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을 가꾸는 사람들

2019 May + June 05/06 Vol. 170

행복한 이야기

문화 산책

수채화 같은 감성에 물들다,
비에 담긴 풍경

비의 계절이 돌아왔다. 후드득 우산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 물안개 자욱한 풍경 속을 걷다 보면 다른 세상에 초대받아 온 것 같은 착각마저 든다. 대중문화 속 ‘비’는 어떤 모습일까? 감독이나 작가의 의도에 따라 다르지만 이별, 쓸쓸함, 낭만, 갈등 해소 등 다양한 상황과 감정을 상징한다. 크로마토그래피처럼 우리의 감성을 무지갯빛으로 물들이는 ‘비’, 지금 마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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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톡톡(Talk-Talk)

빗속에서 피어난
로맨스 명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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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박제된 사랑의 노래

사랑은 비를 타고

뮤지컬 | 103분 | 전체 관람가 | 감독 : 스탠리 도넌, 진 켈리

1930년대 할리우드 영화계 최고의 스타 돈 록우드는 신작 <결투하는 기사>의 성공을 자신하던 중, 최초의 뮤지컬 영화인 〈재즈 싱어〉가 대성공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위기를 느낀다. 결국 돈과 제작사는 〈결투하는 기사〉를 뮤지컬로 바꾸기로 결정하지만 상대 배우인 린다 라몬트의 목소리와 발성 연기는 너무 형편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뮤지컬로 바뀐 <결투하는 기사> 시사회가 열리고, 관객들은 조악한 영화와 린다의 목소리에 크게 실망한다. 이때 연극배우를 꿈꾸는 케이시가 구세주가 된다. 파티장에서 우연히 만난 케이시가 자신의 목소리를 영화에 입히자는 돈의 제안을 흔쾌히 허락한 것이다. 케이시가 돈의 제안을 허락한날 밤, 폭우 속에서 돈은 케이시를 집까지 바래다주고 돌아가는 길에 마음속 케이시에 대한 사랑을 느낀다. 갑자기 찾아온 소나기처럼 흠뻑 젖게 만든 사랑. 돈은 우산도 접어둔 채 영화의 주제곡 ‘Singing In the Rain’ 부르며 신나는 춤사위를 펼친다. 비가 오는 거리에서 발장단에 맞춰 물장구치며 사랑을 노래하던 돈은 뒤늦게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깨닫고 황급히 자리를 떠난다.

비와 로맨틱 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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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의 수채화 같은 풋풋하고 애틋한 사랑

8월의 크리스마스

로맨스 | 97분 | 15세 관람가 | 감독 : 허진호

초원사진관의 사진사 정원은 불치병 판정을 받고 매일 약을 먹으며 살아가는 남자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여자가 다가온다. 불법주차 단속원 다림이다. 그녀는 매일 비슷한 시간에 사진관 앞에 와서 주차위반 차량을 촬영하고 현상을 맡긴다. 단속 중에 일어난 일들을 털어놓는 다림이 정원은 마냥 예쁘고 사랑스럽다. 하지만 하루하루 죽음에 다가서는 정원은 다림에게 자신의 감정을 털어놓기가 부담스럽다. 반면 다림은 사랑 앞에 당돌하다. 하지 않던 화장을 하고 초원사진관에 오는가 하면, 슬쩍슬쩍 자신의 마음을 내비치며 정원을 흔들어 놓는다.
서로의 마음을 알면서도 선뜻 다가가지 못하는 두 사람과 얼마 남지 않은 시간. 그러다 그 마음을 촉촉하게 적셔주는 명장면이 등장한다. 바로 함께 우산을 쓰고 걸어가는 빗 속 장면이다. 비를 흠뻑 맞으며 걸어가는 정원을 발견한 다림은 슬쩍 우산을 씌워주며 다가간다. 다림은 자신의 어깨가 젖는데도 우산을 정원 쪽으로 기울인다. 이를 눈치챈 정원은 다시 우산을 다림 쪽으로 기울이고, 두 사람은 처음으로 서로를 가까이에서 느낀다.

