부 백신 부작용으로 고통받은 사람들은 반드시 자신의 정신건강에 대한 평가를 받아야 한다.

국가적·사회적 대책 필요

사회 구성원의 정신건강 문제가 더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사회의 문제라는 인식하에 이들을 도울 국가·사회적 대책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코로나 사태의 지속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수많은 소상공인을 위해 국가가 경제적 지원을 해야 하는 것처럼 코로나 사태의 지속으로 인해 정신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국가와 사회는 이들을 도울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최근 ‘코로나 블루 청소년 정신건강 치료비 지원 사업’ 등 코로나 사태의 후유증으로 인한 정신적 문제를 도우려는 방법이 일부 제시되고 있지만, 턱없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소위 코로나 블루 시대에 걸맞은 대대적인 국가적 지원책이 요구된다.

정신건강의학과의 역할 변화

정신건강의학과의 역할과 체계 변화도 필요하다. 이전에는 정신건강의학과에 대한 편견으로 인해 많은 사람이 기피하고 치료를 거부해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의 역할도 제한된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시대도 변하여 자신에게 어떤 정신적 문제가 나타나면 검사하고 치료를 받겠다는 사람이 늘고 있고 코로나19 대유행 이후에는 많은 사람이 불안과 우울, 불면 등 다양한 정신 증상으로 고통받고 있으므로 이에 대응해 신속하고 정확한 진단과 치료 체계를 갖추어야 한다. 물론 졸속으로 하루아침에 만들어져서는 안 되겠지만 기존의 진료 체계보다는 효율적이고 신속한 진료 시스템이 마련되어야 한다. 이미 외국에서는 ‘미래 정신의학’이라는 기치하에 디지털 치료 등 다양한 형태의 새로운 진단과 치료가 시도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일부 병원에서 시작했지만 빠른 도입이 절실하다.

정신건강 회복력 증진

개개인의 정신건강을 지키기 위한 회복력 증진도 필요하다. 대재앙과 같은 대규모 스트레스 시대에는 정신건강을 지키기 위하여 회복력, 회복탄력성이 요구된다. 전염병에 대항하기 위해 면역력을 높여야 하는 것과 같은 이유에서다. 따라서 평소 회복력을 지키기 위한 각종 노력에 기꺼이 참여해야 한다. 많은 전문가가 회복력을 지키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제시하고 있다. 여기에는 신체 운동은 물론 건강한 식습관과 수면 습관, 취미 등 정서적인 활동, 명상이나 이완훈련 등 다양한 활동이 포함된다. 전염병의 특성상 많은 사람이 모여서 하는 활동들은 할 수 없겠지만 자신에게 맞는 회복력 지킴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이를 위하여 국가와 사회에서도 이러한 프로그램을 장려하고 지원하는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정신적 취약계층에 대한 도움 필요

정신적 취약계층에는 주변에서 적절한 도움을 주어야 한다. 스트레스 상황에서 누구보다 먼저 병에 걸리고 고통을 받는 사람들은 분명 취약계층이다. 몸이 약한 사람들이 감기나 전염병에 더 잘 걸리듯 정신적 취약계층이 스트레스 상황에서 정신적 증상이나 질병에 더 잘 걸리는 것이다. 따라서 성·연령별 취약계층에 주변의 관심과 도움이 제공돼야 한다.

예를 들어 청소년의 경우 어려서 부모를 잃었거나 신체적·성적 폭력이나 왕따를 경험한 경우, 중장년층의 경우 최근 직업을 잃었거나 경제적 문제로 고통받고 있거나 결혼상태가 이혼이거나 별거인 경우, 그 외에 외국 이주민인 경우, 노년층은 경제적 빈곤 상태에 있거나 독거의 경우 등 연령별·성별에 따른 취약계층을 파악하여 체계적으로 도와야 한다.

다들 어렵지만, 그중에서도 더욱 취약한 사람들을 돕는 것은 도움을 주는 사람들에게도 정신적 자양분이 될 수 있다. 과거 이라크 전쟁 당시 너무나 많은 사람이 외상후스트레스장애에 시달렸는데, 외상후스트레스장애를 극복한 사람들이 다른환자를 돌보는 일에 더 적극적이었다고 이라크의 정신과 의사에게 들은 적이 있다. 비록 나도 힘들지만, 조금씩이라도 나아지고 있다면 주위를 둘러보고 서로 도와야만 하는 것이다.

의료진에 대한 적절한 정신건강 지원

전염병과 사투를 벌이고 있는 의료진에 대한 적절한 정신건강 평가와 지원도 이루어져야 한다. 앞서 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와 MERS(중동호흡기증후군)가 유행한 시기에도 많은 의료진이 이로 인한 각종 정신적 문제로 고통을 받았음이 보고됐고 최근 코로나19 대유행시기에도 많은 연구에서 의료진이 불안과 우울, 불면, 외상후스트레스장애 등으로 고통받고 있다고 보고했다.

실제 의료인들은 알게 모르게 외상후스트레스장애 등 스트레스 관련 질병의 이환 가능성이 큰 것이 현실이다. 응급실에서, 중환자실에서, 알게 모르게 정신적 외상에 해당하는 상황에 접하고 있고 그런 상황들을 직접 목격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쉬지도 못하면서 의료 현장을 지키고 있는 수많은 코로나 전사에 대한 정신건강 평가와 지원이 절실하다. 그저 의료인이니까 스스로 알아서 해결하라는 것은 무책임한 요구이다. 자신이 알아서 해결할 충분한 시간과 여유가 그들에게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긍정적 사고의 공유 필요

마지막으로 인류는 항상 그래 왔듯이 이번 대재앙도 분명 극복해낼 것이라는 긍정적 사고를 공유해야 한다. 인류는 수천 년 동안 전염병을 비롯한 다양한 재앙에 대항하여 현재까지 잘 이겨내고 새로운 문명을 발전시키고 건강을 유지하며 살아왔다. 외상을 경험하고 오히려 더욱 성장한다는, ‘외상후성장’이라는 개념도 있다. 이번 대재앙도 수많은 사망자를 내고 있고 여전히 많은 사람이 후유증에 시달리고 경제적·정신적 고통을 받고 있지만 언젠가는 극복할 수 있다는 긍정적 사고를 하고 서로 도와야만 한다. 비록 전염병으로 격리되고 대인 활동도 부족해지고 운동 등 신체 활동도 제한되며 가까운 가족조차 마음대로 만나지 못하는 절망적인 상황이지만 조만간 전염병을 극복하고 다시 이전의 생활로 돌아갈 날이 머지않았음을 기억하고 서로 도우며 이겨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혼자만 힘든 것이 아님을 기억하고 서로 격려하며 다시 일상을 찾을 수 있다는 희망으로 다 같이 이겨낸다는 생각은 분명 우리에게 회복력을 제 공하여 이번 대재앙에서 살아남을 원동력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오강섭

성균관의대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로, 저서 『우리 가족 마인드 클리닉』, 『불안한 마음 괜찮은 걸까?』를 출간했다. 대한불안의학회 이사장, 대한노인정신의학회 이사장을 역임했고 현재 대한 신경정신의학회 이사장으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