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을 가꾸는 사람들

2019 September + October 09/10 Vol. 172

행복한 이야기

마음 연구소

무기력의 늪에 빠지지 않았나요?
‘번아웃 증후군’

글. 청담 하버드 심리센터 최명기 연구소장(정신과 전문의)

세계보건기구(WHO)는 2019년 5월, 제11차 국제질병표준분류기준(ICD-11)에서 번아웃 증후군을 직업 관련 증상의 하나로 기술했다. 질병은 아니지만, 관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번아웃은 에너지가 고갈된 상태를 말한다. 장작이 타다 꺼지면 다시 불을 붙이면 되지만, 완전히 연소해 재가 됐다면 불을 붙이려 해도 다시 타오르지 않는다. 번아웃 증후군은 이처럼 마음의 기력이 완전히 연소한 상태를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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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박 씨의 번아웃 증상

직장인 박 씨는 번아웃 상태다. 매일 아침 출근할 생각만 하면 괴롭고, 출근한 뒤에도 종일 퇴근 시각만 기다린다. 만사가 귀찮아 손도 까닥하지 않으며 사소한 일에도 화가 난다. 그러니 일을 제때 끝낼 수 없고 한없이 밀린다. 어쩌다 성과를 내거나 칭찬받아도 기쁘지 않고 회사를 그만둘 생각만 한다. 과거에는 취미 생활을 하거나 친구를 만나며 재충전했지만, 요즘은 취미 생활도 싫고 친구를 만나도 피곤하니 애초에 약속을 잡지 않는다. 아무것도 하지 않지만, 걱정은 수시로 한다. 그러니 잠을 자도 상쾌하지 않고 하루 날을 잡아서 잠만 자도 몸이 피곤하다. 몸 여기저기가 아프며 천근만근 무겁게 느껴진다.

당신은 정말 번아웃 증후군인가?

힘들면 쉬어야 한다. 쉴 수 없는 상태가 지속되면 번아웃 증후군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심화되는 경쟁과 구직난으로 근로자 대부분 마음 편히 쉴 수 없다. 일에 따른 보상이라도 충분하면 보람이 있겠지만, 생활비를 빼면 남는 돈이 없을 때가 허다하다. 일에 대한 전망이 밝은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지금 하는 일을 그만두고 새로운 일을 찾기도 여의치 않다. 이렇듯 단순히 먹고 살려고 일하다 보면 누구나 번아웃이 될 수밖에 없다. 스트레스가 뒤따르는 것은 당연하다. 더구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생각의 폭이 좁아지고 일의 능률도 떨어진다. 여기에 개인적인 스트레스와 외로움이 더해지면 번아웃을 더욱더 심하게 한다. 한편 직장에서 힘든 하루를 보내면 집에서도 짜증이 난다. 하지만 가족의 위로도 하루 이틀, 얼마 지나지 않아 가족들까지 짜증을 낸다. 집에서라도 위로를 받아야 하는데 결국 아무 곳에서도 위로받지 못한다. 집에서도 이러하니 직장에서도 지치고 힘들다. 악순환이 반복되며 점차 번아웃이 심해진다.
그런데 스스로 번아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의 상당수는 사실 우울증일 때가 많다. 우울증에 걸리면 자주 짜증 나고 두뇌 회전도 안 되며 사람을 대하는 것도 싫어진다. 아침에 일어나는 것은 무척 힘들고 퇴근할 때쯤 돼야 정신이 조금 맑아진다. 이런 경우울증의 경우 치료하면 번아웃도 사라진다.
음주도 이와 비슷하다. 자신은 일하기 힘들고 스트레스받아 술을 마신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술을 마셔서 번아웃처럼 느끼는 경우가 많다. 술을 마시면 기분이 좋아지고 마음이 편해지니 평일에도 자주 술을 마시고 주말에는 폭음한다. 보통 금단 증상이라고 하면 손이 떨리고 식은땀이 나는 것만 생각하지만, 짜증이 나고 일이 손에 잡히지 않고, 두뇌 회전이 잘 안 되는 것도 금단증상이다.

번아웃 증후군에 대한 현실적인 조언

번아웃을 예방하기란 사실 쉽지 않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번아웃 상황에서도 성공하고자 발버둥 치며 일하는 사람이 나오지만, 현실에서는 드물다. 번아웃이 돼 참기 힘들 정도로 괴롭지만,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우리는 왜 일할까? 돈이 필요해서다. 반대로 생각하면 돈이 덜 필요하면 일을 덜 해도 된다. 돈을 쓰지 않는 삶이 가능하다면 언제든 일을 그만두고 싶을 때 그만둘 수 있다. 현재 다니는 직장이 번아웃을 유발하는 곳이라면, 우선 적절하게 소비를 통제하고 일정 부분 저축해야 한다. 당신이 버는 돈의 상당 부분을 누군가를 위해 쓰고 있다면 조금은 이기적으로 행동해야 한다. 돈에 쪼들리는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한 번아웃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상황을 길게 볼 필요도 있다. 수입을 늘리지 못하는 한 당신을 계속 착취하며 번아웃시키는 직장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따라서 기술을 익히든 능력을 키워 더 좋은 조건으로 이직을 하든, 당신의 수입을 늘리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일이 아닌, 상사나 동료로 인해 번아웃 되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 좋은 사람이 모여 있는 직장으로 옮기도록 노력해야 한다. 일단 번아웃 되는 상황에 빠지면 헤어나기 힘들다. 자신을 번아웃시키는 직장이나 직업에서 벗어나고자 최선을 다해야 한다.
만약 번아웃 됐는데 술까지 자주 마신다면 술을 끊어야 한다. 술은 상황을 악순환에 빠지게 한다. 개인적인 문제로 힘들다면 그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 우울하다면 우울증을 먼저 치료해야 한다. 그리고 번아웃 상태에서는 쉬어야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휴가를 자주 쓰면 눈 밖에 난다고 걱정한다. 하지만 번아웃 상태를 끌고 가면 업무 능률이 떨어지고 결국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해고된다. 그렇게 어쩔 수 없이 해고되는 것보다 차라리 당장 휴가를 쓰는 편이 낫다. 매일 사직서를 내고 싶을 정도로 힘들다면 그 상태로는 오래 버티기 힘들다. 어차피 그만둘 직장이라면 휴가라도 다 쓰고 그만둬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