비와 로맨틱 지수

명화 톡톡(Talk-Talk)

캔버스 속으로 들어온
비 오는 거리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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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비 오는 파리의 거리를 걷다

파리의 거리; 비오는 날

구스타브 카유보트

<파리의 거리; 비오는 날(Paris Street; Rainy Day)>,
캔버스에 유채, 1877년, 212.2×176.2cm,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

물에 젖어 반짝이는 거리와 회색빛 하늘, 그리고 빛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도로에 고인 빗물 등 비 오는 날 파리의 거리를 사실적으로 담은 <파리의 거리; 비오는 날>. 이 작품은 19세기 후반 프랑스 파리의 인상파 화가들과 어울리면서 작품 활동을 했던 구스타브 카유보트의 대표작이다. 마치 사진과도 같은 정확한 원근법으로 당시의 도시 풍경을 표현한 명작으로 손꼽힌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빗물 위를 바삐 걸어가는 사람들의 발소리가 잔잔하게 울리고, 세련되게 차려입은 남녀 한 쌍이 우산을 나눠 쓴 채 우리 눈앞으로 다가오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비와 로맨틱 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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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버스를 촉촉하게 적신 빗물

보스턴, 비오는 날

프레드릭 차일드 하삼

<보스턴, 비오는 날(Rainy Day, Boston)>,
캔버스에 유채, 1885년, 66.3×122cm, 툴레도 미술관

프레드릭 차일드 하삼의 <보스턴, 비 오는 날>은 구성과 표현기법 등 여러 면에서 카유보트의 그림과 비교된다. 실제 그는 1883년부터 1889년에 파리의 쥘리앵 아카데미에 입학해 색채와 빛에 대한 유럽 인상파 화풍을 익혔다. 카유보트의 그림과 비교하면 그는 그림 중앙에 우산을 든 사람들 대신 도로에 내린 비의 느낌을 보다 강조하며 시원스럽게 비워놓았다. 또한 쏟아지는 빗속 풍경처럼 시야가 흐리다. 이는 캔버스가 촉촉하게 젖어 있는 듯한 느낌마저 준다. 하삼은 <보스턴, 비 오는 날> 외에도 ‘비오는 풍경’을 소재로 미국 도시인의 다양한 삶을 때로는 감상적으로, 때로는 치열하고 생동감 있게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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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톡톡(Talk-Talk)

비의 서정을
농축된 언어로 풀어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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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랑 시의 영원한 고전

접시꽃 당신

도종환 지음 실천문학사 펴냄

…(전략)… 혼자 가는 길 위에 비가 내리나 나는 외롭지 않고 다만 젖어 있을 뿐이다. 이렇게 먼 거리에 서 있어도 나는 당신을 가리는 우산이고 싶다. 언제나 하나의 우산 속에 있고 싶다.
도종환, ‘우산’ 中에서

<접시꽃 당신>은 도종환이 접시꽃같이 소박하고 지순한 아내를 암으로 먼저 떠나보낸 후의 회한과 비탄을 담아낸 시집이다. 한국 사랑 시의 고전이라고도 불리는 이 시집은 1986년 초판 이후, 오랜 시간이 흘러도 바래지 않는 시어 속에 흐르는 눈물의 서정과 진솔한 표현, 시인 특유의 가락이 더해져 큰 감동을 선사한다.

비와 로맨틱 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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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과 기다림의 서정

꽃보다 먼저 마음을 주었네

곽재구 지음 열림원 펴냄

저물 무렵 소나기를 만난 사람들은 알지. 누군가가 고즈넉이 그리워하며 미루나무 아래 앉아 다리쉼을 하다가 그때 쏟아지는 소나기를 바라본 사람들은 알지. …(후략)…
곽재구, ‘소나기-연화리 시편 25’ 中에서

<꽃보다 먼저 마음을 주었네>는 곽재구 시인이 섬진강변한 작은 마을에 머물며 쓴 시를 엮은 시집이다. 시집 속에서 사람과 자연은 분리된 존재가 아니라, 서로 마음을 주고받는 관계를 이룬다. 그 따뜻한 서정이 시집 곳곳에 녹아있다. 특히 33편에 이르는 <연화리 시편> 연작은 그리움과 기다림의 감정을 농축해 펼쳐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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